예비 고1과 고3, 그 절실함의 차이

by 청블리쌤

고3 담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30대 초반까지 선택의 여지없이 5년 연속으로 하던 그 시간은 젊음으로 버텨낸 시간들이었다. 감정이입 없이 그저 사무적으로 학생들을 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서쓸 때 학생들이 희망대학을 적어 오면 O, X 그리고 세모로 표시해 주고 말도 거의 섞지 않았던 옆 반 담임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감정노동 없이 나름의 기준으로 학생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난 특별한 해결책이 없음에도 고3 학생들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고 이메일로 상담을 해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거라도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직 초반, 아직 수능대비라는 숲보다는 나무 하나 설명하기 급급했던 나의 부족한 역량으로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열정만 담아 전달했고, 단어 시험을 개별적으로 해주면서 학습관리만 도와주었을 뿐이었다.


되도록 고3 담임을 안 하려고 애썼다. 아이들의 간절함의 크기에 비해 희망의 크기는 실제로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현실의 아픔을 학생들과 함께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주로 희망했던 학년은 고1이었다. 희망의 크기가 고3과는 비교도 안 되게 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고3에 비해 무한대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의 간절함이 존재 자체를 의심할 정도로 너무도 작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난 아이들의 간절함을 키우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고, 납득되지 않아도 사소한 습관부터 형성시키고, 영어 기본기를 쌓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했다.


그러다가 중학교로 가게 된 시점부터 더 큰 희망을 지켜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고등학교와 달리 나의 수업방식과 컨텐츠가 직접적으로 가닿지 않고 소통의 어려움이 있을 것을 직감하였음에도 그 사명감으로 중학교 교사 생활을 신입사원처럼 시작하게 되었는데...

정작 고1 학생들의 간절함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고 불평하던 예전의 내 모습만 반성하게 될 뿐이었다.

약간의 후회와 아픔을 간직한 고1 학생들은 자발적인 간절함을 갖기는 다소 어려웠지만 나의 간절한 잔소리에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열정과 노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실제로 매년 실시하던 영어멘토링학습코칭은 100명 단위로 시작해도 이탈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3 학생들은 희망을 외치는 것조차 가슴이 아닌 머리로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너무 해맑았다. 2학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중1 학생들은 그보다 더 했다.

아이들은 고등학교와 대입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당장 자신들에게 필요 없는 내세의 이야기처럼 흘려 들었다. 아이들은 당장 학교 내신시험과 학원에 걸쳐 둔 현생의 삶에만 집중하고 싶어 했다.

11월 초,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더 이상 중학교 내신이라는 현생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되는 그 시기가 되었는데 내가 꿈꾸던 희망을 키워가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의 기운이 드리워진 느낌이다. 그렇게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시기를 함께 통과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교 선택을 위한 고민을 현생으로 여긴다. 어떤 고등학교에 가든 잘 적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대신에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서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어딘지를 더 궁금해하는 느낌이다. 그런 학교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무한한 고민만 이어질 뿐이고, 해결되지 않은 고민은 고등학교 대비를 위한 지속적인 학습의 본격적인 시작을 방해한다. 그런 현실을 지적하면 아이들의 반응은 학원을 다니면서 충분히 열심히 힘들게 고등학교 대비를 한다는 메아리만 반복해서 들려준다.


그런 현실을 너무도 잘 아는 3학년 부장님은 내게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예비 고1 특강을 부탁하셨던 거다. 해맑은 아이들 사이에 한두 명이라도 도움이 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우리는 상황의 절실함으로도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다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이미 현실로 받아들였다. 교사의 노력으로 모든 아이들을 당장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다행히 특강 후 학생들이 나의 학습코칭 영업(?)에 더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걸로 봐서 효과가 없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의 학사운영 자체도 의도하지 않게 학생들의 절실함을 희석시키는 느낌이 든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생들은 더 이상 수업에 집중할 실질적인 이유를 잃는다. 중학교 내신시험이 모두 끝났기 때문에 진도를 나간다는 개념 자체가 어색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전환기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활동을 계획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학교의 최선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기본기와 학습습관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그 시기에 교육특구가 아닌 학생들은 이대로 별 준비 없이 학교생활하다가 고등학교에 가면 될 거라고 착각하며, 다시 생긴 현생의 삶에 충실한다.


여러 가지 행사 중 학생들을 가장 들뜨게 하는 건 학교마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는 학교축제다. 졸업식을 위한 반별 UCC제작과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모두 의미 있는 활동이다. 더불어 지내고, 사회성을 키우고, 인성을 함양하고, 즐겁게 추억까지 완성할 수 있는 멋진 프로그램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아도 고등학교라는 현실을 아직 마주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에게 절대 무의미하지는 않은, 죄책감 없는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행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제한된 시간을 인정하고, 그 시간 동안에만 즐겁게 준비하면 되는데, 수업과 개인공부의 경계까지 무너뜨리며 최소한의 학습까지도 미뤄두는게 문제다.

고등학교에서 주로 교직경력을 지낸 나로서는 입학 후 학력격차가, 그런 불공정게임 같은 출발점 차이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짐작하고 머리로 이해했던 것들이 눈으로, 가슴으로도 명확하게 납득이 되고 있어 슬프기까지 하다.

그래서 광야의 선지자처럼 외롭게 아이들에게 공허한 울림의 잔소리를 퍼붓고 있다.


어제 수업이 있던 두 개 학반의 아이들이 내게 몰려와서 내 수업시간에 축제 연습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아니 내게 묻기도 전에 수업해야 한다고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외부강의, 학교 행사가 많아서 그나마도 몇 시간 안 되는 수업인데, 그 한 시간, 한 시간이 내게는 소중한데, 내가 수업에 얼마나 열심인지 알면서 그걸 빼려고 하냐고.

아이들은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몇 시간 안 되는 그 시간에 무슨 큰 도움이 되겠냐고...

그래서 내가 이랬다.

찌질하고 작은 것을 잡아야 큰 것이 따라온다. 너희들이 지금 학원만 다니면서 제대로 고등학교 준비를 안 하고 있는 것은, 뭔가 깔끔한 출발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때문일 거다. 완벽하게 준비되어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순간을 꿈꾸고 있다면, 계속 미뤄둘 이유만 더 생길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입학하는 날을 맞게 될 거다. 제대로 시작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될 위기를 맞게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타협하고 중단하면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질 거다.

준비 안되어도 일단 시작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도전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한 걸음씩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사소하게 흘러가는 순간들이 모여서 기적을 이루는 것인데, 그건 뜨거운 열정으로나 완벽하게 세팅된 온전한 출발점만을 기다릴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거다. 그래서 난 이 찌질한 수업 몇 시간을 절대 놓칠 수 없다.

요즘 난 내게서만 들을 수 있을 만한 컨텐츠로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기본기를 압축해서 수업을 진행한다.

어근접사 활용 영어단어 샘플 강의는 단어 몇 개 더 가르쳐 주는 것보다 적어도 내 수업을 듣고 혼자 공부할 때의 원리 이해 중심의 단어 학습 방향을 체득하도록 목표를 설정했다.


청블리 해석공식 강의는 내 수업 자체가 중학교 영어문법 총정리와 고등학교 기본 문법 확립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머리에 머물고 있는 문법지식을 실제로 만나는 영어문장에서 해석과 영작에 활용하는 프레임 전환에 목표를 두었다.

그리고 진단테스트 같은 역할도 기대했다. 지금 수업을 이해 못한 상태로 입학하면 고등학교 수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이해도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영어학습을 할지, 아니면 빨리 중학교 기본문법부터 정리해야 할지를 점검할 수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어법포인트 총정리도 기획하고 있다. 의외로 어법문제 포인트는 복잡한 문법지식이 필요없다는 인식도 필요하고, 어법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확한 독해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문장분석, 해석, 구성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고등학교 서술형문제 대비의 가장 중요한 내공이기도 하니.

그러나 나의 준비도와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수업에 집중하는 광경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간절함과는 무관해 보이는 학생들의 무심함에 상처받을 각오로 추진하는 것이니 불만은 없다.

그러나 개별 진단테스트 시험지를 내게서 자발적으로 받아 가서 개별 컨설팅을 받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수업시간에도 집중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상처보다는 더 큰 보상을 받는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진학해서 나를 기억하고 내게 고마워할 것인지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


때로는 이 시기의 수업이 나만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나만 좋자고 하는 것인지... 학생들의 자세나 태도를 보면 혼란스럽기도 하다. 교육특구 고등학교에서 학원과 인강의 달인인 학생들 중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내 수업에 열광했는데... 하면서 자꾸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을 맞이하고 무력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 중요한 것은 찌질한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려는 선생님의 간절함과 그 노력이 학생들에게도 삶으로 전해지는 것과,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나의 이런 씨를 뿌리는 노력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얼마 전 대구 시내 고등학교에서 겨울방학 예비 고3 영어몰입수업 요청을 받았다. 수능 최저등급에 특히 영어가 필요한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라서, 학생들의 엄청난 절실함과 열정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벌써 설렌다. 그들에게 그 절실함은 절망보다 희망에 가까운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우리 중3 아이들에게도 절망이 아닌 희망에 가까운 절실함이 조금씩이라도 솟아나서 희망의 크기를 계속 지켜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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