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축제를 지나며, 교사에게 필요한 기질?

by 청블리쌤

학교 축제가 끝나니 겨울방학이 눈앞에 있다.

학생들은 이곳을 목표로 달려왔다. 그리고 한 번에 다 쏟아내기 아까울 정도의 그 에너지를 그 순간에 다 쏟아내었다.

물론 연습하는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더 길고 깊은 추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우리 학년부장님은 꿈끼 행사들을 서류상으로가 아닌 정말 학생들 입장에서 행복을 지켜주도록 애쓰셨다.

혹시라도 내가 학년부장이 되었다면, 아이들은 불행했을 것이다. 어설프게 윈터스쿨 같은 면학 분위기를 잡으려다가 학습과 추억, 행복을 모두 놓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중요하다는 명분은 분명했겠지만, 생각해 보니 난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유형의 교사였으니 다른 가능성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니.

중학생들은 고등학생들에 비해 절실함이 부족하고, 추상화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해 나의 수업과 교감의 노력이 반사되어 나오는 듯한 좌절감을 못 견디는 것도 있지만, 쇼맨십도 부족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주기에는 나 자신의 역량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중학교에 온 것이 중학생들에게 재앙이지 않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하게 되었다.


축제 무대 공연 사이에 있었던 레크리에이션 시간... 우리 반 학생이 무대에 나와서.. 존경하는 선생님을 모시고 나오라 했는데.. 내가 마침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나대신 다른 선생님을 모시고 나와서 댄스를 따라 했었다고...

그 얘기를 전해 듣고는 학생들을 즐겁게 해 줄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 잘 피해있었다는 안도의 마음을 가졌던 건..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나도 고등학교 수학여행, 야영, 졸업여행에서도 선생님들을 무대로 불러 올리는 시간을 열정적으로 피해 다녔다.

학생들은 나의 망가지는 모습을 통해 더 즐거워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걸 못해주었다.

요즘 MBTI로 말하면 늘 극강 “I”라는 벽 뒤에 숨어서 그래도 될 것처럼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납득시키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엔터테이너 같은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교사들을 볼 때마다 난 뜨겁게 부러웠다. 교사들 중에 E보다 I가 두 배가 더 많다는 설문조사를 참고하지 않더라도, 교사들 중에서 뼛속까지 사교적인 분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렇지만 사교성이 부족한 나와 다른 점은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럼에도 그 벽을 넘어서려 애쓰고 계시다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유형의 교사가 될 수도, 그러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다양한 교사들을 통해 더 다양한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니, 표준화된 기준을 제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부족함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비논리적인 결론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자신의 부족함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은 표준화된 내신성적과 입학성적 등으로 비교당하며 자신의 다름을 열등감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고, 끊임없는 성장의 가능성으로 위로받고, 실제로 사소한 배움과 성장에도 격려를 받으며, 실패와 좌절이 끝이 아닌 더 큰 도약의 기회임을 머리와 가슴으로 모두 받아들이도록 해주려면, 교사의 연약한 모습도 아이들에게는 용기를 낼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 앞에서 망가지는 것이 두려워서 무대에 서지도 못하는 내가 당당하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우리 학교는 전체 학반을 대상으로 댄스 경연 대회를 했다. 학년별로 2시간 동안 대회를 진행했고, 그전에 학반별로 연습을 했다. 신기한 건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참여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잘할 자신이 없으면, 이길 자신이 없으면 아예 출전조차 하지 않았던 소심한 내가, 완전 몸치인 내가, 교사로서 무대공포증이 있는 듯이 도망 다녔던 내가 지금 아이들처럼 학반의 댄스 경연에 동참했을까?

내게는 늘 실패에 대한 불안감과 강박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완벽하지 않다면, 잘한다는 것만으로 도전의 이유를 찾지 못했던 어설픈 완벽주의가 인간관계에서도 모험을 하지 못하게 했다. 늘 내가 줄 수 있는 상처 때문에 친밀한 관계가 되는 걸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학생들과 잘 지내고, 결혼을 해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 내가 감사하게도 딸들을 통해서 나의 부족함을 상쇄하는 듯한 체험을 하기는 했었다.

중학교 때부터 밴드부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큰딸과 댄스부에서 댄스와 안무로 인기를 끌었던 둘째 딸을 보면서 내가 공연한 것처럼 너무 뿌듯했다.

교사를 하면서 댄스부 학생들과 유독 잘 지내고, 더 감탄을 했던 건 내가 잘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한 자기 인정과 잘하는 이들에 대한 찬사와 존경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내가 바뀔 수 없다면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은 나 같은 존재도 균형적 발전을 위해 필요할 것이라는 자기 위로가 착각으로 그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난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겉으로는 인정과 존중을 추구하지 않는 척하지만, 우연하게 주어지는 이런 인정에 감격해한다. 부족함과 연약함이 뚜렷한데도 누군가에게 진심이 가닿고 교육의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을 부족함 투성이의 낮은 곳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학부모님의 추천으로 받게 된 대구교육청 <아름다운 선생님> 그 추천 내용에는 고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의 진로와 진학에 도움을 준 내용이 그득하다. 재미있게 해주고, 함께 춤췄던 기억은 없었다. 그렇지만, 난 그저 내 자리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나만의 진심과 사랑을 다 쏟아붓기만 하면 된다. 부족한 모습 그대로라도.. 나의 부족함은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이들의 만남에서 채울 것이니.. 내 한계를 인정한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거니까...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556729176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등학교 수능 1등급 영어 수업을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