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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으며 바라본 위로자의 역할

by 청블리쌤

난 항상 위로를 주는 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블로그 이웃들에게, 친구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서 그 귀한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주는 사람은 사소한 말 몇 마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받는 이에게는 삶의 변화까지 줄 수 있는 감동일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


어제 블로그에 광고를 달게 되었다는 포스팅을 올렸는데... 내 블로그에 광고가 갑자기 생긴 것에 대해 이해를 넘어서 오히려 이렇게 응원까지 해주시는 다정한 댓글을 보고 눈물이 날 뻔했다.


선생님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더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는데요 ^^


팬이에요~ 제가 종종 고의적 실수(?)로 눌러서 수익을 늘려드리겠습니다 이왕 포스팅하시는 거 광고로도 더 많이 버세요^^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요^^

오히려 애드 건너뛰며 읽는 건 익숙합니다~~

비슷한 타이밍에 친구의 톡 답장을 보고도 난 울고 있었다.


대입 재수했던 작은 딸의 이야기는 딸이 불편해해서 글을 비공개로 하거나 아예 글을 쓰지 않았다.

딸이 재수하는 것을 기억하던 블로그 이웃분은 블로그 포스팅에 불안함이 보이지 않아 어느 정도 안정된 결과에 이르렀을 거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주시기도 했을 정도다.


셰어런팅(sharenting)은 SNS 상에 자녀의 모습을 공유하는,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현상을 가리킨다.


우선 자녀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셰어런팅은 아동의 자기결정권과 초상권 등을 침해한다는 문제점이 생긴다. 더불어 부모가 무심코 올린 자녀의 사진과 영상으로 자녀의 이름이나 거주지 등 개인정보가 노출돼 범죄 타깃이 될 수도 있다. - 조선에듀 기사

https://edu.chosun.com/m/edu_article.html?contid=2023052601383

딸들은 자신의 음악 및 댄스 동영상을 블로그에 공유하는 걸 원하지 않았고, 나도 사진과 영상을 올릴 생각은 없었다. 학교생활을 블로그에 쓰긴 하지만 얼굴이 나오는 사진이나 영상은 올리지 않는다. 초상권 활용 동의서를 서면으로 받으면 되지만, 동의하고 나중에 후회할 일이 있으면 안 될 거라서.


사진과 동영상이 아니라도 딸이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일일이 다 올리는 걸 원치 않으니 그 뜻을 존중해 주고 싶다.

그래서 자세하게 공개할 수는 없지만...

수능도 망했고, 수능 망할 때를 대비해 백업으로 내놓은 논술도 예비 번호 문턱에서 좌절되었다. 고통의 원인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한 달 넘게 매일 조금씩 애써 무뎌지는 방법으로 겨우 마음을 안정시켜 정시원서를 작성했고... 평소 큰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었던 가족과 친구에게 공유했다.


아들 학습 및 입시 컨설팅도 해주고, 수험생 학부모로 평안을 유지하며 잘 지낼 수 있게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던 대학교 친구에게 소식을 알려주었다. 얼마 전 아들의 정신적 멘토라고 하면서 내게 고마움의 마음으로 수시 결과를 공유해 주었고, 좋은 소식이든 아니든 그동안 응원의 마음을 보내준 친구에게도 알려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로부터 이렇게 답변이 온 거였다.


내 친구 **이 딸 **이는 얼마나 더 야무지고 똑똑할까...

'내가 50 넘게 살아보니 운이라는 것이 평생에 펼쳐져 있어서 니꽃은 언제 필지 알 수 없어. 가을 국화가 지금 피는 동백꽃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어' 라는 말은 당사자에게는 도움이 안 될 거다마는 우리가 살아보니 깨닫는 거 있잖아.

지금이 내 인생의 서사를 완성하는 과정이라는...

아빠를 닮아 글을 잘 쓴다면 작가가 되어도 *** 급이 될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부모는 애들 앞에 돌덩이를 치워줄 수는 없어. 다만 그 애가 안전하게 잘 돌아가서 '그까짓 것' 할 수 있는 멘탈을 키울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거지.

니가 나한테 얘기한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해 아쉽겠지만 올해 가게 될 학교에서 본인 그릇의 능력을 발휘할 거다'라는 응원과 축복을 **이에게 보낸다.


이렇게 한마디 한마디가 절실하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딸도 친구의 톡에 이렇게 답했다.

교사로서 난 “아픔은 사명”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 나의 아픔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는 위로의 선물이 될 수 있으니까.

딸의 눈물과 아픔은 이후 딸이 만날 많은 이들에게 큰 진심 어린 위로와 힘이 되어 줄 거라 믿고 싶다.

나도 위로자의 자리를 자처하며 변함없이 서 있으려 한다. 아픔만큼 누군가에게 위로의 마음이 가닿을 수 있다면 나의 고통조차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이미 감사의 제목이다.

아픔이 가득할 때는 아픔 자체보다 이미 가지고 있으나 잊고 살았던 당연한 것들을 더 돌아볼 기회이기도 한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축복 같은 삶과 모든 만남, 가족과 친구, 블로그 이웃분들의 소중한 존재가 눈물겹도록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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