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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함께여서 당연한 건 없다(Feat.최애 카페 소개)

by 청블리쌤

졸업한 제자들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건 내게 덤으로 얻게 되는 축복이다. 코로나로 학교 출입이 제한되면서 찾아오는 제자들의 숫자가 급감했지만, 여전히 날 찾는 제자들과 따로 만날 장소가 필요했다.

건축가인 유현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카페가 성행하는 것은 만남의 공간이 필요해서라고 했다. 암묵적으로 합의된 시간 동안 장소를 대여하는 개념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페라는 공간은 장소 대여의 개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

가까운 곳에 교회 카페가 있고, 놀라운 가성비에 분위기도 좋지만 난 주로 다른 카페에서 제자들을 만난다.

커피도, 에그타르트 등 디저트도 맛있고, 예쁘고 정겨운 인테리어에, 진심 어린 온기가 전해지는 아늑한 곳이기도 하지만, 제자가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는 카페라서 일부러 가는 것도 있다.



카페에 처음 갔을 때는 제자는 서울에서 대학 학부와 석사과정 중이었는데 놀랍게도 어머님께서 날 알아보셨고 갈 때마다 진심으로 반가워해 주셨다. 어머님은 카페 뒤에서 직접 재배하는 꽃으로 플레이트를 장식하기도 하셨고, 트렌드에 맞춰 달고나를 직접 만들 때 함께 갔던 제자들에게 체험을 시켜주시기도 했고, 여름에 수박주스를 만들 때 수박을 자르며 마침 친구랑 카페에 방문한 딸에게 수박을 먹으라고 정을 담아 주시기도 했다고 한다. 내 딸인지도 모르셨다는데 그렇게 누구에게라도 진심 어린 친절을 베푸시는 분이다.



이후 서울에서 내려와서 직접 에그타르트와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며 카페 일을 돕고 있는 제자는 세월의 흐름을 넘어선 듯 갈 때마다 나를 편안하게 대해준다. 10년도 훨씬 더 지났는데 마치 엊그제 고등학교에서 만난 것처럼...

담임은 하지 않았지만 좋은 기억의 여전히 소중한 제자인데 다른 제자들만 데려오고 정작 제자를 따로 만나 챙겨주지 못한 것이 어느 순간 미안해졌다. 마음만 먹으면 카페에 올 때마다 얼마든 볼 수 있으니 만남 자체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만날 때 반가운 인사 외에는 긴 세월을 넘어 살아온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거다.

가까이 있어서, 늘 함께라는 안도감으로 인한 것이라도 그 만남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지난번 카페에 들렀을 때 내가 식사를 하자고 청했고 드디어 그 약속을 지켰다.

만나자마자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와 고등학교 시절 추억도 공유했다.



그러다 제자가 갑자기 고1 영어시간의 기억을 소환했다. 그때 내가 영어 수업시간 틈틈이 미드 <프렌즈>를 보여줬던 것을 기억했다. 시험영어와 수업영어를 넘어서 의사소통을 하고 실제 사용되는 언어로서 영어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 후로도 혼밥 할 때도 <프렌즈>와 함께 하는 등 계속해서 영어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고... 대학가서도 학교 수업이나, 토익 등의 상황에서도 영어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그래서 내게 참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내 기억 속의 제자는 반장의 리더십에 영어를 매우 잘했던 모범생이었다.

미술로 대학 가려는 학생들에게 성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제자 이야기를 자주 꺼냈었다. 고3 때 오히려 실기 학원을 줄이고 공부에 집중하면서, 수능 끝나고 나서 실기에 집중했던 제자가 이화여대를 진학했다고 하면서 공부하기 싫어서 도망가듯 실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내 수업과 미드 소개가 아니었어도 혼자서도 잘 해냈을 학생이었음에도 겸손하게 내게 고마움을 전하는 제자의 마음 씀이 따뜻하게 전달되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어도 낭비 같아 보일 수도 있는 그 시간에 영어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살아 있는 언어로서 영어를 만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문이 열리는 기회가 될 거라는 기대감을 이 제자는 진즉에 알아봤던 것이어서 더 감동이었다.

(그 당시 주 1회 프렌즈를 걸고 학생들에게 단어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예습 단어 범위를 놓고 전체 학생에게 단어를 물어 3-5명까지만 틀리고 다 맞히면 프렌즈를 본다고 예고하면, 학생들이 수업 직전까지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 단어 공부를 시키면서 열의를 보였다. 난 누구 때문에 프렌즈를 못 봤다며 서로를 공격당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되니, 이미 파악하고 있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여 테트를 했다. 학생들은 테스트 내내 심장 쫄깃하게 해주고 결국에는 프렌즈 보는 것을 성취해 내는 기쁨까지 선물했다. 그렇게 프렌즈를 보기까지의 과정도 설렘이 가득했을 것이며 ㅋㅋㅋ 프렌즈를 보는 순간 아이들은 수업영어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재미를 느꼈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영어에 젖어들었을 것이라고 아직까지도 혼자 착각하듯 확신하고 있다)



짧은 만남의 시간에 모든 세월의 흐름을 다 커버할 수는 없었지만 그동안의 여정 중의 일부를 확인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든 성장을 이뤄온 제자의 모습에 뿌듯한 감정과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제자는 내가 저녁을 살 것임을 직감한 듯, 내게 카페에서 갓 구어 온 에그타르트를 선물로 안겼다.

헤어지고 나서 인사를 전해 온 제자에게 이렇게 답장을 해주었다.



고맙다 **아 세월의 흐름을 넘어서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넌 그렇게 계속 성장하고 있었구나. 둘째 딸은 너가 준 에그타르트를 보자마자 먹방을 찍듯 감탄하면서, 에그타르트 팬인 친구에게 인증샷도 보내고 놀리면서 재밌고 맛있게 먹었고 함께 먹으면서 나도 두 배로 행복했다. 아내도 행복해했고. 저녁식사시간부터 귀가한 후까지 행복한 시간 선물해 줘서 고맙다. 또 편안하게 들를게^^



간접광고의 효과를 기대하지만, 협찬은 아니고... 순수한 의도로 나의 최애 카페를 소개한다.

좋은 장소를 나만 알고 있는 것이 미안해서라도...

대구 김광석 길 근처를 지나시는 분들은 한 번씩 들르셔도 좋을 것 같다.



대구 김광석길 카페 "바람이불어오는곳"

https://naver.me/xDsT3H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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