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웃이신 선생님 한 분이 겨울방학 수업에서 자기주도학습 지도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하셔서, 그 질문이 내게는 블로그 글의 소재가 되었다.
특히 준비 안 된 학생들, 고등학생들보다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때면 더 막막하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팁을 나눠보려 한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주도학습의 키워드는 습관(형성), 멈춤(으로 이해), 기본기(확립)이다.
1.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서둘러도 안 된다. 그래서 그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특히 부모 입장이라면 개입과 방임 사이에 중심을 잡기가 너무 어렵다.
일단 아이들을 본능에 충실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2. 그러면 무엇부터 시작인가?
사소하고 찌질한 것부터 시작한다.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학습된 무력감이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성취감에서 지속성의 힘을 얻도록 한다. 그러려면 어른들의 기준과 기대는 충분히 낮아야 한다.
아이에 따라서는 수업을 제대로 안 들어도 수업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해 줘야 할 때도 있다.
학원을 다니는 건 대개 자기주도학습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가고 싶지 않아도 몸을 일으키고, 하고 싶지 않아도 숙제를 해내려는 과정 자체가 절제력을 키우는 과정일 수도 있어서,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고,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이 시작되면 이때의 절제력은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3. 자기효능감의 중요성 – 유쾌한 강제성
그러나 차츰 시키는 것만 하는 데서 벗어날 기회를 봐야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자기효능감이다. 시켜서 끝낸 교재는 큰 감흥이 없지만, 자발적으로 시작해서 스스로 관리하며 끝낸 교재에 대해서 아이들은 감동하고 흥분한다. 난 그런 효과를 자기효능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학교에서 영어멘토링학습코칭을 하는 것도 자기효능감을 위한 것이다. 그래야 훗날 영어멘토링이 끝나도 자기주도적 학습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멘토링은 영어교과의 실력향상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효능감도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면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이내 본능의 흐름을 따르게 되어 있다.
점검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하되, 불쾌함의 경계를 넘지 않으려면 초반의 문턱은 많이 낮아야 한다.
플래너를 점검하기로 했다면, 일단 플래너 준비한 것만으로, 제출한 것만으로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자기 증명을 확증해 준다. 상대평가 시스템 내에서 우수한 학생들과 강제로 비교당하면서 자신은 아무리 해도 안된다는 패배감이나 무력감에 매몰되어 있으면 용기를 낼 수가 없다.
그러니 점검자가 할 일은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의 성장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리고 사소한 과정의 성과도 다른 학생들보다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며 애정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일이다.
4. 저학년이라면?
유쾌함과 불쾌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제성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저학년이라면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더 빠르게 형성되는 강점과 약점이 공존한다.
그러니 자기효능감의 관점으로 아이들이 움직이기를 바라기보다 감당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을 반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담임교사로서 난 학생들에게 매일 하는 꾸준한 습관형성 중요성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도(실제로 습관형성과 실력 향상을 이루기도 하지만) 등교 직후 아침마다 단어시험을 치고, 아침독서 시간을 운영한다. 하기 싫어도 매일 일정 분량의 애쓰는 과정을 매일 훈련하는 것이다. 굳이 할지 말지를 고민할 여지를 주지 않고 학부모님들께 취지를 설명하는 단체 편지를 보내드리면서 공언한다. 아이들은 부모님께 전해지는 편지의 무게를 느낀다. 그리고 모두가 하면 같이 따라 하는 군중심리도 작용한다. 그것이 문화가 되도록 하면 된다.
그래서 처음보다는 덜 애써도 일정한 시간에 단어를 공부해서 시험치고, 짧은 시간에 독서하는 것이 편해지면 그 다음은 내가 간섭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기만의 습관을 서서히 가지게 된다.
매일 영어단어의 분량은 내가 정해주지만, 독서는 각자 원하는 책을 무엇이든 읽을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다.
플래너 검사는 매일 하기 어려워서 주 1회 검사를 하면서 뭔가 억지로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매일 글 한 편씩 읽고 댓글달기 활동도 한다. 글 읽기가 귀찮아서 남의 댓글 보고 댓글 다는 아이들이 많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뭔가 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당장은 나의 타이밍에 아이들이 굴복하는 것을 확인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기다려준다.
남들과 비교해서 상대평가 식으로 학생들의 활동을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각자 출발점에서 각자의 속도와 역량만 발휘하도록 지켜봐 주면, 불쾌한 강제성은 이내 유쾌한 강제성으로 전환하는 시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런 시간과 활동이 누적되어 아이들이 이후 영어단어가 보이기 시작하고, 문해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효능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5. 습관의 강력함
“마음의 의지를 몸이 기억할 때까지”
습관형성을 위한 여름방학 자습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떠오른 문구였다. 이 문구는 그 프로젝트의 모토가 되었다. 자발적으로 자습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마음의 의지였지만, 그게 몸에 새겨져야, 그 기간을 지나서도 자발적으로 자습을 할 기회가 열릴 것이니까.
그런 자발성을 기대할 수 없다면, 타인의 의지로라도 몸이 기억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너무 강압적이지만 않다면, 원하는 성과를 재촉하거나 타이밍을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초라한 시작과 과정도 인정해 줄 수 있다면, 어른들의 인내와 기다림만큼 아이들은 용기를 낼 수 있다.
물론 현실의 벽 앞에 상처받은 대가로 절실함을 얻게 된 고등학생들이 아닌 절실함이 부족한 초중학교 학생들이라면 더 답답한 기다림의 과정이 필연임도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6. 멈춤의 미학
멈춰야 생각할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 속도를 강조하면 암기할 수밖에 없다. 암기는 일회적이며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자기주도학습은 멈춤에서 더 깊은 뿌리를 내린다.
그러니까 실수와 좌절을 발견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걸 인정하려 하지 않으니까 바로 학원을 보내서 학생들 스스로 모르는 것을 찾아낼 기회를 박탈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면서 학원에서 착각만 늘어날 수 있음을 조심해야 한다.
멈춰야 보인다. 멈춤으로만 숙성되는 지식의 체계도 있다.
시간이 많이 들고 낭비 같아 보여도 왜 그런지를 늘 생각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7. 기본기 확립
구구단을 모르면 곱셈을 할 수 없다. 학생들이 지금 수업진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이전 어디선가 기본기가 누락된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뒤를 돌아보는 것인데 우리나라 교육은 늘 앞만 볼 것을 강요하며, 그걸 우린 “선행학습”이라고 한다.
멈춰서 생각을 해도 기본기가 없으면 이해의 연결고리를 여전히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난 선행학습 대신 후행학습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다.
아이들이 뭔가를 이해를 해야 새롭게 배우고 깨닫는 즐거움을 회복할 것이 아닌가? 그런 즐거움 없이 공부를 강요한다면 이건 그저 노동일 것이니...
조급함도 내려놓고 용기를 가지고 후행학습을 하며 기본기를 채우도록 하는 본인의 노력 이전에 어른들의 현명한 코칭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사소한 성과에도, 그것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애쓴 노력의 결과라면 격려를 해야 하지만, 후행을 위한 용기에도 박수를 쳐줘야 한다.
습관형성이 되어야 확립된 기본기로 지속적인 자기주도학습이 이뤄지겠지만, 기본기부터 해야 습관형성도 될 수 있다. 기본기 없는 학습은 그저 정신력으로만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8. 메타인지와 회복탄력성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모른다면 영영 자기주도학습을 완성할 수 없다. 영어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고, 문장구조를 파악하지 못해도 상상독해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고 해석이 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 착각 속에 머물러 있으면 혼자서 뭘 해야 할지 모르니, 그냥 계속 학원수업을 들어야 공부라는 행위를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을 하려는 용기를 내기도 어렵지만 자기주도학습은 반드시 초반의 성적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니,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학원에 의지하게 되는 수순을 밟는다.
교사나 부모는 이 지점에서 학생들이 선행 진도로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무엇을 잘 모르고, 어디가 부족한지를 알아낼 기회를 주어야 하고, 그런 부족함의 발견이 부끄러움이 아닌 성장의 시작이며, 방향이 맞는다면 결국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응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터널처럼 답답하고 그 끝을 기약할 수 없어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학원을 다니는 것으로 마음의 부담과 불안함을 해결하려 한다.
오히려 자기주도학습을 위해서는 무작정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학습코칭이 더 필요할 수 있다.
그래서 난 학교에서 무료로 영어멘토링 학습코칭을 진행한다. 수업시간에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단어와 문법, 구문을 제시해서 학생들이 기본기가 되어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있다.
많은 공교육교사들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학생과 학부모님들의 공교육 불신과는 별개로...
9. 결국은 학생들 스스로만 할 수 있는 길
실패도 학생들의 몫이고 성취도 오롯이 그들의 몫이어야 한다.
나의 모든 교육 과정의 목표는 자립을 위한 것이다. 그건 자기주도학습과 유사어다.
2주간의 겨울방학 고등학교 영어몰입수업의 목표도 자립이어야 했다.
교사는 자신이 필요 없는 순간을 위해 애써야 할 숙명을 가졌다.
그 말은 처음엔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본기 확립을 위한 교사의 이해와 원리 중심의 압축된 수업과 지도가 초반기에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학습은 학생들이 하는 것이므로 단어학습과 복습은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기본기를 어느 정도 지도한 후에는 완전하지 않아도 학생들 스스로 걸음마를 시작하듯 혼자서 해결하도록 기회를 준다.
방학수업은 2주간의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그걸 지켜보며 개별적으로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자신이 뭘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수업보다 일대일 지도가 학생들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교사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이 모든 과정을 기본 수준부터 빌드 업할 수 있도록 지켜봐는 후속 과정도 필요했다.
완벽하고 완성된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느낌이 든다면 이해를 위한 잠시 멈춤이 아니라 완전 멈춤이 될 것이니, 부족함과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은 희망을 노래하며 마음의 응원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훗날 아이들이 교사의 도움과 존재의 흔적조차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그랬다면 더 성공인 것이다. 거의 온전한 독립을 이루어갔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으니...
10. 학원 안 가도 되는 3가지 조건(Feat. 슬기로운 학원 사용법)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312963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