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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Feb 28. 2024

2월 3개의 강연, 각기 다른 소중한 깨달음

<첫 번째 강연. 대구 달성군 고등학교 영어교사  대상>

20년 전에 동학년을 하던 선배님을 다시 만났다. 동시대 대학을 다녔던 후배와, 조교로 처음 뵈었던 선배님도 마치 세월을 잠시 정지 해둔 것처럼 그렇게 재회했다. 머리는 다들 희끗해졌고, 얼굴도 좀 달라졌다.

그러나 동시대를 함께 했다는 건 엄청난 의미가 있는 거였다.


나이가 드니까 기억을 정기적으로 비워내는 듯, 익숙했던 것조차 소실되는 상실감을 자주 마주한다.

강의 와서 대면한 분들 중에, 분명 어디선가 뵌 것 같은데, 어디서 함께 근무했는지, 성함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반갑게 인사를 드렸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민망함도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때의 얼굴이 박제된 듯 그대로 머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세월의 무차별 공격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임용 동기쌤도 그 연수 받는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 긴 기간 동안 단 한 번이 동일한 근무지가 허락되지 않았음이 신기할 정도로 대구의 공립고등학교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게다가 인사규정 상 오랫동안 고등학교에 머물렀던 사람들부터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원하는 선생님의 인원만큼 순환근무를 하게 되어 있어 얼마 남지 않은 교직생활 중 같은 근무지에 있게 될 확률이 거의 제로에 수렴할 듯했다. 


게다가 대구에 편입된 달성군은 대구 시내에 거주하는 분들에게는 거리 이슈로 인해 기피 근무지라서, 수요만큼 경력 많은 순으로 희망에 관계없이 발령이 난다. 군위군도 대구에 편입되어 대구시 초중고 교사들의 고민이 하나 더해졌다.


나도 인사규정으로 인해 고등학교에만 있다가 중학교에, 그리고 달성군 지역 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시내 학교에 비해 먼 거리는 맞다.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는 그래도 지하철역에서 10분만 걸으면 되는 역세권이라서, 시내에 지하철이 닿지 않는 곳보다는 차가 없는 나로서는 훨씬 유리한 곳이라는 걸 감사함의 제목으로 간직하고 지냈다.


이번에 달성군 고등학교 강의를 수락하고 학교로 향하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미안함과 감사함이었다. 같은 달성군이지만 훨씬 멀고 교통이 불편한 곳이어서 그 학교 선생님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멀다는 느낌으로 힘겨워했던 일상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 감사가 그곳에 계신 선생님들의 상대적으로 더 큰 불편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감사함도 미안함의 이유가 되었다.


학교로 향하는 시내버스는 내 생애 처음 겪는 혼란스러움이었다. 시내버스라고 규정하기에는 무정차로 10-15분가량을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면서 달렸다. 한참을 고속도로 같은 도로를 달리니 현대화된 도심지가 나왔다. 먼 거리를 달려와서 외딴섬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아파트가 많고 상권도 발달한 대구 도시 자체였다.


우리 집 근처에서 매일 이 길을 운전으로 출퇴근하셔야 했던 존경하는 선배님의 일상이 떠올랐다. 난 단 한 번의 강의를 이벤트처럼 다녀와도... 다녀오고 나서 멀미 기운이 잔존하고 피곤이 겹쳐 너무 힘들었는데... 선배님은 어떻게 이 길을 매일 일상처럼 다니셨을지... 

그래서 오래간만에 선배님과 긴 통화를 했다. 선배님은 마음 써줘서 고맙다는 말씀으로 내 미안함을 애써 덮으려 하셨다. 


선배님과 후배님, 입사 동기쌤, 글로벌센터에서 강연할 때 파견교사로 강의를 도우셨던 선생님 등 대부분은 내게 엄청난 환대를 베풀어주셨다. 강의 전에도 강의 후에도, 그리고 긴 강의시간 내내 몰입으로 환대해 주셨다. 나를 초대해 주셨던 선배 선생님은 내 강의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반응해 주시고, 웃어주시며 순수한 배움의 열정과 겸손한 모습을, 따뜻함을 전하는 진심을, 20년 전 기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 강의 내내 보여주셨다. 내가 뭔가를 보여드리려 온 것이 아니라 축복받으러 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강의 내내 행복했다.


마치고 나의 진로를 물으셔서... 어차피 나이 들면 담임을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수석교사도 함께 고민 중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사소한 말도 기억하셨다가... 다음날 아침 이런 메시지와 함께 선물도 보내주셨다ㅠㅠ

그 먼 거리를 달려오셔서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 거듭 곱씹으며 영어선생님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소금처럼 빛처럼 귀한 역할하실 수석선생님되실 겁니다~




<두 번째 강연, 우리 학교 전체 교직원 대상>

다음 날 공교롭게도 우리 학교 전체 교사 대상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새로 오신 분들은 대부분 이렇게 먼 거리가 처음이신 분들이 많아 가슴속에 한 같은 감정이 응어리지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강의 시작할 때 경력만 많은 것이 아니라 후배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주면서도 능력이 뛰어나신 배울 점이 많은 학교 내 선배 선생님들의 존재와 학교의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배려하는 문화와 학생들의 순수함 등의 장점이 그 먼 거리를 압도한다는 걸 곧 느끼게 되실 거라는 환영의 인사를 전하면서, 전날 강의를 다녀오면서 느낀 점을 공유했다. 같은 달성군이라도 거리로 봤을 때도 우리는 운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니 감사할 일이지만, 그 감사함조차 더 먼 지역에 발령을 받으신 더 많은 선생님들에 대한 미안함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그러고는 예전에 우리 학교 강연할 때의 느낌 그대로 우리 학교 쌤들은 강의 내내 몰입과 경청으로 나의 부족함까지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주셨다. 덕분에 난 확신을 갖고 행복교육을 마음껏 외쳤다. 

마중물 같은 교사의 사명과 사교육보다 오히려 우위에 있는 공교육 교사의 역할, 그 장점과 역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에듀테크를 활용한 티칭과 코칭의 방법을 내 영어멘토링학습코칭과 온라인자기주도학습코칭 등의 사례를 더해서 간결하게 전달했다. 

강의 후에 내가 수석교사는 아니지만 개별 상담과 컨설팅도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내 강의를 경청해 주셨던 덕분이었는지, 3학년 담임쌤들께 학년부장의 욕심으로 말씀드렸던, 학년 차원에서 전체 학생들 대상으로 한 매일 아침 단어시험, 아침독서 시간 운영을 함께 하기로 해주셨고, 희망자들 대상 자기주도학습 코칭 및 청블리 댓글부대(매일 글 한편 읽고 댓글 쓰기) 프로그램에 각 반 학생들 참여 양해를 구할 때 당연한 듯 기꺼이 반응해 주셨다. 

올 한 해 학생들과 함께하는 행복교육을 함께 그려볼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




<세 번째 강연, 대구 수성고 중학교 영어교사 대상>

집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 중학교 영어교사 대상 강의를 갔다. 가랑비가 추적거렸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맞고도 다닐 것 같은 가뿐함이었다.

3년을 함께 근무하고 이동하신 선배 선생님이 계셨다. 강의 끝나고 알았는데 오래전 가르쳤던 제자의 어머님도 계셨다. 학교 규모가 작아서 5분의 선생님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선배 선생님의 친근함 때문인지 무대에 서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둘러앉아 얘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난감했다. 준비한 원고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즉흥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블로그 학부모 컨설팅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실과 한계, 그리고 공교육교사로서의 역할 등에 화두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냥 나오는 대로 이야기를 쭉 이어갔다. 


그동안은 ppt를 제시하면서 대본을 외우지 않는 자연스러움은 물론 있었지만 그 흐름에 맞춰 이야기를 이어갔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두서없이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찾아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기했다. 그렇게 90분 이상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물론 이야기하다가 준비한 ppt를 찾아서 보여드리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격한 반응을 보여주셨고, 어떤 선생님의 눈물도 보았다. 감성이 풍부하신 건지, 힘든 교직생활의 여러 가지 상처를 기억해 내신 것인지, 가능성은 낮지만 내 강의에 감동을 받으신 건지... 나도 함께 먹먹해졌다.


교사들은...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최전선에서 학생들을 만난다. 

사회적 인정, 풍부한 보수를 기대할 수도 없고 그런 걸 바라고 교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영혼이 귀하고 그들의 행복을 지켜줘야 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그걸 학생들이 인지하고 교사의 모든 교육을 따르기에는 아직 철이 없거나, 각자의 성장 단계 상 교육을 받을 준비가 안 된 학생들이 너무 많으므로 교사들은 매 순간 좌절을 경험한다. 게다가 학부모님도 더 이상 교사의 편이 아님을 민원으로 확인하는 순간에 교사는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교사가 영혼을 갈아 넣어서 아이가 성장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 그 역할의 지분을 주장할 수도 없다. 정작 아이들은 누구 덕에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성장의 트랙으로 올라섰는지 대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씩 감사함을 전하고, 교사의 역할을 인정해 주는 학생들의 표현을 마주하면 사소해 보이는 그 한 마디에 교사는 그동안의 설움과 좌절감, 그 이상의 보상과 행복을 보상받는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실 사소한 것이다. 진심이 담긴 한 마디 말이 상대방의 행동과 삶에까지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선생님들께 이랬다. 그런 인정과 감사는 비정상적인 거라 생각하시라고. 어쩌다 한 번씩 주어지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오히려 우리의 열정과 노력은 확인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채로 허공에 사라지는 것이 디폴트값이라고.. 그러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우리의 교육활동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런 눈물겨운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감성, 감동, 재미를 담은 티칭과 코칭의 실례와 사례를 말씀드렸다. 


마칠 때까지 난 그렇게 적은 인원에서 그렇게 큰 감동을 누릴 수가 없었다.

선배선생님 두 분과 후배교사님들 세 분이서 주셨던 몰입과 전염될 것 같은 열정과 환대와 같은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그 여운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블로그 이웃이기도 한 존경하는 수석교사님이 교사 워크샵 주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길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셨었다.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강의를 준비하면서도, 강의를 하면서도, 강의를 마치고도 난 성장했고 설렜고 행복했고 감사했다. 그리고 이런 벅찬 마음이 선한 영향력의 증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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