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리한 건가?
손과 팔이 매우 아프다. 새 학년 준비를 위해 학년부장으로서의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컴퓨터 작업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조퇴하고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간다고 하여 학년 담임쌤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학년 부장으로서의 나의 부재는 당장 담임쌤들께 부장 아닐 때보다 훨씬 더 큰 불편함이 될 것이라는 자리의 무게감을 느꼈다.
아무도 내게 그런 약속을 원한 적은 없었겠지만 주말, 주일 제외 1일 1글 원칙과 약속을 지키려 했었는데 ... 손과 팔의 통증으로 위기가 왔다.
퇴근하고 지쳐서 미드나 드라마를 보면서 저에너지모드로 시간을 보내다가,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있다 싶으면 그보다는 생산적인 작업이나 글 쓰는 일을 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는데...
열정만으로 무슨 일이든 추진하면 안 되는 거라는 슬픈 현실 인식...
아프다고 하면서 주말인데도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는 건 도대체ㅠㅠ
혹 열정은 그대로라도 체력과 건강은 예전 그대로가 아닐 것인데...
그럼에도 5월 말에 있을 고등학교 학부모 강의, 3월 말에 고등학교 두 군데에서 학생들 대상 영어학습법 강의 섭외에 망설임 없이 응했다. 모두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만, 내 열정에는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만, 건강과 체력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2. 오지랖 고민
학교에서 학부모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학교에서 강의는 강사료를 받을 수가 없으니 말 그대로 재능기부인데...
학교에서 3년간 학교 선생님들 대상으로 강연했던 것처럼, 누구라도 다른 곳에서 학부모 강의 많이 하면서 우리 학교에서는 왜 안 하냐는 말로 내게 강권하면 못이기는 척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업무부장님과 교감쌤께 메시지를 보내려 하다가 그냥 접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비결일 터인데... 굳이 우리 학교에서 행여 논란이나 민원의 소지가 될 최소한의 여지마저 굳이 감당하려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니...
3. 왜 청블리에 집착하는가?
학생들과 첫 수업시간의 첫 만남에서 이름 대신 청블리쌤이라는 호칭을 강요하니... 학생들은 인지부조화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어딜 봐서 (러)블리인 것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유지민이 누군지 아냐고 물은 후, 유지민보다 에스파의 “카리나”로 통하는 것처럼 쌤도 그렇게 부르면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말은 못 하고 “자기가 무슨 아이돌인 줄 아는가 보다” 하는 표정으로 내게 반응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부르다 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억지를 부렸다. 단 예의 바르게 청블리라고만 하지 말고, 청블리쌤이라 하라고는 했다.
늘 이런 억지가 통했지만, 이번 애들은 대체적으로 얌전하고 예의 바른 것 같아, 차마 그렇게 부르지 못하는 것을 꺼리는 느낌도 있었다.
학년 교무실에서도 학년부장이 되고 나니... 담임쌤들이 청블리쌤이라고 부르던 친근함이 아닌 “부장님”이라고들 하셔서 내가 거리가 느껴져서 섭섭하다고 했다. 그러니 쌤 한 분이 그러면 “청부장님”이라고 부르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하셔서 모두 웃었다.
나의 별명 집착이 날로 더해간다.
인지부조화도 있고, 말도 안 되니까 더 기억에 남는 거라고, 그 덕분에 웃으면서 더 친근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라고 스스로 납득시키려 하고 있다.
난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은가 보다.
4. 첫 수업 시간 후에 든 생각들...
반마다 첫 기간에 한참을 예비 고1로서의 행복교육을 외치고,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권하다 보니...
문득 마치 내가 무슨 교주가 되려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초면에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해봤고, 이렇게 교육적 성과를 이뤄왔고, 딸들에게도 사교육 없이 내 티칭과 코칭만으로 대학을 보냈고, 행복했고, 그래서 강연도 많이 다니고... 이러면서 굳이 필요 없는 이야기들로 아이들의 신뢰와 믿음을 강요하고 있었으니...
영어멘토링학습코칭 안내도... 빠를수록 좋다는 조급함으로 충분한 래포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하니 그런 억지스러움이 느껴져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냥 OT 없이 수업으로 시작해서 수업으로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어야 했는지...
꼭 나와 동행해야 대박 나는 건 아닐 텐데, 아무리 무료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도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아닌지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다.
영어멘토링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고, 다음 주까지 기한을 두고 한창 멘토링 신청을 받고 있다. 희망자는 내게 가정통신문 신청서를 직접 개별적으로 가져오라고 안내했다. 일대일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개별적으로 함께 시작의 다짐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어떻게든 더 친해져야 멘토로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등학교에서 150명까지 신청을 받아봤고 보통 100명 단위로 진행했던 성취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숫자에 미치지 못할수록 현실의 소중함을 망각하게 될 것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청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서 속상해하기보다 용기를 내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그게 한 명이든 두 명이든, 한 영혼에 집중할 일이다.
멘토링연계 채움대면수업도 신청을 받고 있다. 4명 이상이면 개설이 되는 수업이지만, 그보다는 아주 훨씬 더 많은 인원이 신청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교실 내에 다 수용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괜한 걱정... 그렇다고 성적으로 인원 조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절실함과 의지를 살펴서 이렇게 빡빡하게 진행할 것인데도 계속할 건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첫 수업시간에 남겼던 이야기의 일부는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