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한국 학습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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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답변 일부>
이렇게 장문의 답을 주시다니 감격했습니다.
...
한국의 경쟁적인 수능준비로 변별력이 높아지니 평범한 아이들도 억지로 지나친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 같아요.
영어는 제가 늘 궁금해했던 수능지문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학문이나 언어로서의 영어가 아니고 대학입학을 위한 도구라는 것도 이해했어요.
외국에서 만나는 흔해빠진 스카이출신의 수재들이나 드문드문 있는 지방대 출신이나 현지에서 드러나는 외국어 실력이 모두 대동소이한 것이 참 이상했거든요.
지금은 어떻게 하면 스카이를 간다는 것을 온 국민이 알게 돼서 너 나 할 것 없이(능력과 상관없이) 그 길로 뛰어들게 되었죠.
인터넷이 없던 시절, 그 길이 오픈되기 전, 정보의 부족으로 대부분의 학생이 수업과 교과서 참고서 위주로만 공부해도 되었던 그때가 정말 그립네요.
독일은 대학 진학 의지가 적고 다른 직업으로도 충분히 잘 살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공부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고 선행학습을 하면 학부모가 불려가서 단단히 혼이 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대부분 초집중을 하거든요. 그리고 집에 와서는 펑펑 놀아요. 오전에 공부했으니까요
물론 아비투어를 앞두고는 한국 애들 못지않게 공부합니다. 전적인 자율학습으로 하지 누가 도와주지 않아요. 그리고 대학에 가면 한국 애들보다 뛰어납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들었으니까요
저는 독일 가기 전에 한국에서 대학에서 강의했었는데 프레쉬맨들의 교수가 모든 내용을 입으로 떠먹여 주길 바라는 태도에 화가 치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독일은 초등생도 스스로 하는데 ㅠㅜ
선생님의 글 한자 한자가 너무 도움이 됩니다.
조언 감사드리며 아이와 함께 링크된 것도 보고 알려주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나의 답변>
장문의 답장 감사합니다. 지난번 말씀에 이어 오늘도 한 편의 강연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블로그에서, 강연을 다니면서 교사들과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교육 없는 자기주도학습 행복교육 등을 외치고 다니면서 우리나라 교육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제게 확신을 더해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따님이 수학을 지겨워하는 느낌도 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수학은 why보다 how에 집중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풀이 과정을 암기하여 그걸 시험칠 때 옮겨 적는 느낌까지 듭니다. 고등학교 내신 시험에서는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 시험범위의 내용을 암기할 정도로 숙달해서 시험에 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사교육 숲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런 키워드를 얘기해줍니다.
“멈춤”
그리고 왜 그런지를 생각하라는 것이죠. 암기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하는 것이니까, 그게 속도는 더딘 것 같아도 맞는 방향이니까요. 물론 진도 분량이 많아서 그럴 여유가 많이 주어지지는 않고, 학교 진도를 놓치는 순간 홍수에 떠내려가는 상실감이 있을 수 있으니, 그래서 조금 서둘러서 예습을 한다는 것이 과도한 선행 경쟁을 부추기는 것 같아요. 특히 의대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초등학교부터 의대 대비를 하게 되니 준비 안된 아이들이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겠죠.
뭘 알아야 재미도 있고, 이해도 되고 그래야 그다음을 기약하는데... 무작정 정해 놓은 결론으로 아이들을 억지로 몰아세우는 느낌도 듭니다.
제 딸들은 학원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문해력을 위해 책을 많이 읽혔구요. 학원 숙제를 억지로 안 해도 되니 큰 딸은 다들 그저 외우기만 하는 수학공식이 왜 그런지를 굳이 궁금해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수학시간에 수학문제를 풀면 모두가 신기해했다고 합니다. 보통은 풀이조차 표준화된 것처럼 배운 대로만 푸는데, 딸은 그런 정형화된 틀에 들어가지 않아서였겠죠.
그런데 큰딸을 선배 수학선생님께 상담을 받으니, 결론은 수학학원을 다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는 선행을 시키면 학부모가 단단히 혼난다는 이야기에... 저는 공교육 교사로부터도 학원 안 보내고 아이들을 방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어머님께서 외국에서 만나셨던 소위 한국입시에 맞춰 우수한 학생들의 현실과 한국 대학생들의 태도에 대한 말씀을 보며 저도 뭔가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독일은 초등생도 스스로 하는데... 한국의 대학생들은 시키지 않으면 안 하는 데 익숙하니까 혼자서는 결정을 잘 못 내리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은 학교수업보다 학원수업을 더 신뢰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공교육교사로서 반성이 많이 되기는 하지만, 공교육교사의 무력감은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불편한 것은 참지 않는 학교를 향한 부모님의 시선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정말 아이들을 애쓰시는 많은 동료교사를 보면서 교육의 희망을 봅니다.
자기주도학습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나라 교육에서도 저는 이렇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자기의 수준에 맞는 출발점과 학습 속도를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혼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는 기본원리를 학습하고 시키지 않아도 즐거움으로 배움을 이룰 수 있는 자기주도학습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학원은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단기간에 도움을 받고 자립하는 정류소여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따님은 자기주도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요? 어머님 보시기에 부족한 부분은 다듬어지면 되는 것이고,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는 면도 있으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자기결정권이나 메타인지형성, 자기주도성을 희생당하며 눈에 보이는 진도와 선행에 내몰렸던 것보다는 공부량의 축적으로 봤을 때 당장은 불리해 보이지만, 더 큰 역량을 점차 더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영어코스는 학교와 가정에서 학원의 도움 없이 시험영어 대비로 자립을 돕는 과정입니다. 제 과정을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런 방향으로 해야 그나마 시험 준비에 타협하면서 영어공부를 할 때 즐거운 배움의 과정을 이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말하기 등의 실용영어가 배제된 수능영어의 불합리한 점은 있지만, 수능영어 1등급 정도의 영어문장해석력을 갖춘 학생들은 이후 토익이나 토플 고득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저는 고등학생들에게는 제대로 된 영어학습은 수능 후에 더 재미있게 시작될 수 있다고 당장은 시험영어에 타협하라고 얘기해 줍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원리와 이해중심으로 수업하고 학습코칭 해서 취미와 힐링의 영어공부가 되면 좋겠다는 열망을 전합니다.
따님도 이후의 과정에서 납득할 수 없는 공부방향에 갈등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과목이든 현실적인 테두리 안에서도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방법은 존재합니다.
고등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내용 중에 궁금함이 생겨서 심화탐구를 하며 교과선생님과 교류를 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가면 생활기록부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에 기록이 되어 학생부종합전형 대입에 유리합니다. 이것도 전략적으로 기획하는 학원컨설팅도 있지만, 진정성을 담아 자기주도적으로 해낼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따님은 그런 역량에도 유리할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게 주신 격려의 말씀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교육을 위해 더 힘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