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만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수업 관련 강연을 네 번 했다.
선생님들 대상 강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연수와 의무적인 강제 연수다.
자발적인 참여인 경우 3시간 강연을 해도 강사와 내용에 관계없이 배우겠다는 열정이 가득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하다 보면 강사가 오히려 더 힐링이 되기도 한다.
강제 참여인 경우 겸손한 배움의 자세를 보이는 분들도 물론 있지만, 아닌 분들도 있어서 때로는 오롯이 강사의 강의력만으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 보통 선생님들의 반응은 시간 가는 줄 알겠다는 반응이고, 제시간에 끝내거나 더 일찍 끝내기를 기대하는 표정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런 분위기는 학교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달 강연은 영어교사 및 수업연구교사모임의 자발적인 연수와 수업 나눔의 날 전체 교직원 의무 연수 두 건이었다. 그중 하나는 소속 학교에서의 연수여서 부담이 좀 컸다.
어쨌든 그렇게 강사로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다양하게 하게 되었는데...
몇 가지 느낀 점과 신기한 경험을 나누려 한다.
일방적으로 강연을 진행하더라도 앞에 서서 보면 수업하는 것처럼 개별적인 관찰이 가능하다. 의무 연수의 경우 조는 분들도, 바쁜 업무를 처리하시는 분들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분들도 계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귀를 기울이시며 경청의 자세를 보이신다. 그 세밀한 몸짓이나 눈빛도 내게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런데 그 경청의 정도는 나이나, 경력과는 상관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나보다 연장자이신 분들도 감동이 될 정도로 몰입하시는 걸 보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진정한 배움의 자세는 겸손함에서 나오는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한 모임에서 연수 후, 강의 자료를 통합 메신저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많은 선생님들께서 뜨거운 피드백을 보내주셨고, 특히 수석교사나 연륜이 높으신 분들도 반성과 성찰의 기회가 되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황송하기까지 했다.
난 학구열로 뜨거웠던 대구여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모두 나의 열정을 칭찬했지만, 난 그저 학생들의 간절함과 열정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었다.
수업과 강연은 그런 면에서 통하는 면이 많다.
내가 강연을 잘했다고 뿌듯해하는 순간은 나의 능력이나 잘남이 아니었다. 참여하시는 분들의 겸손과 열정을 운 좋게 만났을 뿐이었다.
강연을 하다 보면 같은 내용을 전하더라도 준비의 부담이 압박감처럼 작용한다. 망하면 어떻게 하냐는 생각... 그런 내가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에도 혼자 고민을 많이 하는 걸 보면, 내가 인정중독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그저 내가 최선을 다한 내용을 진심을 다해 전하면 되는 거고, 그것에 대한 반응은 듣는 분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여야만 마음이 조금씩 편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첫 분위기다. 웃음으로 시작되는 강연은 거의 성공이라고 성급하게 예측해도 될 정도다. 교감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첫 포인트에서 주로 이야기나 사례를 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게 웃기고 재미있는 사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소속 학교에서 연수하는 부담감도 쓸데없는 것이었다. 식구는 부족함도 함께 품어주는 공동체다. 우리 학교도 그러했다. 이번에 강연을 하면서 선생님들의 가족 같은 따뜻함을 느끼고 많이 감동했다.
강연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난 이것이 은퇴 무대이고, 마지막 강연이라는 비장함으로 임한다. 강연 요청도 내게 주도권이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난 후광효과가 있는 전문적 강사도 아니다. 강연을 들었던 분들이 자신의 학교나 모임에 초대해 주시고, 그렇게 유경력자가 되니 만만해서 부르시기도 하는 것 같다.
난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삶으로 교재연구를 하고, 삶으로 아이들에게 인생과 소중한 가치를 전해왔다. 이젠 교사와 학부모님들 앞에서도 그런 기회가 생겼다. 나는 그저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전하려고 애쓴다. 단 한두 분의 마음에 미세한 영향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최근 다른 학교 전체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그전처럼 웃음의 빈도도 높지 않았고, 나도 충분히 여유 있게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좌절감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전에 내 블로그를 방문한 적이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강연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일부러 댓글까지 남겨주신 그 선생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우린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도 이렇게나 큰 영향을 받는다.
영어교사 강연에서는 내 책을 내돈내산하신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다. 그 책의 저자라서 놀랐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깜짝 놀랐다. 초판 발행 후 사라져버린 20년 전의 책으로 이미 나를 만나셨다는 신기함... 때로는 교사로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확인하며, 그 말과 행동에 더 진지하고 신중해야 할 것과 늘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너무도 쉽게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것을 공유하는 시대라서 그 파급력과 영향력을 끼치는 일이 너무 쉬워졌지만, 오히려 더 어렵게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은 그런 것인 것 같다.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 설 때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어야 한다.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전하되, 나의 고집과 편향적 생각이 아이들에게 함부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SNS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활동하는 분들은 구독자 수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라도 더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신기한 에피소드 하나...
인근 학교에서 수업 나눔의 날 강연을 마친 다음날 아침 그 학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강연 내용 중에 전임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깜짝 놀라시는 모습을 보고 감이 오긴 했는데 내 짐작 그 이상이었다.
교감선생님 따님이 그 학교에 다녔는데, 아이가 집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들려주었다고... 고등학교 생활에 빛과 같은 선생님이었다고 하여 내 이름을 기억하고는 있었는데, 중학교 근무교사라서 매치를 시키지 못했다가 전임교 이름을 듣고 동일인임을 알게 된 반가움과 놀라움에 전화까지 주셨다고... 나도 그 학생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누구보다 열정과 열의가 넘치는 예의 바르고 인성이 훌륭한 학생이었고, 진심을 다해 나의 가르침을 따르며 교감을 이루었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교감선생님께서는 마침 서울에 있다가 집에 와 있던 딸과 내 얘기를 하면서 그 당시 추억을 떠올리며 설렜다고 마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난 그 제자의 전화번호를 여쭈어 6년 만에 전화통화를 하였다. (봉인된 추억을 꺼내는 것은 혹 훼손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제자들에게만큼은 추억이 현실의 만남보다 우선인 적은 없었다) 고1 때 만났던 그 제자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목소리, 그 느낌 그대로였다. 그 제자는 엄마가 뜻밖에 자신의 기억 속에 살아 있던 선생님을 만났다는 반가운 말에 그때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교사는 제자를 떠나보내면 아무리 그 제자가 궁금해도 대개는 제자가 먼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가 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평소에도 학생들이 자신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을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하며, 졸업이나 전근이나 진급이나 진학은 현실적인 그 역할이 종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 연락을 해오며 여전히 현실 속의 인생 멘토를 청하는 제자들에게는 기쁜 마음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려 한다.
결국 현실 속의 사제지간이거나 졸업해서거나 교사의 역할은 학생이 기대하고 바라는 거기까지인 거다. 그런데 종결 이후 이렇게 다시 연결되는 경험은 내게는 너무 특별한 것이었다.
서로 모르고 우연한 기회에 이런 축복 같은 만남은 강연을 하고 나서 선물처럼 덤으로 받았던 기쁨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그런 우연한 만남에 우리는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런 일을 사소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전화까지 주시면서 마음을 전하시는 교감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이 너무 큰 감동이 되었다. 이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의 한 자락을 현실로 이어주신 것도 신기하고 기뻤지만, 교감선생님, 아니 제자 어머님의 전화는 내가 교사로서 얻을 수 있는 보람, 그 이상을 채워주었다. 그저 감사했다. 교사로서 학생을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말로 다하지 못할 축복이고 감사의 이유인 것인데...
모든 게 신기한 경험이다. 난 의무연수를 받는 입장으로만 있을 줄 알았지 앞에 서게 될 줄도 몰랐고, 앞에 서는 것이 내 삶의 목표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그 자리에 서게 되었고, 자꾸 그런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수업과 강연의 환경에서 단체로 만나거나 관계없이, 나에게는 모든 학생,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의 만남이 그저 신기하고 소중하다.
영원히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오만함이 벗겨지자 이제 나는 학생들과의 만남의 햇수를 너무도 빨리 셀 수 있는 날을 하루하루 더 실감하며 맞이한다.
건강하게 평교사로 담임교사로 퇴직하는 것이 교직을 선택한 나의 소망이었다. 이제 그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만큼 건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하나의 만남도 놓칠 수 없는 소중함이 되어간다.
그저 난 ‘어쩌다 보니’ 주어진 그 만남들에 끊임없이 진심을 다하고 싶다.
12월에는 고등학교 학부모님들을 온라인 실시간으로 만나 자기주도 영어학습법에 대해 안내해 드리고, 1월에는 1정연수 후배 영어교사들을 만나 <선배가 들려주는 수업 이야기>를 전한다.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영어선생님들 대상으로 영어수업 디자인과 개별학습코칭에대해 실습포함 6시간 심화연수를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년에 누구를 만나게 될지, 계속 강연을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나 계획도 세우지 않으려 한다. 나의 부족함이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불안함으로 그 기대감을 망치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허락되는 순간까지 '어쩌나 보니' 운명처럼 주어지는 만남에 진심을 다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매 순간 그 은혜만으로 내게 충분하기를, 그런 감사가 넘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