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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미스터리 전략 – 예측 오류의 짜릿함 선사하기>
할리우드 ‘미스터리 박스’ : 이야기를 끌고가는 작품 속 비밀
스티브잡스 아이폰 출시 발표 : 아이폰 살짝 보여주고 주머니에 넣고 나서 휴대전화 시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함. 가장 궁금한 것을 감춤으로써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전형적인 지연 작전. 몇 분 뒤 잡스가 드디어 아이폰의 사진을 공개하자 사람들은 장난감이 가득 담긴 서프라이즈 에그를 뜯는 아이들처럼 즐겁게 환호를 터뜨렸다.
정답을 바로 얘기하지 않는 건 학생들이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뿐 아니라 관심과 호기심을 지속하는 효과가 있다.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교사의 조급함이다. 어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충분히 기다리지 못한다.
기다림의 필요에 대한 예시 하나.
시계 종소리가 1초 간격으로 울린다면 5시임을 알려면 몇 초가 걸리겠는가? 처음 종소리 후 다음 종소리가 1초 간격이니 5시까지라면 4초의 간격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니, 그래서 정답은? 4초!
가 아니다.
5번째 종소리를 듣고 1초를 더 기다려서 울리지 않아 6시가 아님을 확인해야 5시라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답을 얻었다고 해서 그 이후의 확인 과정을 생략하면 안 되는 것이다.
미스터리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둔다.
미스터리가 경제력이 높은 가정에 주어지는 주요한 혜택일 수 있다. 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거나 박물관 관람 등을 시켜주며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하지만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호기심의 격차를 메울 수 있다면, 고질적인 성적 격차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미스터리를 즐기도록 가르치는 것은 근사한 호사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교육의 일부다.
릴스, 쇼츠 등 짧은 영상조차도 궁금함이 영상을 끝까지 보게 만든다. 그보다는 훨씬 더 길고 지루해 보이는 학습의 과정에서 다음이 궁금해지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수업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면 그건 정신력과 절제를 키우는 훈련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본능에 충실한 학생들, 훈련이 충분하지 않는 학생들은 꿈나라로 향한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알고 싶은 것들이 눈덩이 효과처럼 불어난다. 가장 기본적인 야구규칙을 모르고서 그 긴 야구경기를 집중해서 재미있게 지켜볼 수 없다. 그런데 규칙을 알수록 구체적인 상황에 따른 새로운 규칙을 알게 되고, 경험적으로 터득하게 된다면 직관의 열의로까지 이어질 것이니까.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호기심이 “불협화음을 감지하듯 지식의 틀 안에서 모순이나 구멍을 느낄 때”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모순이나 구멍은 우리의 학습 메커니즘에 기폭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에 단순히 관심을 기울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한다.
여러 면에서 미스터리 박스는 미스터리를 창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미스터리 박스는 결정적인 정보를 안에 감춘다. 때로 정보는 커다란 달걀 안에 숨겨져 있기도 하고 이야기 플롯 사이에 있기도 하다.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목적은 하나다. 우리가 찾는 비밀을 숨기며 인식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 인식의 긴장감을 설계하는 건 교사의 몫이다. 아이들에게 박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하게 세팅하는 수업이 필요하다. 그저 수업과 별 상관없는 영상이나 재미요소를 끼워 넣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수업 외적인 장치는 오히려 수업 본질에 대한 집중력을 훼손할 뿐이니 주의해야 한다.
(계획된 중독의 성지인) 카지노에서는 슬롯머신의 성공은 바로 딸 수 있는 돈뿐 아니라 잃은 돈에 대한 인식을 조작하는 효과적인 방법에서 기인한다. 빠르게 돌아가던 릴을 잭폿 그림 바로 앞에 멈추게 해서, 돈을 거의 딸 뻔했다는 착각을 유발하는 일명 ‘아까운 실패near misses’작전이 그것이었다.
‘아까운 실패’의 유혹이 이렇게 큰 이유는 아까운 실패가 도파민이 풍부한 뇌 영역에 혈류량을 증가시키며 실제로 돈을 땄을 때와 똑같은 보상 회로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그 쾌감은 어려운 기술을 새로 습득하려 할 때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농구 3점슛 연습을 할 때 정확히 슛을 넣었을 때만 신이 난다면 금세 포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뇌에는 점진적인 발전을 즐기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도박 기계는 이처럼 유용한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잔인하게 악용한다.
실패의 이면을 잘 보여준다. 충분히 즐거울 수 있고, 완성이 아닌 실패를 통해 점점 만들어져가는 영점조정의 과정을 통해 자기주도적 학습의 습관과 성취감을 얻어낼 수 있는데, 어른들의 욕심이 아이들의 실패를 막아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아이들을 사교육시장으로 몰아넣는다. 결과 위주로 칭찬을 하거나 비난을 해서 실패의 즐거움을 좌절이라는 무거운 짐으로 느끼게 만든다. 아이들을 일으켜세우는 건 사소한 실수와 좌절의 반복이다. 스스로 일어날 때 다음번에 일어날 용기와 동력을 쌓아간다. 아예 넘어지지 않게 막아준다면 곧 넘어지고 나서 다시 일어날 용기를 갖지 못한 채 웅크리게 할지도 모른다. 학습은 한 번에 완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될 듯 말 듯 하는 밀당 같은 과정에서 지속성을 갖는 과정이다. 게임조차 한 번에 다 클리어한다면 이내 흥미를 잃을 것이다. 될 듯 안될듯하다가 오히려 너무 속상할 정도로 잘 안되다가 성취했을 때의 기억을 얻게 된다면 이후의 억지스러운 개입 없이도 자기주도성과 자기효능감을 학습자는 누리게 될 것이다.
슬롯머신의 힘은 계속 감질나게 만드는 ‘용의주도한 무작위’에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발표 번호 뽑기를 하면 학생들은 늘 긴장하며 재미있어 한다. 발표의 형식은 똑같아도 결과는 늘 예측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용의주도한 무작위를 교육과 수업에 어떻게 활용할지는 개별 교사의 몫이다.
인간은 깜짝 반전과 긴장감을 좋아하지만, 질서와 마침표를 갈망하기도 한다. 미스터리 박스의 묘미는 균형에 있다. 너무 많이 보여주면 지루해지고, 너무 적게 보여주면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마음을 접는다. 사람들은 단순하고 익숙한 형태에 금세 싫증을 느꼈다. 그렇지만 너무 무작위적이고 엉뚱한 형태도 좋아하지 않았다. 쾌락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우리의 관심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너무 모르지는 않을 때’ 작동했다. 벌린의 공식에 따르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대상은 단순하면서 참신하거나, 복잡하면서 익숙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즉 인간은 미스터리(시각적으로 새로운 형태)를 좋아하지만 해독할 수 있는 (혹은 해독할 수 있을 것 같은) 미스터리를 좋아한다.
아이들의 스키마에 맞는 배움의 자극이 필요하다. 완전 생소하거나 수준이 너무 높으면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질 수 없다. 어떤 미션이든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약간은 challenging한 목표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학습코칭할 때 개별수준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하는 것도 그 이유다. 될 듯 말 듯 한 것을 이뤄낼 때의 자기주도성의 회복은 극대화된다.
크리스틴펠드는 앞서 언급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들이 적어도 한 시즌 동안에는 비슷한 수준의 예측 불가능성을 공유한다는 걸 발견했다. 스포츠에 내재한 미스터리가 사람들이 그토록 그 종목에 열광하는 이유였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드라마에는 반드시 불확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야 해요.”
따라서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들은 미스터리를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런 스포츠에는 선수의 실력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경기 규칙이 있다. “만약 스포츠가 단순히 실력 경쟁이라면 금세 유전자 토너먼트가 되겠죠. 하지만 그건 별로 재미없지 않나요? 결과가 너무 빤하잖아요.”
팬들이 원하는 것은 이른바 ‘최적의 모순’이다. 대개는 실력이 더 나은 팀이 이기게 되겠지만, 스포츠 경기를 보는 재미는 알 수 없는 상호 작용으로 탄생하는 뜻밖의 반전에 있다. 크리스틴펠드의 설명에 따르면, 스포츠 경기의 규칙은 가장 이상적인 균형점을 찾아 끊임없이 수정되어 왔다. 관객과 손님에게 딱 알맞은 양의 불확실성을 제공하도록 고안된 〈스타워즈〉나 슬롯머신처럼 말이다. “어느 한쪽이 너무 우세해지게 두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사인 볼트가 항상 우승이야’가 돼 버리거든요. 문제는 타당한 노력의 결과라 하더라도 예측할 수 있게 되면 지루해진다는 거예요.”
예컨대 야구를 보자. 야구라는 스포츠의 미스터리는 이 운동 경기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에서 나온다.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러 150킬로미터로 빠르게 날아오는 동그란 공을 때린다는 것. “야구가 어떤 식으로 잔인한가 하면, 고작 몇 밀리미터 차이로 1루타가 되기도 하고 병살타가 되기도 하죠. 그러니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도 조절에 한계가 있어요.”
야구의 역사는 이 미스터리를 사수하려는 노력의 역사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1893년 미국 야구계는 당시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이 스포츠를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규칙 변경에 나섰다. 당시 야구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타자들이 공을 못 친다’는 것이었다.
투수에 따라서 승부가 너무 뻔하게 예측되어 게임이 지루해졌다. 그래서 홈플레이트와 투수의 거리를 17미터에서 18.5미터로 늘려 타자의 타격 변동성도 극적으로 상승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모순의 최적지를 찾은 덕분에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 : ‘속고 싶은 마음’. 결국 진실을 알게 되겠지만, ‘아직 모르는 상태’를 즐기기 때문에 눈을 뗄 수 없는 거예요.
불확실성의 역설이다. 특히 남자들은 불확실성의 스릴을 즐긴다. 우리팀이 질 수도 있었는데 이겼을 때의 스릴을 잊지 못한다. 전교 1등이 1등을 하는 건 아무에게도 감흥이 되지 못한다. 의외의 학생이 뜻밖의 결과를 얻을 때 소문이 난다.
아직 모르기 때문에 그걸 알기 위해 눈을 뗄 수 없는 수업과 교육이 모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강제성이 필요 없는 순수한 자발적인 즐거움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인식과 솔직하게 인정하는 문화 형성도 시급하다. 아이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어른들도 궁금해하지 않고 결론만을 강조한다면 영영 그 목표에서 멀어질 것이다.
오늘도 나는 학생들의 궁금증의 흐름을 따라가며 수업을 설계하고, 학생들 대신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과 잠깐의 기다림으로 아이들의 궁금증을 끌어내는 수업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