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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pr 08. 2024

학년부장 빠진 학년 회식 가능?

코로나 발생 첫해 갑자기 생긴 학생들과의 멀어진 거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영어멘토링학습코칭 과정으로 학생들과 교감을 이어갔던 난, 예고 없이 갑자기 생긴 거대한 코로나 장벽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그 절실함으로 반드시 방법을 찾게 될거라는 희망은 현실이 되었다.

구글클래스룸에서 온라인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전화통화로 상담을 하며 대면 만남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후 온라인으로 교감을 할 가능성을 더해서 대면 일상을 회복한 지금도 확장된 교감을 이루며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가 마냥 불편하지만은 않았던 건...

교사들끼리의 회식이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도 5인 이상 식당에서 모일 수 없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모일 이유도 없었다.

들은 내게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묻곤 했다. 

어차피 먹어야 할 밥을 모여서 먹는 것이 뭐 힘드냐고. 

그냥 앉아 있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술을 함께 마시지 못하는 것 때문에 괴롭냐고... 

술 안 마시고 무슨 낙으로 사냐고...

일찍 집에 들어가면 와이프가 좋아할 줄 아냐고...

그러나 예전에 교사 회식은 함께 다정하게 식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차, 3차로 이어지기도 했다. 난 어떻게든 도망갈 기회를 보곤 했다.

그렇다고 술을 드시는 분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건 아니다. 비음주가인 내가 존중받기를 바라듯, 음주문화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건 이미 받아들였다.

한때는 단 한 사람도 회식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강요하기도 했다. 

차가 없는 나로서는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는 회식은 고통 그 자체였다. 

특히 고3 담임할 때는 모의고사 때마다 회식을 했는데.. 난 모의고사 채점하면서 눈물 흘리며 괴로워하던 학생들의 아픔이 떠올라 회식자리가 더 괴로웠다. 빨리 집에 가서 학생들을 위로할 편지라도 써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아내와 딸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회식이 계속될수록 더 절실해졌다.

소규모의 편한 친구들이나 제자들과의 만남은 그래도 좀 괜찮았지만... 특정 인원 이상 규모의 회식의 대화에 난 전혀 끼지 못했다. 괴로움과 스트레스가 더해져서 그 시간 이상의 소모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 여파는 다음날까지도 이어졌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닌데, 숙취처럼 힘겨웠다.

내게는 학생들과 가족이 늘 우선순위였다.

어차피 회식 자리에서 전혀 사교적이지도 않고 대화에 참여하지도 않으며 식사나 술자리 분위기를 맞춰줄 수도 없고, 맞추려는 의지도 없는 나 같은 유형은 공동체 생활에 해가 되는 존재일 것이다. 혹 회식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에너지 소모가 너무 심하더라도 분위기에 맞춰주는 것이 사회생활일 것이니까...

그러나 감사하게도 선생님들은 나를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으셨고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해 주셨다. 동료 교사들 사이에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적어도 학생들에게만큼은 진심인 것을 인정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올해도 학년 협의회 명목으로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고 했다. 1인당 만 원 정도의 예산이라서 모임에 넉넉하지는 않지만 학년모임을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 되었다.

너무 적극적이신 학년 총무쌤에 의해 학년회식이 바로 추진되었다.

편한 누님쌤께 학년회식에 몰래 빠지겠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했다. 누님쌤이 이해도 되지만 학년부장이 빠지는 건 좀 이상하지 않겠냐고 그러셔서, 내가 발상의 전환이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좋은 모델이 아니겠냐는 궤변을 늘어놓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담임쌤들이 학년부장이 빠지는 학년회식이 어디 있냐고... 격려와 같은 메시지를 쏟아내셨다.

급기야는 우리집 근처로 회식장소가 급변경되었다. 힘들면 집에서 쉬다가 합류해도 된다면서...

마침 우리집 근처에 제자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시던 선배선생님이 2차 장소로 그곳을 지정하기도 하셔서 난 꼼짝없이 2차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늘 눈치를 보면서 회식 빠질 기회를 엿보았던 내가 학년부장으로 회식을 빠지는 건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던 거였다.

대세에 지장이 없는 일이라면 그저 순응하는 것에 익숙했던 내가 학년부장이 되니, 담임쌤들의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해당 부장님이나 담당자분과 싸움닭처럼 불편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나의 낯선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자리가 주는 무게를 느꼈다. 

이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학년회식에 참여시키려는 담임쌤들의 극진한(?) 격려의 말씀들이 불편함보다 감동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이크를 들고 강연을 할 때나, 수업을 할 때에만 벙어리에서 벗어난 듯 이야기를 시작하는 나의 일상의 답답함도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시고 계신 것이니...

부장으로서 대우받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인간적인 존중을 받고 있다는 마음이 커졌다.

제자 카페에서

식사와 커피를 하며 서로 너무 즐겁게 웃으면서 대화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나 하나의 불편한 마음으로 인해 이런 소소한 행복이 빼앗기지 않아 다행이었다.

식사자리에서 첫 잔에 건배를 하려는데 학년부장님 건배사 하라고 총무가 한 마디 하니까 쌤들이 부장님 그런 거 절대 시키면 안 된다고 그러면 다음부터 참석 안 한다고 오히려 나무라시면서 내가 거부하기도 전에 모두가 나를 이해하고 지켜주셨다ㅋㅋㅋ

2차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하다가... 모두가 합의가 된 듯...

쫓아내듯 나를 먼저 떠나 보냈다. 왕따가 아니라 배려의 마음이라는 게 느껴졌다.

중간에 나갈 타이밍을 늘 살피며 눈치를 보던 내게 선물 같은 제안이었다.

선생님들은 제자 카페에서 서비스까지 다 받았으니 더 이상 부장님이 없어도 된다... 집에서 쉬고 계시면 우리가 쳐들어갈 수도 있다는 등의 농담을 던지면서 먼저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셨다. 

그날 유독 몸이 많이 무겁기도 했다. 

그 전날부터 남아있던 피곤함에 이어 당일에는 1교시 수업, 2교시 학부모님 두 분과 전화 상담, 3교시 수업, 4교시 부장회의 및 학년부장 회의, 5-6교시 수업, 7-8교시 채움수업... 틈틈이 영어멘토링 학생 점검... 

컨디션이 안 좋으면 지하철에서도 한 번씩 멀미를 하는데... 막히는 도심거리를 담임쌤들과 함께 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식사자리부터... 나의 체력은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학년의 왕언니쌤께서 2차 비용을 전부 내셨다. 학년부장이 내는 것이 마땅할 자리였음에도 벌써 며칠 전부터 의지를 확고하게 하셔서 내 마음의 고민도 덜어주셨다.

그 자리에서 난 실감했다. 우리 학년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문제없이 한 달 이상을 잘 지내온 것은, 당연한 것이 절대 아니었고, 내 리더십 때문도 아니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진심을 다하시는 모든 담임쌤들 덕분이라는 것...

나의 부족함도 그대로 받아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지지해 주시고 계시니... 난 그저 소신껏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진심을 다하면 될 거라는 안정감 속에서 노력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학생들에 대해 애정과 그들의 성장에 진심이신 분들만 모여 계셔서... 학생들을 향한 행복교육을 계속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학년 담임의 일원으로서도 같은 곳을 향한 마음으로 힘을 더할 수 있음이 행복하지만, 학년부장으로서 그 교육현장의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 영광스럽다.

전교직원 첫 워크샵에서 학년담임 소개 후 학년부장으로서 "모든 선생님들, 3학년 담임선생님들과 더불어 학생들을 위한 행복교육을 하겠습니다"라고 던졌던 말은 이미 선생님들의 진심으로부터 내게 전해져 나온 메시지 같아 신기하고 기뻤다. 

이렇게 학년회식에서 은혜를 받았던 적은 없었다. 몸은 회복중이지만... 마음은 이미 치유 이상의 힐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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