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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y 02. 2024

또 한 해의 생일을 지내며

내 생일은 한 번 들으면 여간해서는 잊히지 않는다.


May Day. 일명 노동절.


누군가에게는 휴일이지만 학교에서는 중간고사 날짜로 가장 사랑받는 날이라서, 학창 시절에는 늘 열공하는 생일이었다ㅋㅋ



2024년 생일을 맞았다.


70년대부터 시작된 내 삶에서 2024년은 어린 시절에는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은 공상과학 스토리의 상상 속 연도였다.


그날을 이제 막 과거로 떠나보냈다.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다. 수명의 길이만 의미가 있고 감사할 제목인 건 아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내게 주어졌던 선물 같은 만남의 축복을 생각하니 뭐든 당연한 게 없을 지경이다


흡사 기적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일상에 잠식되어 축복의 분량을 자주 객관화하지 못했을 뿐.



어제 수업하는데 어떤 학생이 자기 생일이라고 내게 외치길래 나도 생일이라면서 가볍게 생일빵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작정이라도 한 듯 풀파워로 내게 생일빵을 시연했다.


그 수업 이후 많은 학생들과 몇몇 선생님들이 내게 생일축하를 해주기 시작했다.


소문은 그렇게 퍼지고 있었다.


작정하고 낸 소문은 아니지만... 덕분에 뜻밖의 생일축하를 많이 받았다.



학생들에게 생일의 의미는 정말 엄청나다.


본인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찾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날만큼은 주인공이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신이 태어난 의미를 관계 속에서 확인하는 의식과도 같다.


부디 생일에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학생들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에는 반 학생들 생일선물까지 챙겨준 적도 있었는데...


학반에서 하는 생축 이벤트라도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는 건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침에 아내의 미역국을 먹고 출근했는데 학교에서도 내 생일을 알았는지 점심 급식도 미역국이었다.ㅋㅋㅋ



가족톡에 아내가 오늘 무슨 날인 줄 아냐고 메시지를 남기자...


둘째 딸이 자기 자신이 선물이라고 답했다.



퇴근해서 집문을 여는데 불 켜진 거실에서 서울에 있어야 할 둘째 딸이 선물처럼 튀어나왔다.


늘 집에서 생활하며 일상을 공유했던 것처럼...


한 달도 더 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진짜 본인이 선물임을 증명해 주었고 난 감격했고 감동했다.


더구나 딸은 댄스동아리, 연합동아리 안무 감독, 댄스학원 수강 등 학업 외에도 벌여놓은 일이 많아 주말에도 집에 내려올 형편이 안된다고 하여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만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말도 아닌 평일 저녁 방문은 너무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였다ㅠㅠ



저녁 식사 후 딸은 본인이 겪었던 속상하고 힘겨운 일을 눈물로 얘기했다. 비판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냥 다 들어주고 공감해 주며 위로했다.


딸은 다음 날 수업 때문에 만 하루도 머물지 못하는데도 힐링을 위해 왔다고 했다.


아빠 생축이 목적이 아니었던 거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생축하러 온 김에 겸사겸사라고 말했다. 엄마, 아빠의 존재감과 집안의 포근함에, 아빠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해서 먼 길을 마다않고 집을 찾은 딸이 그 모습 그대로 내게 선물이었다. 아빠에게 기대며 보여준 신뢰의 모습도, 대학생이 되니 더 감동이기도 했다. 함께 가슴 아파하면서 나도 마음이 힘들고 안타까웠지만 변함없는 믿음과 응원의 진심을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생축만으로 먼 길을 짧은 일정으로 왔다 갔으면 반갑고 기쁜 마음 끝에 미안한 마음이 컸을 텐데, 내가 위로와 힐링을 줄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냥 모두가 생일에는 뭘 해도 기쁜 일들만 가득하면 좋겠다.


내게도 그런 넘치는 행복의 날이었다.



생일이 다 끝나기 전에 20년 넘는 인연의 제자 두 명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축하인사를 각각 전해왔다.


매년 내 생일을 기억해 주고 이벤트를 해주기도 하는 이 제자들의 한결같음이, 20년이 넘도록 개근하듯 매년 일상처럼 반복되어도 늘 놀라움과 신기함과 감동의 감사 제목이다.


마치 쌤이 태어나서 만남이 있었고, 그 만남에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는 내 존재에 대한 의미 부여인 것만 같아서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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