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기타치는 교사

by 청블리쌤


집에서 혼자 대입 재수하면서 기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냥 기타 책을 보고 무작정 따라하면서 혼자서 했기 때문에 확실히 기타 실력이 빠르게 늘지도 않았고, 결국 그저 흉내 내는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처음부터 기본기와 확실한 코칭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삶을 통해 확인한 거다.


근데 이렇게 어설프게 배운 기타도 교사로서는 꽤 쓸모가 있었다.

공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모든 기능을 익히는 것은 절실하다고 단시간에 금방 되지 않는다.


결국 절실하지 않을 때 시작해 둔 것이 정말 절실할 때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 또 하나의 교훈이다. 대부분의 중학생들은 고등학생이 되기 전 중학교 때부터 미리 준비해야할 것을 이야기해줘도 절실하지 않으므로 당장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고등학교 가서 절실함이 생기고 나서는 대개 늦다. 그때부터 시작해도 되지만 당장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큰 고통과 내신 성적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니 때로는 절실하지 않아도 어떤 것들은 계산 없이 무작정 시작해야 한다.


기타 치는 교사가 되는데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일단 손가락에 굳은살을 새겨가면서 고통의 문턱만 넘어서면 어느 정도 연주하면서 노래도 가능하다는 것이고... 프로 연주가가 되지 않아도 아이들이 호응해 준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 학생들 앞에서 기타를 치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여고에 처음 갔던 만 20대 후반에 수업시간에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30분이나 어.. 어.. 이렇게 주저하다가 결국 짜증만 유발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후로 한참의 시간을 지나고서야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용기를 냈다.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은

감탄이 아닌 탄식을 위함이고, 멋짐이 아닌 신기와 재미를 주기 위함이고 더 나아가 개그의 몸짓이기도 하다.

우리는 학생들 앞에서 너무 프로가 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프로가 아닌 인간미가 학생들과의 친근한 거리를 만드는 데는 더 유리하다.


인기 가수들은 팬덤이 있다. 팬들은 그 가수가 좋아서 노래를 듣는 것이다. 노래를 듣고 좋아서 팬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듣고 나서 좋아지게 하는 건 보통 아마추어 교사연주가로서 추구할 수 없는 another level이다.

그러나 그 수준을 꿈꾸며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학생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듯, 학생들도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이나 연약함으로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끼며 교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기타 치는 교사로 숱한 경험들을 많이 했지만.. 그중 떠오르는 몇 개의 장면들...



# 장면 1

수업시간에 "To Make You Feel My Love"라는 팝송을 준비하여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델 노래로 들을래? 내 노래로 들을래?”


젊었을 때는 아이들이 뭐 그런 걸 묻냐는 듯이 당연히 선생님 노래를 듣겠다고.. 아니 들어주는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해가 거듭되면서 어느 때부턴가 아델 노래를 선택하는 학반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내 노래를 선택할 수는 없다. 노래 자체로는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는데 한동안 내가 더 선택을 받았다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눈치 없이 아델 노래를 듣겠다는 아이가 있으면 옆의 애들이 핀잔을 주기도 했다. 아델 노래는 나중에 따로 들어도 되지만 선생님 노래는 지금 이 순간 아니면 들을 수가 없지 않냐고!!!

그 말 속에는 내 노래에 대한 기대감이나 감동할 준비가 아니라 그저 신기함과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도가 비쳐졌다.


그러니까 내 노래 실력이 검증 되었고 안 되었고, 그 자격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아이들과의 거리감이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반응으로 이어지면 난 혼자 의기소침하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상처를 받다가 뻔치가 늘었는지 그 다음에는 “야 그냥 닥치고 들어라. 다른 반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라. 다른 반하고도 고통분담을 해야지!!” 이러고 있었다.


그런데 교사가 기타를 치는 건 희귀한 현상이므로 그것만으로 노래 실력은 용서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기타를 잘 치지도 못하는데도... 그저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용서가 되는 거였다. 만약 내가 가수여야 하고 청중들 앞에서 그 가수의 정체성을 증명해야하는데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라면 쉽게 용서가 되지 않을 거다. 아니 노래를 아예 들으려 하지 않을 거다.

일종의 팬이니까 받아주는 거다. 받아줄만하니까 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매년 노래를 불렀던 대구여고의 4년간 내 노래를 피해간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에겐 트라우마처럼 남았을지 모르지만 이후 만나서 소식을 전하는 아이들로부터 기타 치면서 노래하던 것이 나의 시그너쳐 추억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도 학생들을 만날 때 학생의 자격조건을 따지면 안 되는 거다. 비교할 필요도 없는 거다. 불완전함이 클수록 더 큰 성장을 기대하는 설렘으로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하는 건데, 교사들은 이미 대개 학생들에게 교사가 먼저 해줘야 할 그런 선물을 받고 있었던 거니까.



# 장면 2

2011년 고3 담임을 할 때 학년에 적극적으로 날 잘 챙겨주셨던 선배 누님 교사 두 분이 저녁시간에 갑자기 힘들고 지친 아이들을 위로할 힐링의 시간을 만들어주자면서 내게 무작정 복도 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종의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잘 할 자신이 없다고 하니까 못하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잘 하면 감동을 주고.. 어쨌거나 교사의 그런 애쓰는 모습 자체가 아이들에게 힘이 될 거라고 하면서 나의 확답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3학년 전 교실에 방송을 했다. 청블리쌤의 게릴라콘서트가 있으니 원하는 사람은 홀로 모이라고...


선생님 두 분이 의자와 마이크 등을 바로 세팅하시고 아이들을 정돈시키셨다.

그리고 나는 “Because of You”와 “너에게로 또 다시”를 기타를 치면서 불렀다.


정말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못하는 대로 야유 비슷한 함성을 응원의 함성으로 바꿔가며 격하게 반응해주었다. 나는 제대로 못했다는 것에 대해 자책하거나 반성할 틈도 없이 아이들의 반응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내가 이런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역시 교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장면 3

2013년 날씨가 울적함을 대변하던 어느 날 학년실에서 누님 교사들이 이런 날에는 기타 치는 라이브 노래를 들으면 좋겠다고 내게 노래를 부탁했다. 수업시간에 기타를 치면서 팝송을 하는 걸 알고 계셨을 뿐, 내 노래에 대한 검증은 받지 못했음에도 무모한 용기를 내셨던 거다.


역시 선뜻 응하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되는 강권하는 분위기에 못 이기는 척 노래를 시작했다. 시키지 않아도 하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되도록이면 끝까지 빼다가 정말 강요하듯 그런 분위기에서 해야 안전하다. 그래야 잘 못 해도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ㅋ


누님 교사들이 좋아할만한 김광석의 “거리에서”를 기타를 치면서 불렀다. 누님 선생님 한 분이 격하게 눈물을 흘리셨다. 그 노래가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동생을 떠올리게 했다면서...

내 노래가 좋아서가 아니라 음악에 담긴 감성이 전달이 돼서였을 거다.

노래와 음악은 완벽해서 감동을 주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니다. 불완전한 음악을 통해서도 듣는 사람의 마음의 절실함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다.


학교 수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교사의 수업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절실한 학생들은 어떤 수업에서도 그 이상의 것을 배운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정기적으로 추억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역시 노래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말로 대화하는 것 이상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퇴직하시는 선생님들을 위해 그 모임의 교사들이 축가를 함께 준비하여 불러드렸다. 연습하는 과정부터 행복했다.



# 장면 4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마음에 맞는 학생들과 자발적으로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부르곤 했다. 사실 수업시간보다 이미 더 오래 전에 시작했었다. 원하는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노래가 그게 뭐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부담이 없었다.


젊은 시절 여고에서도, 이후 남녀공학 학교에서도 8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한 적도 많았다. 혼자서 부르는 것이 아니어서 그 설렘과 전율과 행복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행복감은 역시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도 너무 행복해하여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었을 정도였으니까...

기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대규모가 아니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과 그런 시간을 가졌다.

함께 팝송을 부르기도 했고, 학급 자율활동 시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 장면 5

우연한 기회에 학교를 일찍 마친 날 나는 기타를 치고, 학생 한 명은 피아노를 치고, 다른 학생은 바이올린을 켜면서 음악실에 모여서 즉흥적으로 자발적인 교회노래 연주회를 한 적이 있다. 한참 진행되는 과정에 음악선생님도 바이올린으로 합류를 하셨다. 리허설 없는 본 연주뿐이었는데 그 때의 감동과 전율도 잊을 수 없다. 그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절대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으로 각인되었다. 찬양의 진심에다가 서로가 악기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놀라운 connection의 절정을 체험했다.



# 장면 6

졸업식 영상은 졸업으로 떠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영상으로 편집해서 졸업식 때 전체 상영을 하는 컨셉이다.

나에게도 섭외가 들어와서 쑥스러움으로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다가... 차라리 노래로 마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졸업식 날의 생생한 소감이 전해졌다.

선생님들의 메시지를 보면서 아이들이 눈물을 겨우 참으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영상이 끝날 때까지 내 영상이 안 나와서 의아하던 순간... 이어지는 자막에


“끝난 줄 아셨죠? 마지막 선물이 남았습니다.”

하면서 노래가 나오는 순간 많은 아이들이 눈물이 터졌다면서... 1학년 때 강제로 들었던 나의 기타소리와 노래가 그들에게는 고등학교의 추억(?)으로 박제되었기 때문이었을지도...


1학년 때 담임반 학생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그저 영어쌤일 뿐이었는데 그 마지막 순간 아껴둔 것 같이... 드라마틱하게 등장하도록 편집한 것도 감격스러울 정도로 감사했고... 아이들의 슬픈 이야기도 오래도록 나의 마음을 울렸다.


역시 완벽하지 않아서 더 큰 울림이 있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결론은 선생님들 모두 기타를 배웁시다.. 망가질 각오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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