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설렘으로 학생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선생님들께

by 청블리쌤

(2021.2.28) 어제 정식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 처음으로 서게 된 선생님 한 분을 뵈었습니다. 걱정과 설렘이 혼재하는 떨림이 대화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저도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지만, 그 정도의 설렘과 떨림은 첫사랑 정도의 깊이여서 저는 한 편으로 그 젊은 설렘이 부러웠습니다. 그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깊은 행복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꼰대 같은 긴 조언을 해드리는데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가슴에 다 간직해두려는 그 선생님의 겸손함과 배움의 열정에 놀랐습니다. 정말 교사에게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앗! 저런 자세라면 내 경력쯤 되면 지금 나 정도의 존재감은 순삭할 정도의 내공이닷!"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성장을 멈추고 교사직은 따분하다고 그저 학교를 직장으로만 생각하는 나쁜 선생님들이 많은데 이 분은 정말 빛나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니 그 미래를 그려보는 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많은 훌륭한 예비교사들을 다 품어주지 못하는 교육과정과 시스템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인한 임용의 어려움이 그런 순수한 열정을 꺾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선생님께 아무리 힘드셔도 꼭 교사가 되셔야 한다고...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선생님을 만나 그 축복과 행복을 누리게 될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으셔야 한다고 당부드리기도 했습니다. 어제 나눴던 대화를 재구성하여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예비교사, 초임교사 그리고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 모든 교사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꼰대 잔소리이니 주의하세요.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교사의 떨림은 자신의 능력과 역량에 대한 의심과 걱정일 수도 있고, 예측 불가의 감당할 수 없는 학생이나 학부모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걱정으로 인한 떨림의 시작은 출발점과 한계를 잘못 설정한 데 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상적인 목표보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 학년부장을 맡게 되어 잠도 못 자고 업무로 걱정하는 제자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완벽하려 애쓰지 말고 모든 책임을 다 질 자세로 비장해지지 말라고... 오히려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명시하는 것이 더 좋다고...


처음 학생들을 만날 때도 학생들이 좋아할 모습으로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호감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저 자신의 역량과 성격과 기질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한계와 역할을 명확하게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바라는 구체적인 교육 방향에 대한 지침을 명확하게 제시한 후에 친절함과 따뜻함은 개별적으로 느끼도록, 생활 속에서 서서히 아이들에게 스며들도록 기회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관계에서도 예의를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이지만, 본래의 모습에서 과장되지 않는 본연의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오히려 모두의 호감을 얻기라도 할 것처럼 가식적인 모습을 설정하고 과도하게 애쓰는 것은 소모적이며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학생들 앞에서나,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나 자신의 한계와 역량의 부족함은 처음부터 선언하듯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한계와 역량은 고정값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사들도 매 순간 성장하지만 당장은 그 이상 할 수 없다는 솔직한 인정이 있어야 오히려 그로 인해 기대감을 갖지 않게 하면서 반전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교사들은 혼자서 모든 책임을 다 지려고 하고, 완벽하게 상황을 통제하려고 너무 애씁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역량을 벗어나는 일로 인해 늘 고민하게 되고 결국엔 번아웃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각자의 발달 속도에 맞게 실력을 쌓아가서 자연스럽게 성적이 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교사도 나이에 관계없이 늘 성장해야 하지만 결론을 정해놓고 그 틀에 억지로 본인을 끼워 맞춰서는 안 됩니다.

결국 학생도 교사도 자신의 준비도와 역량만큼만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걸 인정해야 지금 이 순간 즐겁고 행복하게 학생들과 동료교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려심이 강하고 생각이 깊은 교사들은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늘 느끼게 되는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학생들이 피해를 볼까봐 걱정합니다. 저도 처음 고3 담임할 때 입시에 대해서도 모르고, 수능영어를 가르치기에는 숲보다는 너무 나무만 보고 가르쳤던 부족함 투성이어서, 그래서 학생들의 성취 여부가 다 제 책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는 그 이상 할 수 없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뿐이었고, 그걸로 족했다는 것을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교사의 부족함조차 학생들에게는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개입을 최소화할수록 오히려 더딘 것 같지만 더 큰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교사들마다 다 성격과 기질이 다르고 성향과 스타일이 다 다릅니다. "난 저 선생님 같지 않아서 아이들에게는 손해"라는 생각은 바보 같은 자기비하입니다. 저는 꼼꼼하게 아이들을 챙기는 스타일이어서 오히려 아이들의 주도권이 줄었고, 상담을 거의 안 하는 옆 반 학생들은 주도성이 자라고 성장하게 되는 것을 목격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배움과 성장을 잘 이뤄냅니다. 물론 성격과 스타일의 차이로 설명할 수 없는 정말 좋은 교사와 나쁜 교사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나쁜 교사, 심지어 가장 안 좋은 유형인 학생들에게 일도 관심이 없는 교사들에게도 학생들은 배웁니다. 인생의 쓴맛을 배우기도 하고, 혼자서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독립성과 주도성을 더 확실히 배우기도 합니다.


교사는 연기가 필요하고 제2의 성격으로 학생들을 대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우리 모습 아닌 거짓된 모습으로는 학생들에게 진정성 있는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카리스마 없는 교사로서의 열등감이 너무 컸고, 어설프게 흉내 내려 하다가 부작용만 키웠던 일도 겪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얻게 된 결론은 자신의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서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험이 적은 교사는 그만큼 학생들과의 거리가 가까워 애를 많이 쓰지 않고도 그들에게 더 공감할 수 있고, 존재 자체로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든 교사는 아이들의 거리가 멀어진 것만큼(보통은 교사보다 학생들이 거리를 둡니다) 연륜에서 묻어나는 더 큰 영향력을 강력하게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나이대거나 어떤 성격이거나 어떤 스타일이거나 본인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진심이 통하면 때로는 전문적인 상담이나 지도가 부족해도 아이들은 이해합니다. 그들이 일어설 방법을 스스로 찾게 되니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교사라도 진심이 결여되면 아이들에게서 교육의 영향력이 의외로 적게 나타납니다.


저는 늘 “Connection Before Correction”개념을 강조합니다. 교육 전 교감의 중요성입니다. 그 교감은 진심이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의 실수 등의 부족함까지 완벽하게 다 가릴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합니다.


처음으로 학년부장을 맡게 된 제자에게 의도적으로라도 매일 한 가지 이상 실수를 하라고 했습니다. 애써서 실수하려 하지 않아도 사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학교 현장은 정말 중대한 실수나 의도적인 범법 등의 행위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업무는 진행됩니다.

한 번씩 출장이나 병가 등으로 학교에 안 나가면 학교가 마비될 것 같지만 오히려 자신이 없어서 더 잘 돌아가는 허탈함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함은 과도한 업무를 부르고, 정상적인 업무의 경우에도 과도한 부담감과 걱정과 피로감을 가져옵니다.


학부모님들을 대할 때도 무조건 이기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너무 억지라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의 답답함에 대해서 공감해드리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교사들은 사소한 일에서도 명예가 중요하고 자존심이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그 어떤 직종보다도 상하관계보다는 수평관계가 두드러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수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자신이 늘 옳다는 생각에 매몰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들은 법정에서 할 일이고, 심각성의 여부에 따라서는 답답함에 대한 호소를 들어드리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도 많습니다. 물론 부당한 요구나 억지에 대해서 우리는 정당한 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 경우에도 교사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을 앞세우게 되면 교사는 이겨도 진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린 늘 경이로움과 초심을 회복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사는 거의 매년 새로운 학생들과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것도 시스템적으로 그런 설렘을 보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의 걱정과 불안함으로 인한 떨림은 그래서 설렘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가장 큰 교육의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저항과 갈등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교사가 감정노동을 안 해도 되는 아이들이라면 교사의 역할도 없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노동으로 인해 아이들은 변화됩니다. 그 성장과 변화에 대한 조급함과 때 이른 증명의 욕심도 교사의 교만함입니다.


그저 교사들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학생들 입장에서 진심을 다해 가면 됩니다. 운이 좋으면 학생들과 헤어지기 전에 그 성과를 확인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건 우리의 목표라기보다 보너스로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그것만이 목적이 된다면 매 순간 교사를 좌절시키는 학생들로 인해 교사들은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나의 속이 문드러지고 괜한 헛고생을 했다는 생각에 괴로울 수도 있고, 정작 학생들이 나를 떠난 이후 꽃을 피우게 된 시기에 만난 교사들이 그 교육의 성과까지 몰빵으로 다 가져가는 억울함도 느낄 수 있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진심과 헌신만으로 이미 보람과 보상을 다 받은 것, 그걸로 충분합니다.


교사의 감정노동과 괴로움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꼭 그것을 겪을 필요는 없지만, 그로 인해 학생 한 명이라도 삶이 완전히 달라질 계기가 될 수 있다면, 학생이 그 사실을 인지하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교사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직종보다 더 큰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직 경력이 쌓여도 그래서 전 늘 또 다른 시작점에 서는 저는 늘 떨리고 설렙니다. 실은 걱정과 불안함의 요소가 크지만, 설렘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이번 시작은 제 교직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입니다. 이미 저는 실수하고 실패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저는 새로 시작할 겁니다. 그 실패와 실수를 통해서만 학생들의 진정성 있고 절실한 필요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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