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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증명의 부담과 열정의 굴레

by 청블리쌤

학습컨설팅을 앞두고 카페 두 곳 중에서 고민했다. 절대로 집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철저히 지켰던, 그래서 근처 카페 분위기를 너무 잘 아는 둘째 딸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가까워서 가장 자주 갔던 카페는 너무 시끄러워서 고민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거리는 좀 있지만 넓고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도 고민이 된다고 하니까 딸이 조용한데 왜 고민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시끄러울까 봐...

그게 내게는 당연한 고민이었지만, 누군가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그렇게 삶을 살아왔다. 나 자신을 먼저 챙기는 이기적인 욕심을 적어도 겉으로는 남에게 먼저 맞춰주는 제스처로 포장하고 가려왔던 것 같다.

그 이면에는 거절의 두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실수에도 나 자신의 가치 손상을 걱정했다.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의심... 잦은 실수와 늘 완벽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늘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는 아버지의 요구는, 늘 불만족스러운 끝없는 노력의 무한 반복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난 끊임없이 가치 증명을 하며 지쳐갔다.

인정 중독, 관종의 모습은 그에 따른 부작용이었다.

시험 성적과 등수로 증명해야 내 가치가 인정되고... 늘 나는 누군가에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면서 늘 눈치를 보면서, 거절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날 궁리를 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내게 자신의 상담을 하면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위로가 되었던 친구에게도, 나의 무가치함과 자격 없음에 대한 바닥 자존감으로, 당장이라도 기대에 충족해 줄 수 없어 친구이기를 포기하겠다는 마음의 짐을 강요했었다.

날씨가 아니라도 뜨거운 열정을 강요받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뜨거운 여름날, 에어컨 없는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통풍도 되지 않는 긴팔의 교련복을 입고 더위와 맞서 싸우려 했다. 더위에 지고 싶지 않았던 극기 훈련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자격지심과 열등감 가득한 본인에게 충분히 열심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 같은 벌이었던 것 같다.

그런 아픔을 겪고 나니 교사가 되어서도 학생들의 아픔이 보인다. 모든 노력을 바로 보상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답답함과 좌절감이 자신의 출발점과 속도에 맞는 감당할 만한 성장의 노력으로 이어지기보다, 자기 가치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아픔에 일조하는 것은 부모님들의 비범한 사랑의 크기와 사교육에 대한 투자로 구체화되는 기대감이다. 말로 강압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부모님의 관심과 투자에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학생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 너의 모습 있는 그대로 너 자체로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그래서 너의 사소한 애씀과 더딘 성장도 의미가 있고, 후퇴와 헤맴조차 너의 가치를 손상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오히려 증명하듯 열심히 하지 말라고 너무 열정을 다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그런 열정이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면 그 열정을 위해 늘 의지를 억지로 끌어모아야 할 것이니까.. 혼자 힘만으로 안 되면 유튜브 등에서 동기유발 영상을 찾아 헤매며 늘 더 강한 자극을 얻으려 할 것이니까...

인간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변하지 않으며, 변했다는 생각이 들면 익숙함을 추구하려는 두뇌의 강력한 저항으로 요요현상이 올 것이니, 뇌를 안심시키며 속여야 한다.

그러니 하찮은 애씀만 강조한다.

오늘 공부한 것이 맞나 기억 안 날 정도로 찔끔, 찌질하게 표나지 않게 조금씩...

마치 숨 쉬는 것을 의식 못할 정도로, 그렇게 목표 분량을 잘게 쪼개서 그 사소한 성취에 취하도록 해보라고.

그런 하찮음은 열정을 불태우기 위한 사전 준비도 필요 없으니... 그저 애쓰지 않아도 반복되는 루틴을 사소하게 만들어보라고...

그게 내가 늘 강조하는

열정의 연료가 아닌 습관의 관성으로 이어가는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이라고..

이런 외침 이면에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나의 학창 시절이 갈아 넣어져 있다. 그렇게 아프지 않아도 행복한 한걸음에 의미를 부여하며 공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희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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