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그 출발점은 어디고 무엇부터 해야 할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막연한 공부에 대한 생각만 있을 뿐, 혼자서 무엇을 할지 감을 못 잡는다.
혼자서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시행착오 없이 학원만 다녀서일 수도 있다.
그런 수동적인 태도의 폐해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의 출발점은 거창하지 않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이 가능하다는 확신 때문에 두 딸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자기주도학습은 습관형성이 중요하다. 학원을 다니는 습관도 책임감을 갖고 뭔가를 정기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괜찮은 습관형성의 계기가 되기는 하지만, 혼자서 시작하는 습관이라면 훨씬 더 낫다.
습관은 늘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형성된 습관은 성적으로 증명되지 않아도 스스로의 성취감으로 축적되어 이후의 더 큰 미션도 감당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그걸 자신감이라고 한다.
학교 학생들에게 담임으로 관련 활동을 시켜왔는데 그 두 분야가 영어단어 습관과 독서 습관이었다. 그것만으로 모든 공부를 다 잘할 수는 없지만, 이 분야만 제대로 이뤄져도 다른 과목의 상승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습관형성뿐 아니라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기본 문해력과 상관이 있고, 사소한 성취로 인한 자신감도 형성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활동들은 개인적으로 공부를 잘하게 되었던 체험에서 나온 것이며, 교직생활을 계속하면서 그 성과에 계속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사소해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아래의 활동을 권장해 드리고 싶다.
• 영어 단어 습관
중학교 때 메모지에 단어 10개씩을 정리해서 쌓아두고 화장실 갈 때마다 한 장씩 들고 가서 다 외우지 않고는 화장실을 나서지 않았다. 배탈이라도 나면 몇 번이라도 더 갈 수는 있어도, 화장실 안 가는 날은 없었으니 매일 10개 이상 단어를 학습하는 루틴이 만들어진 거다. 10개씩이니 부담 안 되는 분량이었고, 의외로 화장실에 있는 시간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왕복 2시간 정도 되는 버스 안에서 단어를 실컷 보았다. 단어 하나 보고 차창 밖을 바라보며 낭만적을 함께 키웠다. 함께 버스를 탄 친구들과 여동생과 대화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슬쩍슬쩍 인사를 자주 나누듯 친근해질 때까지 단어를 반복해서 보았다.
심지어 오토바이로 야자 마치는 시간에 날 태우러 오신 아버지께는 플래시를 챙겨오시라고 해서 플래시를 비춰가면서 단어를 봤던 기억도 난다.
중요한 것은 거창한 시간이나 계기가 아니라 일상 중에 사소한 루틴을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복해서 여러 번 볼 기회를 갖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일주일 단위로 전체 복습 테스트를 혼자 만들어서 시행하는 등의 방법도 활용했다.
하루 10개는 초라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큰 부담이나 저항감 없이 지속할 수 있었다. 그게 축적이 되니 중학교 때는 그 수준에서 더 이상 모르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학습한 단어는 평생 내 자산이 되었고 영어는 늘 내게 여유의 과목이 되었다.
영어는 단어만 되어도 어떻게든 따라가게 되어 있다. 문법이든 독해든...
단어는 각자 학습해야 하는 것이라서 학원을 다닌다는 건 문법과 독해를 배우고, 내신대비를 주로 한다는 뜻이다. 물론 학원에서 단어를 숙제로 내고 단어 시험도 치르지만, 학원 가기 직전에 단기기억으로 잠시 저장해서 재시만 면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고,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고 빈도수가 높지 않은 어려운 단어를 우선적으로 암기하면 평소 영어문장에서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노력한 만큼 성과를 확인할 수 없어 노력만큼 오히려 더 좌절하기도 한다.
내게 영어를 잘했던 비결을 묻는다면 내 수준의 단어를 매일 초라하게라도 꾸준히 봤다는 거라고 망설임 없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당장 끝장을 보듯이 그 자리에서 암기한 것이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두고 자주 단어를 반복해서 읽는 기회를 자투리 시간을 투입해서 가졌다는 것...
그래서 중학교부터 내신이든 모의고사, 학력고사 등에서 영어문제를 틀린 기억이 거의 없다.
단어를 학습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긴 하지만, 그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학교에서도 매일 꾸준히 학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
영어교사로서는 매 수업 시간 예습단어 테스트를 실시하고,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수업 시간 전까지 재시험을 하도록 한 시스템이었고, 거기서 출발해서 19년째 하고 있는 영어멘토링 학습코칭이었다.
담임교사로서는 아침 영어단어 시험을 매일 실시하는 것이었다.
학습도우미 학생 한 명을 지정해서 매일 20개 단어 범위를 주고 매일 아침 등교 직후에 도우미 학생이 임의로 5개만 골라서 시험을 치고, 채점도 각자 하는 방식이다.
수업 교실과 학반에서 그런 활동 덕분에 꾸준히 학습하는 습관과 영어 잘하는 기본기를 얻는 두 가지 효과를 늘 체험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에 한해서...
개인적으로 이런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어떨지...
학교에서 그걸 돕기 위해 영어멘토링 학습코칭을 하고 있지만, 결국 자립을 목표로 하는 과정이며, 본인의 의지가 있고, 조급하게 눈높이를 높이지 않으며, 사소하고 찌질한 순간을 활용하는 루틴을 만든다면 코칭 없이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 독서 습관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들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다. 그 당시 국민학교에는 월말고사가 존재했다.
그 성취의 시작점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몰입했던 독서였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이큐 테스트가 있던 그 시절, 초등학교 2학년 때 122였다가 중학교 1학년 때 155로 뛰었던 것도 독서의 영향이었다고 믿는다.
수업시간에 말귀를 더 빨리 알아듣고, 교과서나 참고서를 볼 때 인과관계로 체계화되며 정리가 잘 되고, 암기보다 이해가 가능해지는 공부의 기본기가 독서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메가스터디 수학 1타 강사 현우진도 중학교 겨울방학에 독서만 했는데, 방학 후 아버지의 신문을 비롯해서 모든 글이 다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게 과장된 말이 아님을,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다 알 것만 같았다.
딸들을 학원 안 보냈던 건 돈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책을 읽히기 위해서였다. 학원만 가는 아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책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독서의 효용은 공부력 그 자체다. 이해하고 추론하는 능력과 공부의 막강한 효율로 설명된다.
영어교과 교사지만 수업시간에 영어 잘하는 비결로 우리말 독서를 반드시 언급한다.
자기주도학습의 비결이기도 하다.
독서력을 키우기 위해 담임으로서 학생들 등교 직후에 영어단어시험을 치고 나면 바로 아침 독서를 강요한다. 학원숙제는 물론 다른 공부도 시험기간이 아니면 허용하지 않는다. 단,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봐야 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매일 읽는 습관이 중요하기 때문에 영어 단어 시험처럼 문해력 향상뿐 아니라 습관형성에도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읽고 생각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읽는 내용을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래서 습관형성을 위해서라도 매일 실시하는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이 매일 글 읽고 댓글 달기 활동이었다.
신문사설이나 좋은 글을 일주일에 5개씩 선별해서 뒷면에 학급명렬과 함께 출력해서 교실에 비치한다. 학생들은 주 5일간 하루에 한 편씩 읽고 댓글을 단다. 물론 글을 안 보고 친구 댓글보고 댓글 다는 학생들도 있지만, 선물을 안 받겠다는 아이에게 그런 자발성까지 강요할 수는 없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온라인 학급밴드, 구글클래스룸 등을 활용해서 온라인 댓글을 달도록 유도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있을 때는 1학기에는 내가 글을 선별했지만, 2학기 때는 각자 진로분야나 관심사의 글의 링크를 올리도록 하여 생기부 진로나 자율 등에 개별화된 활동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댓글이라는 결과물은 간단해 보이지만,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쓰는 과정까지 복합적으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글 하나에 대한 댓글이기 때문에 매일 해도 부담이 없으며, 그래서 매일 실시하는 것이 축적이 되면 아이들은 읽기와 쓰기와 생각을 통해서 문해력과 공부 잘하는 기본기를 갖출 수 있다.
이 또한 자기주도학습의 시작점이 된다.
이 활동을 한 학기 이상 열심히 참여한 학생들이 2학기가 되어서 수업의 말귀를 알아듣게 되었다며 내게 고마워하기도 했다.
위에서 이야기 한두 가지 방향은, 내 개인 체험의 성취에서 나온 비결이며, 교육현장에서도 학생들을 통해 검증된 과정이다
공교육교사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이런 오지랖 같은 일들을 학생들 모두가 반기지도 않는 그런 분위기에서도 학생들의 평생공부력을 위한 선물로 준비해 주어야 한다.
물론 받아야 선물이지만, 안 받는다고 준비조차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글읽고 댓글달기는 영어멘토링학습코칭의 확장판인 방학 온라인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에서 자기주도학습 습관과 능력을 키우는 필수코스로 포함시키고 있다.
당장은 수학 문제 하나 더 풀고, 눈에 보이는 어려운 과제를 해내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조급함을 해결하는 방식인 것처럼 보여 모두가 가시적 성과만을 바라고 있지만...
그래서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뿌리를 내리는 자기주도학습의 준비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믿고 행복교육을 이뤄가길 기대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교사, 학부모, 학생 대상 강의에서 내가 제시하는 건, 초라하고 사소해 보여서 외면받는, 그래서 오히려 수준과 여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며, 결국 자기주도성을 회복하는 행복교육이다.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의 중요한 포인트 하나 더...
열정의 연료보다 습관의 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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