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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면 일어나는 일, 비움과 채움

by 청블리쌤

누군가 그랬다. 부모가 된다는 건 자신의 일부가 삭제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철없던 26세의 나이에 너무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했다.

현실을 보는 눈이 생기고 이성을 보는 눈이 경험으로 쌓이게 되면 결혼 준비는 완벽하게 되는 걸까?

오히려 그렇지 않아서 동갑인 아내와 이른 나이에 망설임 없이 결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아내도 내가 이상형이 아니었던 것처럼 아내가 내 이상형은 아니었다.

내 이상형을 큰딸에게 말하니까, 큰딸은 "오.. 사랑의 힘!"이라고 감탄과 안도의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상형 대로 맺어지지 않아 본인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니까.

준비 없이 결혼한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상태여서 아내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사랑해서 떠나보낸다는 심정으로 신혼 초에 아내에게 마음에도 없는 이혼 이야기까지 꺼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지켜줄 자신이 없던 절규에 가까운 미안함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였다는 핑계 뒤에 숨었을 뿐 나는 결혼할 자격이 없는 남자였다.

아내는 큰 상처를 받았을 것임에도 끝까지 내 곁에 있어주었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린 결혼의 모습을 차차 갖춰가기 시작했다.

신혼 때 꺼낸 이혼 이야기는 진심이 아니었으니, 난 아내를 만난 이후 그 만남과 결혼의 모든 순간에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다.

부족한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준 아내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갖는 것은 사랑과는 별개의 현실이었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아빠가 된다는 건, 선택이라는 행위 이상의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어야 했다. 나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는 의미이며, 정말 내 자아의 일부가 삭제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육아는 또 다른 차원의 commitment여야 할 것이라서 너무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딸이 태어나고는 완전히 달라졌다. 여전히 준비 안 된 부족한 아빠였지만, 내 삶의 우선순위가 재조정되고, 애쓰지 않아도 나의 일부 그 이상을 다 떼어줘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 마구 솟아났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보았었다. 학교와 집, 교회밖에 모르며, 어울리는 친구도 없던 나의 거의 유일한 취미이기도 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는 구입 목록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 책 사보기가 아까웠고, 그때부터는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이 당연해졌다. 물론 아이들이 점점 크고 독서량이 늘면서 딸들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게 되었지만, 적어도 학습도서 등은 꾸준히 사주어야 했으니까.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과 실제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모되는 그 수고와 애씀에 대해 계산값으로 손익을 따질 필요조차 없는 현실 초월적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늘 불안함은 있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함께 아팠고, 부모로서 당장 뭔가 해주지 않으면 아이의 행복에 지장이 있을 것처럼 반응하게 되었다.

딸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부모의 역할이 재정의되었다. 그냥 옆에만 있어준다는 존재감... 그것이었다. 독립한 딸들에게 보고 싶다고 물리적 가까운 거리를 강요할 수는 없으니,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존재감만으로도 우리는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였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부모 체크카드라는 실물로 늘 함께 하고 있지만...

문득 큰딸과 함께 논술시험을 위해 동행했던 때가 떠올랐다.

논술 마치고 비 오는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을 때 그 당시 동행했던 남동생이 찍어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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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큼 딸바보인 교회 친구가 사진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기울어진 우산에 아빠의 왼쪽 어깨가 비에 젖는 줄 모르고 있다고...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에도...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자아가 삭제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몰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관심과 개입은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부모도 우산이 필요하다. 그러니 우산의 기울임 정도가 부모가 아이들에게 베푸는 경계가 아닐까? 우린 부모가 되어서도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야 한다. 그런 거리가 오히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더 건강하게 유지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우산을 기울여도 젖는 어깨 따위는 의식되지도 않을 것이다. 혼자 우산을 쓴다면 어깨가 젖을 일은 없었을 것인데, 오히려 젖은 어깨로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이 혼자일 때는 알 길이 없는 선물 같은 자녀의 존재다.

아내는 큰딸이 태어난 이후로 피아노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딸들과 함께 있는 것을 선택했다.

돈을 벌지 않아서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아 미안하다는 아내의 말에...

아이들이 엄마를 제일 필요로 하는 그 순간에 함께 있어주는 것은 모든 엄마들이 다 누리는 축복은 아닐 거라고, 그리고 육아에만 전념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일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내에게 무조건적으로 아이들 옆을 지켜줬던 모든 순간이 다 고맙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내는 일하는 것보다 그냥 딸들과 함께 했던 매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고 했다.

딸들에게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잘 챙겨주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수준의 소박한 행복을 받아들이며 그저 축복처럼 그 행복을 감사하게 누리고 있다.

두 딸들은 이제 물리적인 거리로도 독립을 이루고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자주 만날 수 없는 상황에도, 종종 해주는 딸들의 전화나 메시지로 우리의 부모됨과 그 역할을 매번 갱신한다. 부모의 허전함은 강제로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며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립을 이뤄가는 아이들의 삶과 행복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걸 이루지 못한 상태로 결혼해서 아내를 몇 년 간 힘들게 했지만, 그 힘든 순간들이 딸들에게 대물림되지 않아 감사하고 다행이다. 물론 매일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은, 사랑의 깊이만큼 아픈 그리움인 채로 계속 남겠지만...

그것이 그저 자연스럽게 젖은 어깨를 내어주면서도 행복해하는 부모의 숙명이자 행복이다.

부모는 처해진 상황에 맞게 자신의 자리에서 누구든 자신만의 최선을 다한다.

삭제되고 비어내는 부분이 있어야 충만히 채워진다. 채움은 부모의 목표는 아니지만, 비움으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결과다. 그걸 우리는 축복이라고 하며, 은혜처럼 선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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