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저녁때 갑자기 좌측 고관절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무리한 거라고는 방학 중에 아내와 산책을 평소보다 더 자주 한 것뿐이었는데...
집에만 있으려는 나를 이끌고 나가는 건 늘 아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작정하고 덜 더운 새벽시간에 아내를 깨워서 6km 정도를 걸었다.
늘 그랬듯 동네 한 바퀴를 예상했던 아내는 나의 갑작스러운 턴과 계획이나 한 듯 당당한 리드로 이어지는 긴 산책코스에 계속 놀랐다.
그때 안 하던 짓을 해서였는지 고관절의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후에도 아내와 여기저기를 많이 걸어 다녔다.
태어나서 한 번도 차를 소유해 본 적이 없는 우리 가족은.. 그 덕분에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생존의 일상으로 지속한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차를 몰고 다녔으면 최소한의 운동도 못했을 것이라며...
평상시 퇴근 후에는 바닥난 체력으로 인해 간단한 저녁 산책도 못해주었던 나는 오래간만에 별 일정 없는 방학이라는 기회로 폭염을 넘어선 산책 동행을 선택했다.
그런데 의욕이 과했던 거였다.
방학임에도 여백을 지워나가듯 열심과 열정을 일상으로 증명하려는 둘째 딸에게 아직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젊은 딸은 나와 달리 회복도 더 빠르고 심각한 상황이 절대 이르지 않겠지만,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괜찮다 싶을 때 오히려 의도적으로 더 쉬라고 말해주었다. 그게 이후에 심각한 아픔을 마주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통증과 아픔의 순기능은 멈춤과 안식이다.
한센병의 가장 큰 위험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고 한다. 발목을 다치고 나서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계속 걷는 바람에 회복이 안 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고...
하룻밤을 묵힌 전날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더 숙성되었다. 누워있어도 아팠고 발을 디디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걷는 것조차 망설이게 했다. 이러면 학교에서 수업은 물론 운전하지 않는 50여 분의 출근길부터가 넘어설 수 없는 큰 장벽처럼 느껴져서...
결국 병가를 냈다.
걸어 다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서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일상의 끝에 만난 통증은 그 한 걸음의 의미를 절실하게 돌아보게 했다.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택시를 타고 정형외과와 한의원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오후부터 통증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계단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이 되어 자전거를 타고 평소 내리던 지하철역 건너편에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집을 나섰는데, 평소처럼 계단을 내려가면서야 계획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걸 뒤늦게 자각했다.
시행착오를 동반한 강력한 의지의 발현 없이는 머리보다 앞서는 몸의 기억을 넘어설 수 없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학교에서 동아리 미드테드팝송반 학생들에게 내가 겪은 사소한 에피소드를 얘기해 주며, 영어 말하기는 습관과도 같아서 머리가 아닌 입이 기억할 때까지 반복해야 자연스러워진다고 강조했다.
모든 습관은 의식적인 노력의 반복으로만 가능한 일이며, 몸이 기억하고 나서야 저항감 없이 지속할 수 있다.
온몸에 염증이 산책하듯 돌아다니는 듯한 주기적 통증을 겪으면서, 사소한 몸의 신호와 통증도 무시하지 않고 휴식과 안정을 취해야겠다는 다짐을 극심한 통증만큼 몸에 새긴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다음 통증의 사이클에 이르러서야 또다시 뒤늦은 다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력도 체형도 예전 같지 않은데... 너무 의욕만 앞서면 안 된다는 걸 또 몸으로 배웠다.
한의사선생님께서 걸을 때 불편함을 느끼면 계속 걷다 보면 풀릴 거라고 생각하셨죠? 라고 물으시고는, 웃으면서 그건 30대까지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뼈 때리는 말씀을 하셨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생활할 수는 없지만... 통증의 세밀한 신호라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또 한 번 몸에 새긴다. 조심스럽게, 또 지속적으로 몸관리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