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교사가 되게 하는...

by 청블리쌤

가족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국룰이다.

객관화가 되지 않고 감정의 필터링이 힘들기 때문이다.

충분히 인내하지 못하여 답답함과 조급함이 새어 나오기 쉽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전문가라도 공부를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학습코칭이나 입시컨설팅도 자기 아이를 대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 된다.

내가 그동안 친분으로 진행했던 컨설팅은 교사와 교사 자녀가 많았다.

내가 그 선생님들보다 더 특별하고 전문성이 더 깊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엄마나 아빠의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신뢰가 더 힘들다는 슬픈 운명을 지닌 것이, 오히려 전문가라서 더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교사 부모의 숙명이다.

큰딸이 초등학교 가기 전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에게 수학공부를 시키면서 나의 가르침을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에게 감정을 앞세워 화를 냈다. 그걸 보고 있던 아내가 나를 밀어내며 아이에게 왜 화를 내냐고 자신이 가르치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나보다 더 큰 소리를 지르며 아이에게 "하지 마!"라고 화를 냈다. 아이는 울면서 할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지금 생각하니 아름다운 고집이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의 감정을 앞세운 조급함과 짜증이 공부 안 할 충분한 명분이 되었을 것임에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그 마음이, 지금 생각하니 내가 주었던 상처가 미안한 것만큼 고맙기만 하다.

교사 아빠로서 티칭은 역시 무리였다. 큰 딸은 아빠와의 공부 시간을 애써 피했고, 일부러라도 열의를 숨겼다. 급기야 중2 때는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고 중간고사 50점을 맞고 내게 다시 도움을 청했지만, 결국 그 재앙 같은 실패가 오히려 자발적인 아빠와의 공부를 시작하게 했다.

둘째 딸은 어설프게 아빠가 쪽집게 과외를 해주는 바람에 중3 때 영어 100점을 맞고는 자만심 때문이었는지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고1 말까지 그 고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티칭과 코칭의 목표는 자립이다. 그런데 딸의 자립을 바라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정도의 기본기를 충분히 갖추어서 제대로 된 자립을 원했던 것이다.

둘째 딸은 고1 말에 드디어 오랜 기다림에 지쳐가던 내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몇 개월간 매일 조금씩 아빠랑 영어 기본기 공부를 했다.

이때 딸의 조건은 줌 온라인 화상회의로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수업을 들으면 내가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이것도 모르냐"라는 무시하는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딸이 야자 마치고 아이패드 들고 독서실에 가면, 나는 집에서 노트북을 열고 온라인으로 손짓 발짓을 하면서 수업을 했다.

딸들의 내신 및 수능 영어를 학원 안 보내고 내가 시켰다고 하면 다들 감탄하며 나에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한다. 어떻게 자녀를 가르칠 수 있었냐고..

논술과 정시로 대학을 보내면서 사실 사교육에서 교과보다 더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입시컨설팅도 받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놀란다.

나는 내가 정말 뛰어나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티처스>라는 학습컨설팅 TV 프로그램에서...

고3 영어교사인 엄마를 불신하는 고등학생 아들의 에피소드를 보고 꽉 막힌 두꺼운 벽을 도끼로 깨고 나온 것 같은 깨달음을 마주했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딸들이 모두 나를 신뢰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나의 티칭이 먹히지는 않았다. 자립할 타이밍이 아님에도 자신들의 고집으로 그 자립의 시기가 오히려 더 늦춰지는 결과를 초래하긴 했지만... 딸들이 스스로 정한 타이밍에 손을 내게 내밀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니 너무 감격스럽다.

내가 만들어준 단어장만으로 공부했고, 내가 구성한 핵심문법만으로 문법을 완성했으며, 내가 모은 예문으로 학교에서 수업하기 전 베타테스터처럼 문장단위 해석 과정을 거쳤으며, 천일문 기본, 핵심 등의 책으로 수업해준 내용을 혼자서 적용하면서 정확한 해석을 체득했고, 수능을 분석해서 구성한 어법포인트와 기출문제로 개념을 정리하고, 어법끝으로 수업한 내용을 혼자서 풀어보며 기본기를 완성했다. 거기까지가 내 역할의 끝이었다.

이후 수준에 맞는 모의고사를 풀면서 각자가 아빠의 도움 없이 스스로 수능까지 완성했다.

아빠가 아무리 학교에서 잘 나간다는 소문이 있었어도, 아빠로든 교사로든 신뢰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을 것이다.

배움은 자발적인 의지와 노력 없이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중학교 이후 결정적인 시기에 충분히 기다려주었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학원에 보내지 않아 기댈 곳이라곤 아빠밖에 없어서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줄탁동시"라는 말을 강연할 때 자주 인용한다.

교사와 부모의 타이밍은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려 하는 그 타이밍과 맞아야 한다. 보통은 어른들이 더 서두르기도 하고, 더 오래 기다린다.

줄탁동시와 유사한 급훈

"내가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후라이"

웃긴 급훈이지만 교육적 의미가 듬뿍 담긴 표현이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 중에 나의 가르침에 유독 깊이 있게 진심으로 반응했던 학생들은 어떤 이유로든 알을 깨고 나오려는 타이밍이 된 아이들이었다. 그럴 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나도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하지만, 어쨌거나 알을 깨고 나오는 건 학생 자신이다.

알을 깨고 나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주인공이었음에도 교사에게 무한 감사를 보낸다. 그러나 교사들은 알고 있다. 그건 그저 아이가 주도적으로 배움의 기적을 이루어갈 때 운 좋게 옆에서 지켜보는 축복이었을 뿐이라고.

나의 교사, 학부모 강연 중심에는 딸들과의 체험이 녹아들어가 있다. 27년간의 교직경력 동안에 만난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학생과 자녀 교육의 일관된 철학과 교육관이 자연스러운 삶의 이야기를 전하게 해준다.

결국 나를 부모 되게 하고 교사되게 하는 것은 딸들과 학교의 학생들이었다.

나의 능력과 탁월함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내게 주는 신뢰에 기대어, 주도적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성장의 끝에서 나도 세세한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내게서 솟아나는 감사함과 뭉클함은 끝이 없다. 내 행복의 연료이자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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