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의 크리스마스는 좀 우울하다.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활동을 움츠려들게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니면서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보다는 분위기에 더 설레곤 했다. 교회에서는 일상을 잊고 우리들끼리 선물 교환으로 시작해서 밤새 한 공간에서 게임을 하고 대화를 하면서 새벽이 다가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평생을 버틸 추억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추운 눈길을 헤치며 아이들과 새벽송을 돌던 기억도 지금은 시대적인 면으로나 시간의 흐름으로나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만 느껴진다.
코로나로 시내를 활보하는 게 망설여지는 시절이 아니어도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캐럴은 저작권 문제로 이미 개인적인 음악 취향으로 개인 영역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캐럴을 들으며 선물을 고르던 것 자체가 이미 현실이 아닌 추억이다.
그래도 그때는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크리스마스카드를 쓰며, 무슨 선물을 받을지 설레는 마음을 산타클로스라는 상징적인 존재에 기대어 낭만을 키워가기도 했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상대에 대해 은근한 고백할 기회로 설레기도 했다.
어떤 의미로든 사랑과 나눔과 따뜻함의 분위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감싸며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세계인들의 축제 같은 시간이 되었다. 적어도 이 시즌만큼은 누구라도 외로우면 안된다는 생각이 정당성을 부여받아, 젊은이들은 옆구리가 시림을 더 절절하게 실감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생일에 이렇게 전 세계가 열광할 일인지 생각해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생일의 주인공은 뒷전이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과 왜 오셨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종교인들만의 성찰주제처럼 여겨졌던 거다. 그러나 그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해도 아이러니하게도 이 땅에 죽기위해 오셔서 궁극의 희생으로 사랑의 가장 이상적인 구체적 실현을 이루신 그 사랑의 의미는 막연하게라도 사랑의 시즌인 크리스마스시즌에 녹아 들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학생들은 내게 이번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지 않는 방법을 묻곤 했다. 그 말은 사랑을 어떻게 시작하며, 어떻게 남친, 여친을 사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과 동일한 의미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아이들에게 사랑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되는 것이니 좀 더 기다려보라고 위로할 뿐이었고... 남친, 여친이나 결혼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예전처럼 지금의 가족에 집중할 시기가 너희의 선택과 관계없이 오게 될 것이니 지금 이 순간 옆의 가족들과 소중하게 시간을 보낼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남친이나 여친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함께 어울릴 친구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강제로라도 가족들과만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일이 우리 반에 생겼다. 누구도 강제할 수 없는 이런 일이,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반갑지 않은 이런 일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우울한 경험으로 새겨지고 있다. 우리는 박탈된 것에 대해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니 곁에 있는 가족들에 집중하라는 위로는 아이들에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할 박탈감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일에 교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리고 마니또를 시작하며 다음 주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던 글을 올린 직후
심상치 않는 분위기가 연출되더니...
결국에는 월요일부터 우리 반 전체에 자가격리가 결정되었다. 금요일 결석 여부에 따라 학생들마다 격리 기간은 다르지만 대부분은 크리스마스를 관통한 격리 기간인 것이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갑작스럽고 감당하기 힘든 우울한 소식이었다. 자가격리 자체도 우울하지만, 크리스마스를 관통한 자가격리라니ㅠㅠ
나는 접종 완료한지 14일이 경과하여 자가격리가 면제되어 '수동감시대상자'가 되었다. 다중시설 출입을 자제하며 출퇴근 정도만 허용되고 중간에 추가로 검사를 받으면서 증상을 세밀하게 살피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신개념의 다른 유형의 자가격리였다. 기간 중 첫 검사와 격리 해제 검사 외에 중간에 검사를 추가로 더 받아야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자가격리를 하며 온라인수업을 하는데 나 홀로 텅 빈 교실의 담임으로 학교에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수업을 했다. 급식실에서 다른 반 학생들 식사할 때 텅 빈 우리 반 자리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아파서, 변고가 있어서 자리를 비우는 건 아니지만 그 빈자리가 내 허전한 마음을 인정사정없이 때려쳤다.
텅 빈 우리 반 교실에 학생들이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트리 그림만 홀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 교실에서 각자 집에 있는 학생들을 줌으로 만나며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도 울컥했다. 그나마 중3으로 졸업을 앞둔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많지도 않았는데... 줌으로 수업하는데 나를 반가워해주는 반 아이의 사소한 반응에도 감동이 되었다.
이런 일들은 아이들이 선택한 상황도 아니고 내가 강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며 그저 일어난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지며 불평을 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상황을 상상하며 가정법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과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반응과 자세와 생각으로 구성된다. 상황을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성장하고 배우게 되기를... 당장 박탈되어 속상하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몰랐던 사소해 보이는 축복을 놓쳐서 훗날 더 큰 후회를 하지 않게 되기를... 그렇게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이 그런 삶의 원리를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몸으로도 기억하게 되기를, 이 기간의 체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