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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온 감정이야기 (2회)

감정의 기원

성경의 창세기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빛, 낮과 밤, 식물, 동물등을 하나님이 만드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감정이 최초로 등장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어느 책이나 글에서도 본적이 없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무지로 인해서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은 가장 처음 아담에게 중요한 임무를 맏기시는 것을 볼수 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도록 하신 것이다. 그 당시 동물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지만 아담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 많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다. 어떤 감정적 어려움이나 부담이라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아담은 자기에게 알맞은 돕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창세기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어서 자신에게 데리고 왔을때 둘다 벌거벗고 있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성경에서 명시하고 있다. 즉 부끄러움의 감정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를 데리고 온 하나님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만났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삶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수치심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고 모든  세상의 흐름이 부드럽고 물이 흘러가듯이 부드럽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에 가장 극적인 변화가 그들의 삶에 찾아온다. 창세기 3장 7절에 두명 모두가 선악과를 먹자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무화과 나무로 잎을 엮어 옷을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자신들의 벗은 몸에 대한 극심한 수치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없었던 감정이 생겨나고 이러한 감정으로 인해서 그들이 어떤 햄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3장 8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동산의 나무 사이로 숨게 되는데, 그러한 행동은 두려움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으로 인해서 수치감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인간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하나님의 처음 창조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감정이 하나의 감정에서 머물지 않고 1차 감정, 2차 감정 등으로 발전한다고 이야기 한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마트의 직원이 의심이 들어서 검사를 하자고 할 경우에, 처음에는 도둑질이 들켰다는 수치감이 들수 있지만, 이러한 수치감을 감추기 위해서 화를 내는 상황을 볼수 있다. 즉 하나의 감정이 출현하면 그러한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 새로운 감정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나타난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형인 가인의 제사는 받아주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사를 받아주자, 가인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아마도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생의 제사가 받아진 것에 대한 수치감과, 이러한 수치감에 대해서 하나님께 왜 나의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았나요 하고 따지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제대로 제사를 준비하지 못해서 나의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께 따지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그의 분노는 동생에 대한 참을수 없는 분노로 바뀌게 되었다. 동생 아벨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 수치심을 느낄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는 그럼 분노 말이다. 결국 가인은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시켜버린다. 동생을 돌로 쳐서 죽인것이다. 이러한 죄는 근본적으로 부모의 죄로 들어온 수치감과 두려움의 감정이 자녀대에 이르러서 더욱 복잡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인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할 여지를 준다. 창세기 4장 7절에 "그러나 네가 옳지 않다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하니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 하신다.   


그러면 이러한 수치감과 두려움의 감정은 도대체 인간세상에서 어떤 상황들을 만들어냈을까요?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원죄라는 개념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에서 원죄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기독교 초기에는 없었던 개념인데 주후 3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성 어거스틴에 의해서 문서화 된 개념입니다. 사도바울의 글에도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라는 언급을 통해서 한사람의 죄가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성경을 한번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생소한 개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성 어거스틴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죄의 개념은 그러한 추상적인 개념을 개념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로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정립을 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죄가 어떠한 작동기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죄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수많은 이단논란을 야기하게 됩니다. 성 어거스틴은 인간은 원죄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면서 인간은 태어날때 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예수 그리스도만 성관계에 의해서 태어나지 않으신 분이기 때문에 원죄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이에 대해서 펠라기우스(Pelagius)는 성 어거스틴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영혼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손상되지 않았고 죄는 성관계를 통해서 자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예를 통해서 죄가 전달되는 것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종교개혁자들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칼빈의 경우는 성 어거스틴의 노선에 서서 절대무능력(Total Depravity)라는 의견을 주장했다. 


위에서 정리한 것과 같이 원죄가 전달되어오는 구체적인 방법은 선악과(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를 따먹음으로 해서 수치감과 두려움의 감정이 세상에 들어오고 이러한 감정이 세대를 흘러가면서 자손 들에게 이어지면서 더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되면서 죄를 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하게 된 것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감정의 힘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하루에 많은 결정을 하게 되는데 이 모든것이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고 착각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감정에 의해서 하게 된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이러한 감정 속에 수치감, 두려움, 그리고 분노등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녹아들어가 있고 이러한 감정들에 의해서 무의식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통해서 증명되고 있다. 감정조절은 현대의 심리학에서 다양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사항이다. 그만큼 한 사람의 건강한 사람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감정조절에 대해서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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