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치유할때 사회의 진정한 변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트라우마는 개인의 범주에서 이해되기 쉽습니다. 각 개인의 고유한 경험으로 인해서 트라우마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어린시절 경험이나 살면서 경험하는 큰 사건들이 그 예가 될수 있습니다. 프로이드가 이야기 했던 무의식도 결국은 개인의 무의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무의식을 잘 이해해야 하고 무의식을 이해할때 트라우마는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칼융은 프로이드가 이야기 했던 개인의 무의식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집단무의식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의식이 한 개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경험을 한 특정 집단속에서 공통의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크게 나가서는 인류전체를 아우르는 집단 무의식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무의식과 비슷하게, 이러한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단의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류 전체가 경험했던 COVID-19이나 유대민족이 경험한 홀로코스트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두가지 대표적인 증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과잉행동으로 이것은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와 반동작용을 동반합니다. 두번째는 무감각과 무관심입니다.
트라우마가 있는 상태에서는 과거의 경험에서 유발된 감정, 생각, 그리고 신체의 감각들이 현재 경험하는 것들을 덮어씌워버립니다. 즉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때문에 발생했던 감정, 생각, 그리고 신체의 감각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과거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도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 억매여 있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어떤 집안 전체가, 민족 전체가, 나라 전체가 이러한 상황에 있다면 미래로 나아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집단 트라우마로 야기된 집단 무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트라우마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린시절 무시당하거나 학대받았던 애착트라우마의 경험이 자신의 정체성과 적절히 통합되지 않아서 많은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애착트라우마가 일바화 되면서 사회의 통념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러한 트라우마의 고통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지게 된 것입니다. 홀로코스트를 통해서 집단수용소에서 강금되어서 죽음의 공포를 날마다 느끼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현실과 이상의 자신을 분리하는 해리의 방식을 사용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억눌려진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대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집단무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집단안에 존재하는 집단적인 부정을 건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집단부정이 한 그룹에서 건드려질때 토마스 허블(Thomas Hubl)은 한 방안에 있는 집단구성원들이 모두 몸에서 어떠한 감각의 변화를 경험할수 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 부정이 우리의 신경시스템에 24/7 존재하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단지 우리의 의식적인 초점을 다른 곳에 두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할 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외상후성장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집단트라우마가 처음에는 심각하게 느껴지지만 그곳에는 항상 치유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셀수없이 많은 학살과 전쟁이 있어왔습니다. 이러한 집단트라우마에 대한 치유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트라우마의 치유에도 도움을 줄것입니다. 둘은 서로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입니다.
참조: https://news.harvard.edu/gazette/story/2020/12/moving-from-individual-to-collective-hea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