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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자신이 삶을 열심히 살게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제가 살아온 삶의 방법을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왜 내가 그때 그런방식으로 행동을 했을까? 왜 더 좋은 방법이 있었는데,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라고 말입니다. 제가 어느때 열심히 사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누구나 삶을 열심히 사는 동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기부여가 어디에서 강력하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가꾸어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저의 삶의 중요한 동기가 위기의식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위기의식은 중학교때였습니다. 저는 집에서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떤분이 들으시면 정말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하실수도 있고,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그럴수도 있지만, 적어도 저희 집에서 저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어느날은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살다가는 나중에 먹고살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위기의식이 들어오자 저는 공부라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이후로 공부를 했던것 같습니다. 그것이 처음 위기의식이 저의 삶을 방향을 바꾼 계기였습니다. 


두번째는 대학교때 였습니다. 전산학과를 갔지만 학과공부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많은 두려움과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시한번 엄청난 위기의식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번째 위기의식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사에서 엔지니어에서 영업으로 바꾸도록 종용을 하는 과정에서 저는 영업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다시 위기의식을 느끼고 미국으로 이직하기 위한 시험을 치고 그 결과로 미국에 오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회사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미국으로 직장을 옮기면서도 여러차례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삶의 변화가 있었던 것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회사 내부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극심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고 이로인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러한 방식이 최근들어 한계에 부딛힌다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두려움이 나의 행동의 원천적인 에너지가 되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위기의식을 극도로 고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위기의식을 고조하는데 어려움도 있고, 몸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반응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위기의식이 사라지고 삶이 약간 편해지면 삶의 동기가 사라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시각이 아니라 위기를 벗어나는 목적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목표가 희박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두려움이 많아지면 몸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일단 어떠한 위기라는 인식을 제가 느끼게 되면 심장이 쪼이고 몸이 굉장히 긴장하고 잠도 못자는 상황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위기의식에 대한 반응이라는 패턴에 추가해서, 제가 위기의식을 느꼈을때 반응하는 방식에서 저혼자 어떤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는 패턴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반응방법은 어렸을때 저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지금까지도 저의 무의식에 깊이 학습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도 하지 않고 항상 혼자서 어떤 해결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말이죠, 이러한 반응방법은 많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권위자에 대한 두려움도 이러한 경향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저의 삶이 이러한 형태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저를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과거의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저의 반응방식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러한 방식을 바꾸어서 좀 더 건강한 삶의 원동력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요즘 저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세상, 삶,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전부다 수정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는 허탈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방법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에 대한 인식을 가진것만 해도 저에게는 엄청난 발전이었기 때문에 저의 삶에서 모든것을 수정할 수는 없어도 조금만 수정할 수 있어도 성공이라는 생각을 본인에게 해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녀가 더 나의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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