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의 슬픔
인간은 지구상의 동물중에서 연약하게 태어나는 존재중에 하나입니다. 보통 야생동물들은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걸을수 있게 되고 부모들을 따라서 움직일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하지만 인간은 보통 걸음을 배우는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만큼 인간은 연약한 존재로 태어나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사랑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요소입니다.
그런데 만약 부모가 아기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적절한 반응을 해주지 않고 정서적인 교감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은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사랑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하면 사랑과 관심을 주지 않는 부모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해 버리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해 버리는 것이죠. 이러한 단계가 되면 너무나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됩니다.
저는 저의 삶에서 벌어졌던 여러가지 일들을 곱씹어보면서 제가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했던 시간들을 뒤돌아보고 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저에게 많이 일어났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한가지 저에게 있는 비정상적인 믿음에 대해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 집에서 저의 존재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큰형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별로 잘하는것 없는 막내인 저는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시공부를 오랜기간 했던 큰형은 집안의 관심과 걱정을 한몸에 받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어릴때 부터 나이가 들어서까지 항상 그랬었죠. 그리고 정서적인 교류가 없었던 저희 집안의 특성도 정서적으로 민감했던 저는 그 충격을 더 강하게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제가 파악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사랑받는 존재는 못되었습니다. 항상 관심 밖이었고, 주목받지 못했죠. 그리고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집안의 수치와 분노를 모두 짊어지고 가는 희생염소의 역할을 담당한 존재였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차원의 수치감과 분노를 가득 마음에 담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은 슬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사랑받기를 포기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나를 도와줄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살 방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인 이후의 삶은 그렇게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조직에 가도 자신이 사랑받거나 인정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에서 그랬듯이 독자적으로 살수 있는 방법을 항상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조직에서 혼자만 살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조직의 생리를 잘 모르는 일이죠. 조직에서 누군가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들을 많이 만들었어야 하는데 혼자 살겠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어리석은 것이죠.
하지만 집에서 생존하면서 배웠던 그런 전략을 무의식 수준에서 계속 사용하면서 살다보니, 직장생활은 점점 어려워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깨달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정말이지 슬펐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사랑받을 노력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저 자신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을때 부모님들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기억도 인지도 하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부모님들은 완벽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리고 나도 절대자에게 사랑받는 존재이고 그렇게 살수 있다는 것을 요. 저도 인권을 가지고 있는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남은 저의 생을 가치있는 존재로 살겠습니다. 저의 가치를 깨닫고 하루를 살수 있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