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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온 감정이야기 (9회)

유다모델

지난글에서는 요셉을 예로들어 트라우마 회복에 대한 방법으로 이야기 심리치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큰그림에서 이해하고 인식하는것을 통해서 삶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살펴볼 유다라는 인물은 사실 요셉같은 큰 업적을 이룬 사람도 아니고 뭐 특별할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특별한 내용이 있다면 그의 아들들과 며느리 다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에는 형사수취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오늘날의 문화에서 보면 이해할수 없는 제도이지만, 당시에는 나름 이유가 있는 선의의 제도였다. 만약에 형이 형수님 사이에 자녀가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을 대신해서 형수와 관계를 가져서 자녀를 갖게 하고, 형의 대가 끊어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제도였다. 그리고 두번째 형제도 형수에게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면 다음 형제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당시 자녀를 갖지 않을 경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대를 잇는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경제적 보장책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유다에게는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아들은 엘, 둘째는 오난, 셋째는 셀라였다. 첫째 아들 엘은 이방인 여자인 다말과 결혼을 했는데, 일찍 죽어서 형사수취제도에 의해서 둘째 오난이 다말과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난은 자신이 다말과 관계를 통해서 자녀를 낳더라도, 자신의 자손이 안될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말과의 관계에서 일부러 체외에 사정을 하여서 임신이 되지 않되도록 했다. 이러한 이유로 오난의 이름에서 나온 오나니가 자위행위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오난은 이러한 행동이 악하다고 보신 하나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유다는 며느리에게 막내아들 셀라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막내아들을 다말에게 보낼수 없다고 하고 친정에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리고는 시간끌기에 들어갔다. 사실은 유다의 마음속에는 셀라마저 죽을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서, 셀라를 다말에게 보내주지 않은 것이다. 


다말은 이제나 저제나 시아버지가 막내 시동생을 자신에게 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셀라가 나이가 들어도 보내주지 않자, 그녀는 눈치를 채고 말았다. 즉, 시아버지 유다가 자신에게 막내 시동생을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말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도전을 하게된다. 시아버지가 자신이 사는 동네의 근처에 왔을때 몸파는 여자로 분장을 하고 가서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게된다. 사실 그 당시에는 혼외의 관계를 가졌을때는 돌에 맞아 죽는 그런 형벌이 있었던 시대였다. 나중에 다말은 유다의 인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를 담보물로 받아놓았다가, 나중에 임신을 해서 사람들이 다말을 죽이려고 할때 증거물을 내밀어서 결국은 죽음을 피할수 있었다. 이때 유다는 유명한 말을 한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사실 이러한 경험은 유다에게 두가지의 중요한 감정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바로 자녀가 죽는 경험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명이나 말이다. 이러한 아픔은 지식으로 알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느껴보지 못하면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수가 없고, 그러한 고통의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고통을 경험할때 공감할수 없다. 감정은 에너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어떤 감정의 경험을 하게 되면, 일정한 주파수의 에너지장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주파수의 에너지장을 몸에 경험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동일한 고통의 경험을 하고 에너지장을 경험하고 있을때,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고통의 에너지장을 낼수 있고, 이때 같은 주파수의 파동이 만날때 에너지가 같이 공명을 하면서 실제로 위로를 받는 사람의 고통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지식만으로 고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러한 감정의 진동을 만들어 낼수가 없다. 왜냐하면 몸으로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다는 자식을 둘이나 먼저 보내는 고통을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은 나중에 요셉이 죽은줄 알고 있는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난 다른 아들인 베냐민을 잃게 될까바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장면에서 유다가 아버지인 야곱에게 나아가서 이야기할때와 유다가 요셉에게 이야기할때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유다가 경험한 또다른 감정의 경험은, 며느리와의 관계가 탄로 나면서 숨기고 싶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부끄러움을 세상이 알게되면 그것을 숨기기에 바빠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다가 두려움과 수치심을 경험한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서 만들어진 두려움과 수치심과 연결이 된다. 


유다는 두려움을 피하려다 수치심을 만나게 되고, 그러한 상황에서 더이상은 수치심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이 옳지 않은 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의 감정을 피해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버림받을까봐 일을 하고, 수치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하지만 많은 경우는 그러한 숨겨진 자신들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순간순간 말하고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중에 형제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러갔다가 요셉을 만나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유다가 요셉과 형제들 그리고 아버지 사이에서 중요한 중재의 역할을 함으로 해서 애굽으로 70인이 이주해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핵심적인 원동력을 나는 유다의 중요한 두가지 감정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베냐민을 잃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자식들이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야곱을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고, 요셉앞에서 베냐민이 돌아가지 못하면 야곱의 영혼이 음부로 내려갈 것이라고 목숨을 건 간청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70인의 가족이 애굽을 내려가는데 요셉의 역할 못지 않게 유다의 숨은 역할도 재조명을 받아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두려움과 수치감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경험이 큰 힘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과 유다로 이어지는 가족의 역사에서 어떻게 트라우마가 극복되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요셉과 유다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성취를 이루게 되었다. 요셉은 13년의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새롭게 쓸수있게 되면서 아버지를 넘어섰고, 유다는 두려움과 수치심의 감정을 대면하여 승리하면서 아버지를 넘어섰다. 야곱은 나중에 장자에 연연해 하지 않으면서 요셉의 두 아들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고, 유다를 또 축복하여 예수님의 조상이 되도록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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