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수치로 인해 회피하는 삶과 소망을 가지고 성취하려는 삶
최근에 감정이 많이 안정되면서 과거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어쩔줄을 모르던 시기를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지라고 생각할 만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감정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움이 될만한 많은 일들을 했었고, 많은 도움의 손길을 만났었고, 회복의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도 했었습니다.
아직도 처음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상담을 받으러 갔던 날을 기억합니다. 상담선생님이 어떤 문제때문에 왔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왜 왔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할수 없었습니다. 감정적으로는 고통스러운데 무엇이 원인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번 방문을 하다가 포기를 했습니다. 소득이 없이 끝난 것입니다. 그것이 벌써 8년전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회복을 가장 방해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혼자 모든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자세였습니다. 그리고 아프고 힘들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자신이 어떤 정서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것이 저의 회복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삶에 고통과 수치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고통과 수치를 가장 적게 느끼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본능입니다. 마치 사자가 나타나면 가젤이나 얼룩말은 도망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도망가는 동물들을 용기가 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살기위해 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도망가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인데, 실제의 위험이나 공포보다 몇배나 강하게 공포와 수치를 느끼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릴적 경험했던 공포스럽고 수치스러운 사건들의 경험이 몸에 남아서 그러한 착오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삶은 더이상 어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두려움과 수치가 나타나면 그것을 피해서 도망가는 도망자의 삶으로 변해버립니다. 저의 삶이 그런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수치와 두려움의 감정이 올라오면 회피하고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감정이 안정이 되면서, 그때 느꼈던 두려움과 수치의 감정이 과장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감정의 강도도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감정이 많이 안정되면서 도망가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자, 그러면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커졌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데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고 그러면 내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과 수치심에서 도망가던 삶의 기간이 길면 길수록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이룰수 있는 역량도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남은 시간은 도망자의 삶이 아니라 성취자의 삶을 살기를 소망하며, 이 남은 인생의 때에 하나씩 하나씩 의미있는 일들을 만들어 가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면서 한걸을을 디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