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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지 못하는 사람들

과거의 두려움과 고통속에 빠져서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

심각한 정서적 고통을 경험하면서 가장 혼동이 되었던 것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직장, 부부생활, 가정, 양육으로 인한 어려움과 과거의 경험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구분이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어떤 분들은 과거의 경험으로 한 고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실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중에 의식하고 있는 고통이 있고, 의식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종류에는 있어야 할것이 없는 것과, 없어야 할것이 있는 고통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사실 저의 가정이나 삶이 외적으로 봤을때는 고통스럽거나 힘들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에 큰 결핍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객관적으로 외부의 사람이 보았을때 대학교까지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시고 부모님 집에서 학업을 마치고 문제없이 직장생활하고 결혼하고 미국으로 직장을 옮겨서 잘 살아오고 있는 사람이 무슨 고통이 있다고 이야기 하면 의문을 제기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나타나는 상황과는 무관하게 저의 내면세계는 고통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고통을 언어와 할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쌓여있던 내면의 고통을 저는 이겨낼수가 없었고 중년의 시기에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양육의 어려움, 부부관계, 직장 이외의 인간관계등이 어려워지면서 내면의 고통에 겹쳐져서 외부의 어려움이 다가왔을때 저는 정서적으로 무너져 버렸습니다. 


정서적으로 무너진 저의 삶을 부여잡고 저는 저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저의 내면에 숨어있는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것을 찾지 못하면 저의 삶은 그대로 무너져내리는 것이고, 남은 삶을 그저 고통속에 죽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의 방황과 공부, 그리고 만남을 통해서 결국 저의 고통은 제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있어야 할것이 없었던 고통이었다는 것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저의 집안에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트라우마의 희생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트라우마 속에서 살면서 현실을 살지 못했고, 본인의 고통때문에 자녀와 정서적인 친밀함을 맺지 못하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가 물려준 트라우마의 두려움에 억눌려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망자의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두려움은 저의 몸에 남아 있어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의 삶을 지속적으로 망가뜨리고 비정상적인 정서적 반응을 만들어 냈으며, 이로 인해서 저는 심각한 감정적 고통에 시달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를 살았던 것이 아니라, 저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감정적 고통에서 계속 허우적 거리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적 고통이 건드려지는 상황이 발생할때마다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며 현재에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며 적절하지 않은 감정반응을 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이해를 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가 끝이 아니라, 이러한 쌓여있는 깊은 감정적 고통을 해소하고 정상적인 감정의 수준까지 정화하는 과정이 필요했으며, 도망자의 삶에서 새롭게 소망을 가지고 이루어가는 삶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했습니다. 


감정을 정화하는 작업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감정적 고통을 줄이고 감정을 정화하는 작업도 자료를 찾아보니 여러 방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방법들 중에서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서 시도해보고 결과를 점검해보고 저에게 맞는 방법들을 찾는 과정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든 과정이지만, 도망자의 관점에서 보던 인생을 소망을 이루어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바꿀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전혀 살아가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던지, 직장에서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도 모두 수정해야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은 지금도 진행중이며 평생의 작업이 될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저의 삶에서 무엇이 잘못되었었는지, 그리고 왜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는 잘못되어 있던 것을 회복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살아가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과거의 고통에 통제당하는 삶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내는것 그것이 이제 날마다의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직 과거의 고통속에서 살면서 현재를 살고있지 못하시다면, 그 고통의 감정에서 빠져나와서 현재를 살아갈수 있을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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