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생존을 위해 만들었던 자아가 성인이 되어서 삶을 망가뜨릴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이용해서 생존방법들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것은 아기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기들은 어른들과 달리 좌뇌가 발달하기 전이기 때문에 우뇌를 주로 이용하게 되는데, 우뇌는 직관이나 감정등을 주관하기 때문에 감정이나 직관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끼거나 고통스러움을 느낀다면 그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생존전략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가지고 있는 자원이 별로 없습니다. 돈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고 자신이 힘이 있는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운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서 외적인 도구를 사용할수 없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내적 자원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양육자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과 언어 그리고 감정들에 기반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만들어갑니다. 프로이드는 심리성적 발달과제를 제시하면서 인생의 단계마다 발달과제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심리성적 발달과제를 더 발전시킨 학자가 에릭 에릭슨입니다. 그의 심리 사회적 발달 이론 (Erikson's psychosocial developmental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다음과 같은 8가지 발달단계를 거친다고 정리했습니다.
1단계(0-1세): 기본적 신뢰감 대 불신감
2단계(1-3세): 자율성 대 수치심 및 회의감
3단계(3-5세): 주도성 대 죄책감
4단계(5-12세): 근면성 대 열등감
5단계(12-20세, 청소년기): 정체감 대 역할혼미
6단계(20-24세, 청년기): 친밀감 대 고립감
7단계(24-65세, 장년기): 생산성 대 침체성
8단계(노년기): 자아통합성 대 절망감
예를 들어 0-1세때 아이가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안전을 경험하지 못하면, 아이는 세상에 대해서 불신하게 되고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자신의 모든 믿음과 반응양식등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저의 예를 들자면, 저는 저의 어머니가 젖이 부족해서 항상 배를 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때 다른 아주머니들이 오면 곯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젖을 달라고 보챘다고 합니다. 아기의 입장에서 보면, 주양육자가 자신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않는 생존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때의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저는 세상은 믿을수 없고,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생존방법을 찾아야 하는 곳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 양육자는 내 생존을 책임져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을 무의식에 가지는 계기를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저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마음속에 권위자들이 저를 해하려고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나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놀리고 괴롭힌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있어서 항상 애매한 상황이 되면, 상대방의 의도를 부정적인 것으로 결론내어 버리고, 행동을 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태도는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러한 믿음이 저에게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서 나중에 알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했습니다.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0-1세때 제가 경험했던 삶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국 저는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어렸을때부터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아기들과 어린이들은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판단할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감정에 의존해서 상황을 판단하고 제한된 지식을 이용해서 그 감정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틀렸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가 틀렸거나 잘못되었다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학대를 받을때도,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신을 학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하면 언젠가는 부모들이 자기를 사랑해 줄것이라고 환상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에 불과합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상처와 트라우마 때문에 자녀들을 사랑할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으로 자녀들을 위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중에도, 무엇이 자녀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정체성과 방어기제 그리고 환상을 만든다면, 왜곡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정체성과 방어기제 그리고 환상은 아이들의 무의식세계 깊숙히 자리잡게되고, 삶을 살아가는 기본태도로 사용하게 됩니다. 자신이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입니다. 제가 중년의 위기를 벗어나는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을 인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내면 깊이 있는 두려움이 저의 이런 부분을 찾는것과 이러한 거짓자아를 버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짓자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제가 죽을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거짓자아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거짓자아를 놓아버릴때 그 뒤에 숨어있던 진짜 자아가 나타난다는 것을 믿는것이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