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무엇을 느낄지 정하려고 하는 부모
제가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기억이 났던 저의 집안에서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아버지가 본인이 느끼고 생각하는대로 제가 생각하고 느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하면 조카가 미국에 공부를 하러 갈수도 있는데 그러면 저희집에 와서 지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아버지가 하고 있었는데, 제가 뉴욕의 원베드룸 아파트에 한명이 더 같이 사는것이 만만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러자 미국에 살더니 버릇이 없어졌다고 막 화를 내는 것입니다. 저는 할말을 잃고 더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녀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자녀가 부모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느껴야 한다는 생각의 패턴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고 본인이 자녀의 상황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흔이 넘은 아들에게도 이렇게 대했는데 어릴때는 집안 환경이 어떠했을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을 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2004년도에 미국에 왔을때, 집을 구하기 전에 저지시티에 있는 하숙집에 2달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한 남자 대학원생을 만난적이 있는데, 그 학생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는 학교를 다니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모가 자식을 대학교수로 만들고 싶어서 만약 대학원 공부를 하면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 지원을 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기도 싫은 공부를 하느라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부모의 경우는 자녀가 자신이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대로 따르지 않자, 그것을 강제하기 위해서 돈으로 자녀를 제어하려는 행동경향을 보이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어찌보면 굉장히 흔한 경우입니다.
가족시스템이론(Family System Theory)의 대가인 머레이 보웬은 자아의 차별화(Differentiation of Self)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개념의 의미는 개인이 관계안에서 자기라는 감각을 간직하면서 감정과 지적인 기능을 수행할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즉 관계 안에 있더라도 자기만의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족시스템이론에서는 가족을 감정공동체로 봅니다. 즉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건강한 가족과 역기능적인 가족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사람만의 감정이나 가족특유의 감정을 강제하느냐 아니냐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감정을 가족 전체에 강요하고 자녀나 어머니의 감정은 무시한다면 이것은 건강한 가족이 아닙니다. 가족 모두의 감정을 존중해주고 어린자녀들이 자신만의 감정을 확인해 나갈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역할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자신만의 감정을 부모에게 인정받는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 자신만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건강하게 자랄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어린아이의 감정을 어릴때부터 인정해주지 않거나 무시하게 되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감정을 개발할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되고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을 만들어나갈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기능적인 가족안에서 허락되지 않은 감정표현은 무의식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족구성원 모두가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도, 저만의 감정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저만의 감정을 가지지 못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의 감정만 만족시키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내면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감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감정이 왜 있는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쌓여있던 분노는 잘못된 대상과 잘못된 시점에 폭발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건강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당연한 감정도 표현하지 못하고 너무나 오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 안에서 분노, 무기력감, 수치심이 저의 내면을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마크 브래킷(Marc Brackett) 박사의 "Permission To Feel"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감정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을 아이때부터 교육하기 위해서 초등학교에 도입한 감정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만의 감정을 가지고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일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릴때부터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그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SEL(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이라고 해서 초등학교부터 감정에 대해서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가질수 있도록 격려받고 자라셨나요? 아니면 부모의 생각과 감정을 강요당하면서 살아왔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사회가 강요하는 생각과 감정을 수용하면서 살아오셨나요? 나이가 들었는데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삶은 점점 더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라는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감정과 생각이 없다면 그것은 건강한 개인이 될수 없습니다. 그냥 가정과 사회가 만들어낸 수천, 수백만개의 복제품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