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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트라우마의 폐해와 해결방법

집단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는지 알지 못할때

한국에서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같은 국가적 재앙과 그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문제점에 대해서 인식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번의 사건으로 발생하는 트라우마는 눈에 보이고 심각한 피해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기 때문에 많은 노력과 예산을 투입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 문화와 언어속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집단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역사와 육이오 그리고 광주항쟁등 근대사에서 수많은 전쟁과 피해를 경험한 한국에는 뿌리깊은 집단 트라우마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집단 트라우마의 고통들이 제대로 인정받거나 치료받지 못하고 오랜시간 내려온탓에 삶의 문화와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과 치료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낮은 수준에 있다는 것이 상황을 개선하는데 많은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가 좋은 예가 될수 있습니다. 저의 집안은 일제시대와 육이오를 경험한 할아버지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했으며 심각한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가족들에게 심각한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트라우마로 고통받았고,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애착트라우마를 경험했습니다. 그렇지만 집안에서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성격이 괴팍하다거나 경제관념이 없는 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 트라우마의 문제를 성격의 문제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할아버지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 아무도 명시적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로인한 삶의 문제들에 대해서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한 트라우마의 문제가 손자대까지 흘러왔고, 저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가족안의 트라우마로 인해서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정서적 플래시백 등의 문제로 인해서 고통당하고 회사생활도 제대로 할수 없었습니다. 


결국 3대에 걸친 트라우마의 기억들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3대와 4대까지 그 고통이 전달되고 고통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어쩌면 정말 서글픈 상황입니다. 제가 그 피해자가 되보니, 그 답답함과 고통이 너무나 억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저같은 경우는 책도읽고 공부도 하면서 그 원인을 알아갔기 때문에 자기 상황에 대한 인식을 할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그 이유도 알지 못하고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참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저의 회복의 과정을 보고 다른 전문가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정리해보면, 결국 트라우마가 발생했을때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이야기 할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공감해주고 경청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빨리 가지면 가질수록 트라우마의 상처는 아물고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받아주는 사람도 없다면 이 고통의 시간들은 깊은 상처가 되고 칼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의식의 그림자가 되어서 그 사람의 평생을 괴롭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 전체의 집단 무의식에 쌓여서 민족 전체의 언어와 문화에 스며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필요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핵가족화 되어가고 마을 중심의 건강한 공동체가 점점 더 사라지고, 피상적인 관계만 맺는 소셜미디어만 확장되는 상황을 보면서 집단 트라우마가 앞으로는 사회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될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마음편하게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가 그 어느때보다도 더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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