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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트라우마를 객관적으로 보기

자신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애착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데 가장 어려우면서도 고통스러웠던 부분은 제가 심각한 애착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애착트라우마를 경험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부모들이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정서적방임을 했거나 정상적인 육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부모님들이 자신에게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가지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하고 괴로워만 했던 그 오랜 시간이 부모들이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두려움과 그동안 쌓아두었던 분노의 감정들을 잘 해소해야 하는 힘든 숙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어렸을때는 부모들이 신적인 존재입니다. 자신의 생존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를 비난하거나 잘못했다고 인정해 버리는 것은 인지적으로 자신의 생존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모든 고통스러운 감정의 경험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따라서부모가 잘못해서 경험하는 감정적 경험들도 자신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더 잘하면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적 경험이 사라질 것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인지구조를 평생유지하고 살다가 갑자기 부모들이 자신에게 잘못해서 자신이 애착트라우마를 경험했고, 그러한 경험 때문에 견딜수 없는 삶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았어야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만큼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엘리스 밀러의 책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엘리스 밀러는 기독교적인 전통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익숙한 사람들이 부모들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이러한 어린이들이 그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어떠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과정에서 쌓여진 분노등이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면 어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놓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부모들의 무관심한 양육태도와 정서적 방임 및 학대를 했음을 인정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무의식에 억눌러 놓았던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수치감을 대면하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져야 했습니다. 그러한 감정들이 저의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저의 우울증과 불면증을 유발했으며 대인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던 것입니다. 


일단 부모들의 잘못을 인정하면 그 이후에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덩어리들이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그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했을까,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하는 모든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잘못을 눈감아 주기 위해서는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행동을 할때 눈감아주어야만 합니다. 즉 부모들이 정서적으로 자신을 무시하고 왜면했다면,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행동을 해도 정당한 행동으로 대응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엄청난 분노가 유발되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적 고통들을 애써 외면하고, 다른 방법으로 그 감정적 고통들을 해소하려고 하니 삶은 더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 전까지는 삶이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유교적 정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특히 부모들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중에 하나입니다. 특히 유교에서는 조상신을 섬기면서 조상들이 자신들의 삶을 후손들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조상들에 대해서 좋게 바라보려고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조상들을 미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욱 부모들이나 그 윗대의 잘못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인정하기가 더 어려워 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조상들 탓만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안에 조상들의 잘못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부정적 감정이 쌓이게 되고, 이렇게 되면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삶을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해도 의지력이 제대로 작동할수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제대로된 대상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대상들에게 투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안의 경우에는 그것이 알게 모르게 가장 집안에서 약한 존재인 아내들이나 자녀들에게 투사되어서 집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녀들에게 대를 이러서 전달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겼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한세대의 부정적 감정들은 그 세대에서 책임지고 끊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이 해야할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부모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그 쌓여있는 분노와 괴로움 그리고 수치의 감정을 자녀들에게 투사해서 가족이 대대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비극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감정은 대상을 올바로 인식하고 시간을 가지고 감정정화를 하게되면 해소할수 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가족들이 이러한 작업을 제대로 해서 사회가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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