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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명상

감정을 흘려보내는 방법

감정은 다루기 어려운 존재다. 이론적으로는 감정을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막상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거나 수치의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이 너무 생생하고 고통스러워서 그렇게 한가하게 감정을 관찰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그렇게 쉬우면 이세상이 더 살기좋은 곳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어렸을때 애착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감당할수 없는 감정적 충격은 더 심각한 수준이 된다. 본인도 이러한 애착 트라우마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아깝게 흘려보냈다. 두려운 감정이 들어오면 마치 그것이 현실인것처럼 생각이 되서 꼼짝할수가 없어진다. 현실에서는 그러한 두려울 일이 없는데도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수 없게된다. 마치 공포영화를 보다 그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온몸에 공포의 느낌이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한다. 그리고 무기력감으로 인해서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 느낌이 사람을 아무것도 할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정말이지 무서운 형벌이다. 그것이 애착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감정적 고통이며, 이러한 고통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말로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다. 본인도 나중에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했던 그러한 고통을 애착드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이 C-PTSD를 가지고 있을때 나타나는 증상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종교로서의 불교도 있지만 마음공부 차원의 불교도 있다. 마음공부의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가 명상인데, 위빠사나 명상은 부처님이 성불할때 했던 명상의 방법이라고 이야기 되고 있는데, 다르게 이야기하시는 분의 이야기도 들었고 자료마다 약간씩 내용이 다른것 같다. 본인이 불교의 명상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일단은 위빠사나 명상을 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내용을 기준으로 정리해보기로 하겠다. 위빠사나 명상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명상의 방법인데 고엔카 선생님이 표준화작업을 하시면서 전세계로 그 수행법이 전파되었다. 단순히 명상뿐만이 아니라 명상센터를 만드는 기준, 진행하는 방식, 음식, 자원봉사로 진행, 무료진행등의 표준화된 운영방식을 확립해서 전세계 어디를 가든지 표준화된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한국은 진안에 위빠사나 명상센터가 있으며 무료로 신청할수 있고 10일코스를 처음에는 신청해야 한다. 10일동안 침묵해야 하며, 휴대폰은 처음 들어갈때 바로 맞겨버리기 때문에 수련중에는 외부와 연락을 하지 못한다. 음식은 채식으로 제공되고 약간의 휴식시간 이외에는 계속 명상을 하게 된다.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하고 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위빠사나의 뜻은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이러한 말에 아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그럼 있는 그대로 안보는 사람도 있나 하고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자신의 사회적 배경이나 교육, 가정의 배경등에 따라 달리보인다. 이것은 철학에서는 인식론이라는 분야로 그리스 시대부터 몇천년간 논의가 되어왔던 심오한 분야이다. 이 글에서 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는 어렵고 본인의 지식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정도만 이야기하고 지나가기로 하겠다.  


1. 첫번째 중요한 내용은 감정이 만들어지기 전에 몸에 느낌(Sensation)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감정으로 만들어진 이후에는 제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윗빠사나 명상에서는 몸에 느낌(Sensation)이 일어나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느낌 단계에서 관찰을 해서 느껴주면, 그것들이 감정으로 발전되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이 핵심 원리이다. 그래서 윗빠사나 명상을 하게되면,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은 자리에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계속 몸을 위에서 아래로 관찰하면서 몸에서 발생하는 느낌을 느껴준다. 물론 이게 잘 안된다. 자꾸 다른 생각들이 머리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몸의 느낌을 관찰한다.  


2. 두번째 중요한 요소는 느낌에 대해서 어떠한 좋고 싫고의 가치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좋다고 하면 거기에 집착하게 되고 싫다고 하면 그것을 회피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판단 없니 그냥 몸에 어떤 느낌이 있을때 좋으면 좋은대로 싫으면 싫은대로 그대로 관찰하고 흘려보내라는 것이다. 


3. 세번째는 상카라(saṅkhāra) 에 대한 것이다. 상카라라는 단어가 번역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형성이라는 한글로 해석을 할수 있다고 하는데, 함께 만들어진것, 조건지어진것 (https://m.blog.naver.com/matrix72/221483356020) 으로 해석을 할수 있다고 한다. 각설하고,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신체의 느낌이라는 것이 하나의 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삶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면서 쌓이고 쌓여서 양파처럼 층이 지어져 있는데, 이러한 신체의 느낌들을 계속 느껴주면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층으로 형성되어 있는 신체의 느낌들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트라우마의 베스트셀러인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에서 트라우마의 경험들이 몸에 기억되어 있다는 내용과 연결되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짧게 이야기하자면, 10일동안 나의 몸을 관찰하는 경험에서 내가 그동안 나의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고 채식을 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서 난 내 몸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그동안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소음들과 잡음들 때문에 내가 나로서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몸에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느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말이다. 그리고 각 순간순간마다 머리의 생각에 좌우되어서 미래의 걱정이나 과거의 후회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을 느끼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하지만 앉아있다보면 자꾸 잡생각이 떠올라서 몸의 감각을 관찰하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할때가 많았다. 그러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다잡고 나 자신의 느낌을 관찰하면서 현재를 살려고 바둥거렸다. 


이러한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 감정이라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교의 마음공부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오늘날의 심리학과 뇌과학 트라우마연구등에서 나오는 많은 연구결과들과 연결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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