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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결핍을 인지하지 못할때

삶을 살면서 자신의 결핍을 알지 못할때, 깊은 혼란의 시기를 경험합니다.

제가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저의 삶에서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알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삶이 고통스럽고 힘든데, 그 원인을 알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의 집안 안에서 내려오던 것이니다. 저의 부모님들도 본인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줄수 없었던 것입니다.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줄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충만한 삶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서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한국에서도 직장에서 대인관계가 힘들었지만, 미국에 와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문제가 상대방에게 있다고 줄곳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를 이해해 주지 않고 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감정적인 불안정이 상당히 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보통의 상황으로 인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감정을 한번도 의심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인관계는 저에게 항상 어려웠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의문점을 가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감정을 이야기 해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이나 질문을 하지 않고 중년의 나이까지 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제가 감당할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적 고통이 한계치를 넘어서자, 저는 죽음만이 저를 정서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정서적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삶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답답한 마음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것저것 시도했습니다. 먼저는 가족들을 한국에 보냈습니다. 아내도 무릅 근육 파열로 수술을 하고 물리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했고, 아이는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켜서 학부모를 소환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고통도 견디기 힘든데, 가족들의 문제가지 제가 감당할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을 한국으로 보내고, 저는 매주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밴을 타고 주말에 등산을 가면서 다양하게 이야기도 하고 자연에 가서 등산을 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안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년 이상을 매주 등산을 갔습니다. 등산도 등산이지만, 같이 등산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저에게 많은 안정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뉴욕에 있는 산에 익숙해졌고, 지금도 한달에 한두번은 등산을 계속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 책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서 저의 문제의 실마리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죽기살기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단기선교 프로그램으로 콜롬비아, 페루등을 방문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윗빠사나 명상과정에 등록해서 10일동안 명상을 했습니다. 가족세우기 워크샵에 참석해서, 조상들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자손들에게 전달되는지를 몸으로 직접 경험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이버대학에 진학해서 상담심리학 공부도 하고, 그 여세를 몰아서 미국에서 정신건강상담 대학원 과정에 진학해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저의 어린 시절 가정은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었다는 것입니다. 폭력적이고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저의 아버지도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분이였습니다. 그리고 고모들도 숙부님도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분이 되었습니다. 정서를 억누르고 수치와 두려움의 감정이 가정내에서 건강하게 표현되지 않고 숨기고 억눌러져 있었습니다. 저도 그러한 트라우마의 영향력 아래에서 자라났으며, 저 자신도 정서를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고, 부모들과의 대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권위자들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너무나도 심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사회생활이 어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와 수치, 그리고 권위자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서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주변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성적인 저의 성격은 저의 내부에 쌓여있는 감정적 짐들을 표현하지 못하고 계속 쌓아놓고만 살다가 결국은 인생에 조금 심한 어려움이 다가오자, 폭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건강한 감정적 표현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러한 감정의 상태가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해서, 긴 혼란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게 된 이후로, 저의 어린 시절과 전체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저 집이 있고, 먹고살고, 학교다니면 아이들의 모든 욕구가 충족되었다는 믿음을 가진 집안에서 아무런 정서적 보살핌이나 공감도 받지 못한체 살아왔고, 그게 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정도면 잘 살았지, 뭘 더 바라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육체의 기본적인 욕구만 채워진다고 살아갈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러한 먹고 재워주는 것만 해결해주고, 나머지 정서적으로는 아무런 보살핌도 주지 않고 무시하고 대화의 상대로도 여기지 않는다면 차라리 조금 덜먹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정서적 보살핌을 주는 것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가는데는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라우마를 이야기 할때도, 경험하지 말아야 할것을 경험하거나, 경험해야 할것을 경험하지 못한것이 트라우마라고 어떤분이 정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왠지 이유를 모르겠는데, 삶이 무의미 하거나, 이유를 알수 없는 감정적 고통으로 혼자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면, 자신의 삶에서 결핍이 있는 것은 아닌지, 특히 정서적 결핍이 있는것은 아닌지 한번쯤음 의심을 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는 살만해 졌는데 마음이 허전하거나, 알수없는 감정적 고통을 많이 경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좋지 않는 방법들을 동원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정서적인 고통을 마주하지 않고 잊어버리거나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 심각한 중독의 문제를 경험할수 있습니다. 


정서적 고통을 경험하는 많은 분들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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