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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배운 세상을 사는법

어린시절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정에서 부모에게 배웁니다.

저는 제가 어떻게 삶을 살고 있는지를 중년의 나이인 40이 넘어서 알아차렸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들 중에서 아니 어떻게 자신이 어떻게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렇게 늦게 알아차릴수 있냐고 질문을 하실것입니다. 물론 제가 늦게 깨달은 편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삶을 살다보면 내마음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으실 것입니다. 내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라는 대중가요 가사가 이러한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경우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고 고민을 하는 경험이 한번 쯤은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삶의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 저의 경우는 부모님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배웠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대인관계는 두려움 이었습니다. 부모님들과의 관계가 두려운 관계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에게 세상은 두려운 곳이고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한 인식은 성인이 되어서 살아갈때 무의식 적으로 저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인식은 감정의 형태로 믿음의 형태로 어린시절 삶에 각인되기 때문에 자신이 그러한 감정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삶의 모든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성적인 생각이나 판단의 수준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내용으로 무의식적으로 처리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입니다. 자신이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어떠한 믿음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시간을 가지고 차근히 돌아보아야만 알아차릴수 있습니다. 


둘째, 저는 두려움의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지에 대해서 어린시절 대처방안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구할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저에게 다가가기 어렵고, 도움을 줄수 있는 분들도 아니었습니다. 본인들의 삶을 사는 것도 힘겨운 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어린시절 선택한 생존 방법은, 제가 혼자서 무엇이든 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어른이라는 존재는 무섭고 저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었습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혼자서 무엇이든 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은 어린아이의 마음 속에서 만들어진 방법이기 때문에 완벽한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저에게 살아갈 집과, 음식과, 학교를 보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저에게 있어서 부모님들은 저에게 아무런 정서적인 인정이나 도움을 줄수 없는 분이라고 믿었고, 혼자서든 무엇을 해서라고 살아남지 않으면, 저의 삶이

망가져 버릴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존 방식은 성장해서 어려운 위기의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이러한 어리석은 방법은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큰 시스템에서 일할때는 특히 어리석은 방법이었습니다. 


셋째, 이 부분은 두번째 사항과 연관이 있는 내용입니다. 자기 혼자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을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방법이나 기술을 익히지 못했습니다. 결국 큰 조직에서 여러사람들과 일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성실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처리해서 신임을 얻고, 나중에 새로운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윗사람들과 동료들의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큰 단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이러한 형태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수 있는 요소였던 것입니다. 


넷째,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왜곡된 감정에 따라서 의사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부분에 대해서는 아동기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가 선행이 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아동기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정서적 플래시백 증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갑자기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경험하게 된 감정이 현재에 느껴지면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건강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감정에 압도되어서 의사결정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가지 내용들이 있지만, 위에서 설명을 한 내용들이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내용들일 것입니다. 어린시절 가정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배웠던 부정응적인 내용들이 저의 삶을 무의식의 차원에서 통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무의식적인 삶의 기술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중년의 나이에 깨닫고 저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그나마도 돌아보지 못했다면, 저는 원인도 알지 못한채 좌절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제가 왜 그러한 삶을 살았는지 깨달을수 있는 시간을 보낼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시고, 책과 강의를 통해서 보다 정확하게 저의 삶을 돌아보고 원인을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큰 방향성은 잡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아직도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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