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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트 부모의 문제점

나르시스트 부모들이 자녀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방법

제가 2004년에 미국으로 이사를 오면서 처음 몇개월동안 하숙생 생활을 했었습니다. 뉴저지에 위치한 저지시티에서 하숙을 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 남자 대학원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본인의 아버지가 자식을 교수로 만들기 위해 대학원 공부를 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자식이 디자인분야의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면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공부를 계속 하지 않으면 경제적인 지원을 끊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하고싶지 않은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그만두면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할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를 옥죄고 있었습니다. 


나르시스트의 특징중 하나가 공감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가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우선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위의 예에서 나온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를 교수로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를 자녀의 욕구보다 우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어떠한 무기력감을 경험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수준입니다. 자신이 자녀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히려 자신이 자녀의 인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에는 교수라는 직업이 지명도도 있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교수로 만들어서 자신의 좋은 장신구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공감, 이해, 그리고 격려와 같은 도구가 아니라, 돈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자녀를 통제하려고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지속되어왔을 것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지인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 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명문 대학교 졸업식에 학부형 어머님이 찾아왔는데, 평소에는 자녀에게 연락도 하지 않던 분이 졸업식장에 멋있게 차려입고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자녀가 몹시도 싫어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평소에는 자녀에게 관심도 없다가, 좋은 명문대를 졸업하는 자녀의 졸업식장에 멋있게 옷을 입고 찾아와서 자신의 자녀가 좋은 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을 뽐내고 싶어했던 이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는 평소에 좋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나르시스트의 또다른 특징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녀에 대해서도, 자녀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그러한 것을 잘 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좋은 장신구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자녀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특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명문 대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에 멋지게 차려입고 와서 자신을 뽐내려고 하는 시도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는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을 이용해서 부모의 허영심을 채우려고 하는 모습에서 역겨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자녀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를 잘 마무리 했다는 것에 대해서 격려해주고 축하해주는 의도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생일이 원래 12월 30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생일은 같은해 2월 28일로 신고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2월 28일까지 태어난 아이들을 그 전해 3월1일부터 태어난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보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도하지 않게 저보다 거의 2살이나 많은 아이들과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때는 몇개월만 차이가 나도 큰 차이가 납니다. 저는 학교 가기가 무섭다고 울고불고 했지만 저의 아버지는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학교를 가야 한다고 6살 어린이에게 폭언을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맨발로 집안에서 도망쳐 나와서 집밖에 있는 굴뚝 뒤로 숨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40년도 넘은 일이지만, 저는 아직도 제가 굴뚝 뒤에서 맨발로, 무섭고 외로워서 떨며 혼자 울고 있는 저의 모습을 잊어버릴수가 없습니다. 그 뒤로 저의 아버지는 항상 아버지가 늦게 저를 낳아서, 본인이 죽기전에 제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 생년월일을 바꾸고 저를 학교에 일찍 보냈다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저는 그런줄 알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여름 한국에 방문해서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출생신고는 저의 숙부님이 20대때 아무것도 모르고 일찍 학교를 가면 좋을거라는 단순무식한 생각으로 저와 저의 형의 생일을 바꾸어서 출생신고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형은 5월 생이었고 저는 12월 생이었기 때문에 제가 더 피해를 본 경우였습니다. 이야기를 재구성해보면, 숙부님이 잘 알지도 못하고 저의 생일을 바꾸어서 출생신고를 하고, 저의 아버지는 그러한 잘못을 숙부님에게 책임지우지 않고, 어린 저에게 덮어씌워서 일찍 학교에 보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말로는 다른 그럴듯한 핑계를 댄 것입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저희 집안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있었던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부모들이나 어른들이  성취하지 못했거나 잘못한 일들에 대해서 본인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어린 자식들에게 뒤집어 씌워서 책임을 지게 하거나 불가능한 임무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서 뭐 대수롭지도 않은 상황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6살 어린이가 이러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어린이의 시각으로 어떠한 고통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했다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 아버지는 자녀들의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었던 분입니다. 당신의 감정만이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가졌을지에 대해서는 생각 자체를 못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러한 공감능력의 부재가, 나르시스트의 대표적인 증상중 하나입니다. 물론 저의 아버님도 할아버지에게 상처받은 피해자였습니다.


첫번째로,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작가가 쓴 아웃라이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위한 조건에 대해서 실화를 활용해서 설명을 하는 책입니다. 그 내용중에, 미국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생일이 1월달인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에서도 학교에 들어갈때 일정한 월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별하는데, 보통 1월달부터 12월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마다 물론 기준이 다르고, 공립학교, 사립학교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관된 기준은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1월달에서 12월달을 기준으로 합니다. 1월달에 태어난 사람들이 성공한 경우가 많다는 이론은, 삶의 초기부터 학급에서 가장 나이가 많기 대문에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을 가능성이 많고, 그러한 성공경험들이 전체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1월달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공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로 미국에서는 1년 늦게 학교를 보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저의 경우를 이해하면, 저는 어른들의 몰이해로, 어려서부터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도록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저는 학교공부를 못따라가서 초등학교 내내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렸던 제가 어떻게 그 이유를 알수 있었겠습니까? 그저 삶이 힘들었던 것이었죠. 그 당시 저희 집안은 자유방임의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공부에 관한 어떤 도움도 부모님들에게 받을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혼자 숙제도 하고 준비물도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죠.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하는 아니는, 어른들이 잘못한 결정에 대한 모든 부작용을 혼자 다 뒤집어 쓰고 살았고 그 고통을 느껴야 했지만, 아무도 그 고통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표현되지 못한 고통인 것입니다. 


두번째는, 제가 애착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는 40대가 될때까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어린시절 경험한 트라우마는 몸에 남아 있다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트리거 될수 있기 때문에, 사실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입니다. 대표적인 C-PTSD의 증상중에 감정플래시백이라는 증상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의 기억들이 비슷한 상황에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런 맥락이 없는 고통스러운 감정이 갑자기 느껴지면서 현실감각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고통에 압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40대에 회사에서 갑작스러운 감정플래시백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아무런 지식이 없던 저로서는 그 감정이 회사의 상황으로 인해서 발생한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두려움과 고통이 뒤섞인 이해할수 없는 감정에 압도되어서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 다음에 그것이 C-PTSD의 전형적인 감정플래시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어린시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두려운 감정의 기억들이 저의 몸에 기억되어 있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트리거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증상으로 인해서 저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혼란과 고통속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한번의 경험만으로 저의 증상이 생긴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가지 비슷한 감정적 고통의 기억들이 더 있었고, 그러한 것들이 누적되면서 트라우마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건은 바로 초등학교에 가는 사건이었습니다. 


세번째는, 세상에 대한 불신이 저의 믿음체계에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부모들은 세상이고 모든 것입니다. 부모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아이들은 잘 자라날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자신들이 잘 자라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체험할때 건강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만약 부모들이 아이들의 건강과 밝은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들의 욕구를 챙기기 위해서 아니면 자신들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이들의 감정과 욕구들을 무시한다면, 건강한 아이들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저는 학교를 들어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통해서, 세상은 나를 해치려고 하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왜곡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무의식 세계에 새겨진 믿음이었습니다. 중년이 지난 이후에야, 제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회사의 직장 상사들에 대해서 불신과 분노를 가지고 살아왔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일에 대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그들이 시키는 일을 해야한다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마음까지 더해져서, 저의 직장생활은 정말 감정적으로는 너무나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이 살아왔지만, 감정적으로는 지옥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병이 중년의 위기때 저를 거의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이러한 저의 왜곡된 믿음을 깨닫고 발견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많은 가정에서 어른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아이들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많은 말과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상처받은 어른들이 자신들에게 한 말과 행동이 만들어낸 고통을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조상들 대대로 부터 내려온 말도 안되는 관습과 행동, 언어들의 파급효과를 어떻게 아이들이 이해하고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병든 생각들과 행동들을 밝혀내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그 표현되어지지 않은 괴로움들을 표면화 시켜야 합니다. 그럴때 이 사회가 더 건강해지고 밝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표현되어지지 않고 억눌려지고 수치스럽게 인식되는 고통때문에 괴로움속에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그 곳에서 해방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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