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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욕구를 살펴주는 사람은 자녀인가 부모인가?

부모가 자녀의 정서적 욕구를 보살피나 아니면 자녀가 부모의 것을 보살피나

여러분은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알고 있나요? 정서적 욕구를 알고 있다면, 부모가 자녀의 정서적 욕구를 알고 충족시켜 줄까요, 아니면 자녀가 부모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까요? 여러분의 부모님은 여러분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셨나요?


정서적 욕구라고 하면 그런것이 있나 하고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욕구만큼이나 정서적인 욕구는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물질적인 욕구는 음식, 물, 그리고 집과 같이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이러한 물질적인 욕구들이 만족되지 않을 경우, 인간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와 대비되는 정서적 욕구는 성취하고 만족과 행복이 있는 삶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이러한 욕구로는 사랑받고, 이해받고, 존재에 대한 긍정적 대우가 해당합니다. 이와 더불어서 안전감, 소속감, 그리고 존중감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적 욕구가 만족되지 않을때 사람은 정서적인 고통을 느끼게 되고 충만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 이러한 정서적 욕구가 만족되지 않을 경우에는 단순히 고통을 느끼는 차원이 아니라, 건강한 자아가 발달되지 않고, 세상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게되고 왜곡된 믿음과 감정을 가지게 되어 세상을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정서적 욕구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기 쉬우며, 어린시절 이러한 정서적 욕구가 만족되지 못한채로 부모가 되면, 자신의 자녀들을 양육하면서도 자녀들의 정서적 욕구를 파악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자녀들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녀의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자녀를 통해서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부모가 됩니다. 이런 증상이 더 심각해지면, 부모의 육체적 욕구를 자녀들을 통해서 해소하려고 하는 패륜적인 부모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부모의 성적 욕구를 자녀들을 이용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패륜적인 범죄가 이러한 범주에 해당합니다.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킨다는 개념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분별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러한 상황이 동양의 효라는 개념이나 부모를 섬긴다는 개념과 혼동되어서 자녀를 통해서 부모의 정서적 욕구를 채우는 것을 합리화 하는 방향으로 오용되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부모는 자녀의 정서적 욕구를 파악하고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 자신의 정서적 욕구는 다른 어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충족해야 하고, 자신들이 그러한 정서적 욕구를 충족할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서적 건강을 확보하지 못한 부모들은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녀들을 희생시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효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하기도 합니다. 물론 부모닝의 나이가 많아져서 정서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에는 자녀들이 부모님들을 정서적으로 보살펴야 하겠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될때까지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저의 성장기에는 물질적인 욕구만 충족되면 감사하고 살아라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욕구가 어느정도 만족된 상황에서, 이제 모든것이 다 있으니 불평하지 말고 살아라 하는 말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물질적인 욕구가 만족되었다고 해서 살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정서적인 욕구들이 만족될때, 비로소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배부른 소리가 아니고 당연히 가져야할 욕구입니다. 우리 부모세대들은 자녀들의 그러한 정서적 욕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적 욕구의 만족 여부는 정신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건강한 정서적 욕구를 인정하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가정을 중심으로 해나갈때 더욱 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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