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자신의 고통을 표현못하는 괴로움

여러분은 자신의 고통을 알고 표현할수 있나요

제가 어렸을때 마을에서 잔치를 하기 위해서 돼지를 잡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정수리를 도끼로 내리쳤는데 죽지 않아서 돼지가 소리를 지르면서 날뛰는 장면을 본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이 개를 나무에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때리고 나중에 불로 그슬러서 개를 잡는 모습을 본적도 있습니다. 돼지 멱따는 소리다, 개패듯 한다라는 말이 있는 이유가 이러한 동물을 잡는 오랜 풍습에서 나왔다는 것을 저는 현실에서 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자신의 고통을 토해내는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고통의 정도를 조금이나마 상상할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적어도 그 동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동물들의 소리와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와 고통을 전달하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금지를 제도적으로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오늘 뉴스에서 보신탕을 법적으로 금지한다는 국회의 결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1/09/JASOISSZ2ZERXMVZCSS372GVRU/)


몇년전에 이러한 상황과 연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물들의 도축방법이 많이 변화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설명을 하면서, 물고기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소리로 표현을 할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히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손맛이라고 해서, 물고기들이 괴로워하는 행동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결국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한 고통에 무지하게 됩니다. 무지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존재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우리는 미국의 흑인 노예, 그리고 인디언 억압 정책을 통해서 볼수 있습니다. 또한 여성들에게 행해진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서 경험했었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는 자신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보실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에는 이러한 경우가 발생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애착 트라우마 혹은 관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상황입니다. 어렸을때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부모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 그리고 욕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부모의 욕구에 반응하는 삶만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아니면 자신의 가능성이 무엇이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탐구를 할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이 있고, 이러한 감정을 부모와 소통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 가야 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부터 부정당하고 부모의 감정과 욕구만을 충족시켜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자신은 없어지고 부모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영혼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정신적인 문제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영혼의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인생의 막다를 골목에 다다르게 됩니다. 육체적으로 먹고사는 삶은 있을 수 있지만, 영혼은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괴로움에 빠지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 오랜시간동안 방황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찾아내기 위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는 자신의 고통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공감해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언어로 표현하고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그 마음속의 고통은 서서히 약해질 것입니다. 소망하는 것은 이러한 고통을 마음속에 품고 사시는 많은 분들이 이 고통을 마음껏 이야기 하고, 표현하여서 그러한 고통을 만들어 내는 상황이 줄어들고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정서적 욕구를 살펴주는 사람은 자녀인가 부모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