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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비밀

가족의 비밀을 이야기 해야할까?

얼마전에 숙부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습니다. 저의 논점은 우리 가족들이 고통받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명시적인 이야기를 하고 가족들이 다 알아야 한다 라는 주장 이었고, 숙부님은 그렇지 않다, 가족간에도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조상들의 수치스러운 일들은 이야기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에 대해서 좋았던 내용들만 이야기 하자라는 주장을 숙부님은 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나요? 한국적인 정서에서 집안의 부끄러운 과거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집안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집안에 대해서 좋은 일들을 많이 이야기 해야지, 성공한 집안이 되고 명문 가문이 될텐데 조상들의 잘못된 점들을 지금 다시 끄집어 내서 좋을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입장은 다릅니다. 


저는 30대말 까지만 해도 저희 부모님들은 훌륭한 분들이시고 저희 집안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줄 알았습니다. 사실 돌아보면, 큰 문제없이 학교를 다녔고 대학교를 졸업해서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미국까지 왔으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생활 하고 직장생활 하는 내내 저의 내면은 수많은 고통으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대학교때 두통과 불면증으로 우울증 약을 먹기도 했지만, 바로 이겨냈습니다. 대학교때 전공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힘드렀는데,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서 직장생활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이러한 삶은 미국에와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생활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와 불안한 감정은 저의 삶을 망가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황장애 같은 증상까지 나타났습니다. 저는 너무나 그러한 상황에 무지했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저의 직장생활은 힘들어졌습니다. 아무에게 도움을 청할곳도 알지 못했고, 인간관계는 고립되어갔습니다. 감정적으로 무너져내린 저의 삶은 해결책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상담도 받아보려고 갔지만, 결과적으로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상담하시는 분이 애착트라우마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분이셨고, 저도 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담은 실패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정적인 고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이것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일어날수 있는 일인지, 그냥 참아야 하는지, 아니면 어디서 도움을 받을수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가지 책도 읽기 시작했고, 등산도 매주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여러가지 일들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관련 심리학 책들과 자기개발서 등을  닥치는대로 읽으면서 저의 문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서서히 파악할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저희 가정은 역기능 가족의 전형적인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족시스템에서 잃어버린아이라고 지칭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분노가 마음속에 가득차 있었고, 낮은 자존감과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그런 성격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감정은 보지못하고 자신의 감정만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집밖에서는 돈을 뿌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찬양을 갈구하는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저의 감정은 인식하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할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우리 집안에 트라우마가 많이 있고, 아버지는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저의 삶 전체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처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치유의 방법론도 일찍 알아봤을 것이고 삶의 고통에 대해서 좀더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살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 집안에서는 부모들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했었기 때문에, 저는 우리 집안에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개선하거나 트라우마의 고통을 나의 세대에서 끊어야 하겠다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찾아다닌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집안의 어려움에 대해서 미리 알았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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