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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추론 (Emotional Reasoning)

정서로 모든 상황을 추론하는 사람들

정서적 추론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어떠한 상황을 자신의 감정만을 가지고 추론하여 결론을 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외도의 의심이 들면, 자신의 불신의 감정을 근거로 상대방이 외도를 진짜로 하고 있다고 단정을 지어버리는 것입니다. 느낌 이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도 말입니다. 또는 자신이 어떠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저 느낌으로 그 사업이 잘될것 같다는 느낌이 생기면, 다른 데이터의 분석이 없이, 그 감정을 통해서 결론을 내버리고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위의 예는 일반적인 삶에서 많이 경험하는 일들 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추론에 근거해서 일을 벌였다가 관계의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들을 많이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인식될수 있고 많이 현실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추론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느낌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면 혼날것 같은 두려움이 있을때, 객관적인 상황을 확인하지 않고 그러한 느낌으로 인해서 권위자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에 대해서 잘못될것 같은 느낌이 팽배할 경우, 아예, 결혼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사람도 만나보지 않으면서 불행해질걸 왜 하냐는 식으로 정서적 추론을 통해서 결론을 내버리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정서적 추론은 한 사람의 삶을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망가뜨릴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결정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인식하지 못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서 교육에 많은 관심과 경제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과외도 시키고 성적을 잘받고 좋은 학교에 가는것에 목숨을 거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 조건들이 맞았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좋은 직장에 가게 되었다 하더라도, 잘못된 정서적 추론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저도 미국에 오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지만, 어린시절 가지게 되었던 애착트라우마와 잘못된 정서적 추론으로 인해서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삶이 점점 어려움에 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러한 정서적 추론의 문제점은, 자신이 무엇을 왜 잘못하고 있는지 인식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해줄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없고,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너무나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살아와서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거나 인정하기도 어렵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적 추론의 문제점을 벗어나는 가장 처음 단계는, 자신이 순간 순간 느끼는 감정이 객관적인 상황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당히 어려운 단계인데, 순간 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다시한번 검증하고 다음에 취할 행동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무비판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을 진리로 믿었다면,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 느껴지는 감정을 한번 검증해보고 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지 생각해보고 다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순간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위빠사나 명상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던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인생의 위기를 한번씩은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단순히 제수가 없었다거나, 다른 사람들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게되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자신의 내면의 문제들을 돌아볼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현실생활에서 실제로 적용해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정서적 추론을 많이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해왔던 많은 정서적 추론이 현실의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 내가 그동안 너무나 잘못 살았구나 하고 현실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엄청난 괴로움을 동반합니다. 자신이 어리석은 삶을 그동안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돌이킬수 없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을 하면 자신이 초라해지고 깊은 수치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지나온 시간이고 돌이킬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런 상황에 빠지게 했던 주 양육자에 대한 분노가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이것도 어쩌겠습니까? 저같은 경우는 몇년동안 이러한 혼동과 수치와 분노의 시간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알게모르게 삶의 수많은 상황에서 잘못된 정서적 추론을 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수많은 잘못된 정서적 추론이 현실을 나자신이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소가 됩니다. 


이러한 정서적 추론은 개인의 특성을 설명하는것 뿐만이 아니라, 어느 한 집안의 특성이나 한 공동체의 특성을 설명하는데도 활용될수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어느 집안에 태어나면 암암리에 자신의 집안에서 활용하는 정서적 추론을 자녀세대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하게 되고 이러한 정서적추론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 그 공동체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집안에서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정서적 추론이 모두 맞는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잘못된 정서적 추론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독립적인 존재로 건강하게 성장해가는 과정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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