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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 동기가 되는 삶

삶을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리고 마음을 잡지 못할때, 나를 어떻게 돌아볼까

저의 삶이 모두 멈춰버린듯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삶을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덧 살아보니 제가 원하던 삶도 아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모두 망가진 것 같았던 그런 시간 말입니다.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의 삶이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고통스러운 질문이 나의 마음에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적 고통을 견딜수 없어서 날마다 잠도 못자고 불면증에 시달렸고 미칠것 같은 마음속의 분노와 두려움과 모든 이해할수 없는 감정들이 저의 내면을 가득채우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족들도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혼자만의 지옥같은 시간을 힘겹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게리 주커브의 영혼의 자리 (The Seat of the Soul)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의도의 선택 (The choice of inten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삶을 살게 될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모든 면들을 의식할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자신의 모든 면들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면, 자신이 말하려고 하던 것을 말해도,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면을 의식한다는 것은 깨어진 성격 (Spilintered Personality)을 가진 사람은 항상 서로 대립하는 부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때 분노의 감정에서 선택을 하게 되면 분노의 카르마를 만들어내게 되고, 동정심의 감정에서 선택을 하게 되면, 동정심의 카르마를 만들어 내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의식적인 진화는 의도의 선택을 무의식적으로 하는데서 의식적으로 하는 것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선택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의식을 하고 선택하는 방향으로 발전을 하는 것이 의식의 진화라고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을 읽으면서, 비슷한 관점에서 내용을 확장해 보았습니다. 두려움의 감정에서 선택을 하게 되면 두려움의 카르마가 만들어지고, 사랑의 감정에서 선택을 하게 되면, 사랑의 카르마가 만들어 진다고 말입니다. 


얼마전에 전설적인 권투선수 조지 포먼의 실화를 그린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던 조지 포먼이 권투선수로 세계 챔피언이 되고 성공해서 부자가 되지만, 무하마드 알리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이후에는 은퇴해서 목사가 되고 어려운 청소년들을 도우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청소년을 돌보는 시설이 문을 닫게 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중에는 4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권투를 시작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는 기적같은 일을 이룬 영화였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처음 권투를 했을 때는 자신의 분노에서 권투를 했다고 이야기 하고, 38살에 다시 권투를 시작했을 때는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한 사랑에서 권투를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후에 45살에는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조지 포먼이 다시 권투를 하겠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할때 질문을 합니다. 만약 권투를 할때 분노가 다시 올라오면 어떻게 하냐고 말입니다. 분노를 에너지로 삼아서 권투를 하던 사람이 어떤 다른 에너지로 권투를 할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선택의 의도는 카르마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그 삶을 만들어낼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삶이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두려움의 감정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살았지만, 두려움의 카르마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힘을 쓰면 쓸수록 두려움만 커져갔던 것이죠. 하지만 저는 제가 두려움에서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저의 집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집으로 인식하고 살아왔고, 그러한 가정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제가 이상하기 때문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인데,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정상적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아무도 우리 가정이 이상하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교착 상태 (Deadlock) 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 고통속에서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의 집안이 역기능 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정안에 있는 고통들에 눈을 뜨게 되었고,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가 깨져있고,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대화를 하지 못하는, 윗세대부터 내려오는 세대간 트라우마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으로 인해서 제가 두려움 속에서 어린시절부터 살아왔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혼돈스럽게 뒤섞여 있던 퍼즐들이 하나씩 색깔이 맞추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는 두려움의 의도에서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통해서, 고통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수 있는 동정심과 사랑의 의도에서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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