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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했던 내면의 이야기

이야기 하지 못했던 내면의 이야기를 통해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저의 삶은 오랜시간동안 암흑속을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혼돈의 시간을 보낸것입니다. 그저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싸웠고 도망쳤습니다. 그저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이러한 혼돈의 시간은 너무나 많은 고통을 저에게 선사했습니다. 먹고사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어떻게 유지하고 있었지만 무엇인가 삶이 감옥에 갖힌듯한 고통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기계적이고 본능적인 삶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삶이 정상은 아닌데, 무엇이 이상한 것인지는 전혀 알수가 없었습니다. 삶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열심히 살면 살수록 혼돈속으로 빠져가는 듯한 그 더러운 느낌을 지워버릴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틀림 없었습니다. 혼동스러운 감정들이 날마다 저를 옥죄어 왔습니다. 알수없는 수십가지의 감정들이 날마다 저를 괴롭혔고, 사람들과의 관계와 저의 행동을 어지럽게 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 내야만 이러한 혼돈을 바로잡을 수 있을텐데, 전혀 실마리도 잡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가는 저의 삶을 바라만 보아야 했습니다.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해결할수 없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치 씨름선수가 중심이 무너진 상황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처럼, 저는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무너진 무게중심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은 삶에서 한번 넘어져야 했습니다. 


심리학 책을 수백권 읽고 윗빠사나 명상을 하고 상담을 받고 여행을 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가 자랐던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심리학과에 편입해서 공부를 해보고, 정신건강상담과정 대학원에 다니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서 집에서 자랄때는 부모들이 신경도 쓰지 않았던 부분이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부모와의 관계에서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가 자랄때 저희 집에서는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던 사항들이 다른 사람들의 가정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는 것을 점점 더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양육과정을 이야기 하면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더 놀라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그러한 것에 놀라면서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고 응답을 해서 제가 더 놀란 적도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관계와 감정에 대한 것입니다. 편하게 자녀와 부모사이에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가정에서는 항상 긴장감이 흘렀고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건들기만 하면 화가 폭발할것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한 살얼음판을 걷는것 같은 긴장감은 저를 항상 주눅들게 하고 한 구석에 처박혀 있게 만들었습니다. 최근에 알게된 것이지만, 제가 항상 긴장을 하고 평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이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서 무엇이 편안한 상태인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저의 삶을 항상 긴장속에 살도록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한사람의 감정만이 중요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감정입니다. 자신만의 감정이 중요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경우,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보고 서로간의 의견이나 감정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 없이 무조건 화를 내거나 묵살하는 분위기가 항상 연출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거나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 할수도 없는 집안 분위기 였습니다. 이러한 가정환경이 지속되다 보니, 저는 저의 감정이 무엇인지 저의 생각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혼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두려움을 피해 도망다녔지만, 왜 그랬는지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고 혼동속에 살았던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의견이나 방법이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보다 훨씬 좋은 것이었는데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 했을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학습된 두려움으로 인해서 손쉽게 이야기 하지 못하고 주눅들고 겉으로 이야기 하지 못함으로 해서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이 또 저를 괴롭혔습니다. 사실 지금이야 그러한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저의 내부에 왜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만들어 지는지에 대한 인식도 없었습니다. 감정에 대해서 너무나 경험이 없다 보니, 너무나 무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보내주면 부모로서 할일 다했다는 분위기는 저 자신도 주눅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외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고 미안해야 할 일이라는 그런 감정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저만의 감정과 생각을 갖는 것은 사치스러운 요구가 되어 버렸고 그저 아버지를 화나지 않게 하면서 조용히 주는 밥이나 먹고 학교나 다니는 것이 제가 할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학교를 갈때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생일을 12월 30일에서 2월 28일로 바꾸고 6살짜리가 8살짜리 아이들과 학교를 가도록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무서워서 학교를 가지 못한다고 하자 욕을 하면서 윽박을 지르고 저는 무서워서 맨발로 집밖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학교공부도 따라가기 힘들고, 하지만 6살 짜리가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이유도 알수 없는 어려움을 학교 다니는 내내 경험해야 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못하는 사람인줄 알고 살았던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가족들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았고 인식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너무 어려서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그게 정상적인 삶인줄 알고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중년의 저에게 그토록 고통을 만들어준 배경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혼자 찾아내야 했습니다. 저희 집안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직도 잘 인식도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저의 고통을 말로 설명하기 전까지는, 저의 고통은 아무도 모르고 저 혼자의 내면세계에 숨겨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하면서 지금까지 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해봐도,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부모님의 잘못한 점을 왜 이야기 하냐는 인식이 많고, 중년이 되어서 너의 삶은 니가 책임을 져야지 과거의 이야기를 왜 하냐는 인식이 많이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반응을 들을때 마다 저는 답답하고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마야 안젤루가 이야기 한 "말하지 못한 내면의 이야기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하려던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려던 것은 누구를 비난하거나 중년의 나이에 때늦은 푸념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에서 몸부림 치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나의 영혼의 몸부림을 이제야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음속에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제는 할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고통에서 해방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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