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살아가는지 인식을 하지 못하는 시간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느 순간에,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내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몸이 반응하는대로 살아가는 상황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사용되지 못하고 그냥 몸이 상황의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은 동물의 삶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제가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냥 몸이 반응하는대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방식은 저의 인생에서 많은 문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저의 경험이나 이성적인 생각이 저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 반응하는 몸이 움직이는 대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많은 문제를 야기했고 가장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때의 가장 큰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하고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느낌들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수 있는 것은 도망가는 것 뿐이라는 무기력감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한 감정의 노예가 되면서 삶은 고통스러움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다른 대안들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C-PTSD의 증상이었습니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어린시절 경험했던 공포스럽고 괴로운 경험에서 유발된 감정들이 정상적인 처리작업을 거치지 못하고 몸에 남아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몸에 재현되는 현상인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황은 지나갔지만, 그때 느꼈던 두려움과 무기력감 그리고 공포감등이 몸에 남아 있다가, 특정한 상황이 되어서 트리거되는 증상인 것입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러한 반응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의 삶은 항상 두려움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 얼마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지금은 말할수 있습니다.
비록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형언할수 없는 고통은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도 절실했지만,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를 전혀 알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도와줄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경험하고 있는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고통을 언어로 설명할수 없으면, 다른 사람들은 저의 그 지옥같은 고통을 하나도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아내나 아이도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도 저의 고통을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고통을 혼자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저에게 주었던 부모와 친척들은 자신들이 저에게 무슨짓을 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 고통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도 모르고, 주변의 가족들도 모르고, 저도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할수 없는 그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수 없습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저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저의 고통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면서 내면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고 글로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에 대해서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이해할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수많은 고통을 주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상황일 것입니다.
저의 내면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때, 그 고통은 끊임없이 나에게 자신을 알아달라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이 저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저의 삶에 지속적으로 그러한 고통을 느낄수 있는 상황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 그러한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그 무의식에서 깨어나서 자신의 내면에 그러한 고통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 무의식의 굴레에서 깨어나서 인식을 하는 것이 첫단계인 것입니다. 내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삶을 살고 있다면, 끊임없는 고통속에 살게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의식의 상황에서 깨어나서 하루를 살아도 과거에 경험했던 트라우마에 반응하면서 사는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 반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