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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것들

삶에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한다면,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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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삶을 살아가면서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항상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저 사람과의 관계는 어려운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어느정도 삶을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물론 스트레스는 많이 받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제가 감래할수 있는 수준의 것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계속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갈등상황이 생기면 이것을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 하는데 그러한 해결능력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물론 언어적인 제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시점에 저는 서서히 저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예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찾아낼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한 혼란의 시기가 한참 지나면서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문제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었습니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주하면서 여러가지 심리학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책에서 이야기 하는 이야기들에 공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감정의 어려움들을 그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어 내 마음과 똑같네, 어 저사람도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구나 하는 감탄사를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경험만으로도 저 개인에게는 큰 감정적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그 느낌 말입니다. 내가 혼자는 아니구나, 나와 동일한 감정적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저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할수 있는 실력을 키울수 있게 되었습니다. 느끼기만 하는 감정적 고통과, 언어로 표현되는 감정적 고통은 천지차이입니다.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카타르시스의 경험을 할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한 시간을 거치면서, 저의 친가쪽으로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향으로 인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대, 그리고 저의 세대까지 그 트라우마가 전달되면서 수치감, 두려움, 분노 등의 심각한 감정적 짐들이 대를 이어서 전달되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을 해소할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알지 못했던 저희 집안에서는 그러한 감정들을 숨기고 비밀로 유지하면서 집안 전체가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녀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폭언과 폭력, 그리고 감정을 억누르는 가정환경이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와의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저는 권위자와의 관계를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정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이 얽히고 섥혀서 직장에서도 권위자와의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저 감정은 억누르면서 살아왔던 그 과정을 통해서 건강한 감정처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도 갈등을 어떻게 건강하게 해소할지를 알지 못하고, 그저 회피하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성향이 지속되면서 사회생활에서 오해가 생길수 있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못했고, 솔직하게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직장 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경험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늦게나마 그러한 교육을 스스로에게 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배우지 못했다면 자신이 자신에게 가르쳐야 되는 것이었죠. 심리학에서는 Reparenting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재양육정도로 이해할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서서히 새롭게 공부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이런 상황 자체에 대한 분노와 슬픔으로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하자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상황은 어쩔수 없지만, 계속 자책과 분노로 저의 삶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를 원망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지금까지 그 무지함 속에서 살았는지 놀랍게 느껴질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배우면서 새롭게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한사람이라도 이 글을 읽고 제가 경험했던 고통을 반복하지 않고 새롭게 살아갈수 있다면, 저의 그 고통이 의미없는 고통은 아니었다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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