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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받은 감정감옥에서 탈출하기

자신의 삶을 제한하고 있는 감정감옥에서 살고있다는 것을 인식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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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눈에 보이는 가정환경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합니다. 경제적인 상태, 거주지, 부모의 직업과 같은 외형적인 요소들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 환경, 특히 감정의 흐름과 상처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보았던 한 영화에서는 탄광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단순히 부모 세대의 삶을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 로켓을 만들고, 결국 나사의 연구원되었고 같이 로켓을 만들었던 친구들도 탄광촌을 벗어나서 자신만의 삶을 개척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매우 인상 깊은 이야기였죠.


그 영화를 보며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경험하는 환경이 지나치게 협소하거나 부정적이라면, 그 세계는 감옥처럼 닫히게 됩니다. 특히, 가정에서 폭력이나 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은 “나는 원래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야”라는 왜곡된 믿음을 갖게 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입니다.


저의 경우는 조금 다른 배경이었습니다. 저희 가문은 일제강점기의 가난과 배움을 박탈당한 시절을 살아낸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분들은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생존했고, 아버지 세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도시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도시로 나오면서 외형적인 삶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감정과 인지 구조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몸은 새로운 환경에 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가난과 수치심, 무시당했던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죠.


그 감정들은 가족 안에서 터져나왔습니다. 사회에서 받았던 무시, 슬픔, 분노, 무기력함은 어딘가로 흘러가야 했고, 그 대상은 종종 자신보다 약한 아내나 자녀가 되었습니다. 결국 자녀 세대는 존중받지 못하고, 사랑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채 자라나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내면에는 상처받은 자존감이 쌓이고,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왜곡되어 버립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은 점점 나아졌고, 제 세대는 더 이상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서적, 인지적 반응 체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우리의 감정은 여전히 예전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상태를 **‘감정 감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감정 감옥이란, 실제의 삶은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감정과 내면 반응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세상은 밝고 따뜻해졌지만, 내면은 여전히 차가운 어둠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아도 되는데,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아도 되는데, 여전히 부족함과 결핍 속에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감정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감정 감옥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치 몸이 아프다는 걸 알아야 병원에 가듯이, 감정의 왜곡이 있다는 걸 자각해야 치유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문제는 감정과 인지 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왜곡된 감정이 너무 익숙하고 오랜 시간 함께해 왔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라는 인식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제 인생의 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오해와 고통을 겪으면서도 제가 감정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의 문제를 지적해주었지만,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최선은 ‘내면아이’의 기준에서였지, 성숙한 자아의 기준은 아니었습니다. 혼란과 방황의 시간이 길었고,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몰랐던 저의 무지함이었습니다.


감정 감옥은 실체가 없는, 말 그대로 ‘감정의 유물’입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감정의 찌꺼기들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실체 없는 감옥의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 감옥의 힘은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감옥은 실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뿐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감옥에서 천천히 벗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수많은 삶의 순간이 감정 감옥에 묶여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고, 그 감옥이 얼마나 저의 삶을 제한했는지 알게 되면서, 벗어나는 기쁨과 동시에 슬픔과 억울함이 함께 밀려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혹시 정서적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신다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 감정을 바라봐 주세요. 그 감옥은 실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뿐입니다.


이제는 그 감옥에서 나와 자신의 진짜 삶, 감정, 가능성을 회복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감정 감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성취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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