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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짊어지고 있는 감정의 무게

내가 짊어지고 있는 감정의 무게를 인식하고 내것이 아닌것을 덜어낼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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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는 감정에 대한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트라우마의 경험때문에도 그렇지만, 저는 심각한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감정이 얼마나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어떻게 개인의 삶을 송두리채 망가뜨릴수 있는지를 너무나 절실하게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감정에 대해서 무지했던 저는 저에게 몰려드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했고, 왜 내가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해야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수 있는지, 어떻게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갈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무지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저는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다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십년을 혼동속에 지내야만 했고, 직장과 가정, 그리고 다른 모든 삶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고통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닥치는대로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속에서 만났던 책들과 위빠사나 명상, 방문했던 수도원, 등산과 자연속에서 찾은 회복의 실마리, 다양한 곳에서 만났던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제가 처한 상황을 하나둘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점을 찾은것 같으면 또다른 문제가 나타나고, 해결되지 않는 분노와 슬픔 수치의 감정들이 저를 하루에도 여러번 감정의 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제가 마주해야하는 상황들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 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시작한지 십년을 넘어가면서 이제 정신건강상담 과정을 공부하면서 과거보다는 훨씬더 많은 것을 볼수 있고 해결방법들도 하나둘씩 더 체계를 잡아가는 것을 보게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감정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이 단순한 희노애락의 기능을 떠나서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요소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감정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가지고 그 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것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더 성숙하고 유익한 삶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정해진 감정의 그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을 담아두는 그릇이 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러한 감정의 그릇이 작기도 합니다. 감정의 그릇이 큰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지 않고 내면에 많이 쌓아둘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그릇은 유한한 크기여서, 아무리 큰 감정의 그릇을 가지고 있더라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 지속적으로 쌓일 경우에, 언젠가는 그 감정을 해소해야 하는 과정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게되면, 그 감정의 그릇이 가득 차게 될때, 자신이 그동안 처리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했던 감정은 차고 넘쳐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을 하게 만들수 있습니다. 감정을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감정을 바라보지 않고 무시, 부정, 그리고 회피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하면서 감정을 마주하지 않고 그 감정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하다면,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감정의 그릇에 오롯이 쌓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하면 내면의 감정의 그릇에 쌓아두지 않고 처리할수 있을까요? 가장 처음 할일은,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치감일수도 있고, 두려움일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배움이 다른 사람들보다 좋지 않아서 학력에 대한 수치감을 느낄수도 있습니다. 이때 그 수치감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다른 핑계를 대지도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만약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학력이 좋지 않다면, 나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 줍니다. 만약 자신이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좋은 대학교를 가지 못했다면, 내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구나 하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고 부정할 필요도 없고 어떠한 핑계도 내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고 자신의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이해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을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었고, 어쩌면 자신이 선택할수 없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면서, 제가 알고있지 못하던 저희 집안의 환경을 이해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희 집이 지극히 평균적인 집안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집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정환경에서 지내면서 저의 기질 때문에 회피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적응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권위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기 혼자 살아 남아야 한다는 잘못된 내용을 학습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상황을 이해한 다음에서야 겨우 저의 삶이, 저의 직장생활이 왜 그렇게 망가졌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제가 느끼고 경험하는 감정들을 처리하지 못하고 저의 감정의 그릇에 평생 쌓이는 감정들을 꾹꾹 눌러놓고 부정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감정의 그릇이 넘쳐서 그릇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저의 삶은 그 순간부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저의 감정상태를 도저히 통제할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조상들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자손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해결되지 않은 분노와 수치감이 있을때,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자녀들에게 쏟아낼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항상 분노에 차 있는 부모들은 그 분노를 자녀들에게 쏟아놓기 쉽습니다. 항상 수치심과 불안에 차있는 부모들은, 자신의 수치심과 불안을 자녀들에게 투사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이유도 알지 못한체 부모들이 투사한 감정들을 자신들의 감정의 그릇에 담아두고 해소하지 못한체 평생을 살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부모들이 투사한 감정들을 자녀들은 이해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해소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유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손들은 원인도 알지 못한체 투사받은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러한 감정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분노, 수치, 및 무기력등 저의 상황과 맞지 않는 감정들 때문에 수많은 기회들을 날려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감정이 느껴질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만들어준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집안에서 해소되지 않고 자녀들에게 투사했던 감정들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소식은 그러한 감정들을 더이상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상들이 우리에게 투사해온 부정적인 감정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호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할때가 있습니다. 내것이 아닌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이상 지고가지 않도록 결단하고 돌려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고 가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도 저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저의 것도 아닌 타인의 짐을 지고 가느라, 저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저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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