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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수치심이 많은 집안에서 수치심을 해결하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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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감정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저희 집안 대대로 수치심, 분노, 그리고 두려움이 가족 전체의 기저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안 사람들은 본가쪽으로 사람들이 분노가 많이 있습니다. 쉽게 화를 내고 어투에 분노가 담겨져 있습니다. 저도 이것을 어렸을때는 알지 못했지만, 여러가지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족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수치를 느낄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고 과민반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어린시절부터 이러한 아버지의 반응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당사자인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저도 저의 안에 수치와 분노가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신의 수치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소하려고 본는적으로 움직입니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말입니다. 사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기보다 힘이 약한 가족들에게 투사해버리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가 그러한 행동을 할때 그러한 수치심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부모들이 자신들의 잘못이나 과장된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자녀들에게 원인을 돌려버리면 자녀들은 그것이 자신의 잘못때문에 부모의 감정이 악화되었다고 믿어버리고 자신은 잘못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황이 되어버리면 아이의 삶은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 부모는 자신에게 있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녀들에게 덮어씌워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대를 이어서 가족안에서 전달되는 것입니다.


성경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을 합니다. 나라의 왕도 있고, 동족들을 위기의 전쟁에서 구원해낸 용사들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중에서 야곱의 열두아들 중, 유다라는 사람에게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유다는 아들이 셋 있었습니다. 엘(Er), 오난(Onan), 셀라(Selah) 입니다. 엘의 아내는 다말이라는 여자였는데, 엘이 그만 아이가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형사취수라는 제도가 있어서, 형이 자녀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같이 잠자리를 해서 자녀를 낳게 해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째아들 오난이 다말과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오난은 자신의 자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체외사정을 해버렸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하나님께 악하게 보여서 오난을 하나님이 죽이셨습니다. 결국 셀라만 남은 상황에서 유다는 막내아들도 죽을것을 걱정해서 다말에게 막내가 아직 너무 어리므로 기다리라고 하면서 시간만 끌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가 자신의 동네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몸파는 여인으로 변장을 하고 시아버지를 속이고 잠자리를 같이하게 됩니다. 나중에 다말은 임신을 하게 되고, 사람들이 유다에게 며느리 다말이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가지고 아이를 가졌다고 알려주게 됩니다. 그당시 이러한 상황에서 여자는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처해지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다말은 유다에게 자신의 아이의 아버지가 유다임을 알려줍니다.


저는 이 상황에 유다가 얼마나 당황스럽고 챙피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을 엄청난 수치감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상황에서 유다가 거짓말을 해서 다말을 죽이라고 했어도 아마 큰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유명한 말을 여기서 합니다. "그녀는 나보다 옳다" 라고 공식적으로 선언을 해버립니다. 저는 유다의 이러한 성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수치를 자신이 책임지는 사람, 우리는 이러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후에 유다 가문은 이스라엘의 왕권을 갖는 가문이 되고 후에 예수님이 유다의 가문에서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건강하지 않은 가족안에서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자신의 수치감을 투사해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그 수치감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가지고 평생을 수치심에 괴로워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을 주변에서 보면서 그 해악이 얼마나 큰지 날마다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합니다. 자신의 수치는 자신의 대에서 받아들이고 마무리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후손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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