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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세계와 내면세계

외면세계만 바라보를 시각에서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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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문명은 대항해 시대를 통해서 식민지를 만들어내고 무역을 하여서 부를 창출해 냈습니다. 그 이후에는 산업혁명을 통해서 산업생산성을 키웠고, 이미 만들어진 무역로를 통해서 재료를 조달하고 물건을 만들어서 식민지와 다른 나라들로 팔아서 부를 창출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의 발달을 통해서 이러한 기술적 발달을 또한 뒷받침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돌아보면 눈에 보이는 외면의 세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서양의 외부세계에 대한 집중 경향은 눈에 보이는 외면의 세계가 중심이 되는 방향성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의료와 관련된 분야도 눈에 보이는 외적인 요소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요소들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분야중의 하나입니다.


카테시인 듀얼리즘 (Cartesian Dualism)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잘 아는 데카르트가 제안한 철학적 이론으로, 철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어떻게 마음과 몸을 인식하는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론입니다. 기본 개념은 마음 (혹은 영혼)은 비 물질적인 분야로 의식이 존재하는 곳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생각, 감정,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이 위치하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육체는 물질적이며 인간이 감지할수 있는 공간에 존재하는 것을오 인식했습니다. 이러한 몸은 생리학적인 기계로 눈에 보이는 물질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이해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생각하는 행위를 강조하면서 이를 어떠한 사람이 비물질적 존재인 마음이 존재하는 증거로 파악했습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생각은 마음과 몸은 분리되어있는 존재로 인식을 하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학에서는 철저하게 눈에 보이는 육체만을 인정하는 기준이 되었고, 심리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분이 틀릴수 있다는 여러가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외면세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외냐하면 인간의 의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프로이드도 원래는 히스테리아라는 신체증상을 유발하는 질병을 다루는 과정에서 병균이나 눈에 보이는 원인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들이 그러한 신체증상들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마음에 에고(Ego), 이드(Id), 수퍼에고(Super Ego)라는 구성원이 있어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마음을 조절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오랜시간동안 사람의 마음,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는 기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병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의 시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는 서양과 동양에 모두 존재하는 오래된 전통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에서 진행하는 명상이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의 일부이고 또한 동양에 이러한 전통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서양에도 기독교전통과 그리스 문화 속에서 이러한 인간내면의 탐구를 오랜기간동안 해온것을 알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눈에보이는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도 대항해시대를 통해서 많은 지도들을 만들고, 나침반, 망원경 등의 많은 도구들을 개발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탐험하게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과학적 법칙들을 찾아내면서 그 탐험의 범위를 우주로까지 확장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눈에보이는 세계에 대한 탐험은 인류에게 수많은 유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중심에는 서양문명이 있습니다. 수많은 눈부신 과학기술의 개발과 발전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과거의 많은 인간내면을 탐구하는 동서양의 시도들은 과학문명이 한참 발전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심리학을 중심으로 수많은 정신질병이 출현하고 이러한 정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심리학에서는 과거 동서양에서 발전되었던 인간내면의 탐구를 주의깊게 돌아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발전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눈에보이지 않는 인간내면은 더 혼란스러워지고 더 고통속에 빠졌다는 의미가 될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고통에 빠진 인류를 도와주기 위해서 인간내면의 탐구를 다시 시작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저도 제가 경험하던 고통을 이해할수 없어서 너무나도 오랜시간을 고통속에 살았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거치면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돌보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하고 인간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도 그 과정속에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도 중년의 위기를 만날때까지는 저의 내면을 한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한심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저도 저의 내면을 들여다볼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과거와는 비교할수 없을만큼 저의 내면을 들여다 볼수 있고, 내면의 대화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깊이가 끝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저의 인간내면에 대한 여행은 계속되겠지만, 처음 저의 상태를 생각해보면, 그래도 감사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눈에 보이는 세계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내면의 탐구를 시작하고 자신에 대해서 알아갈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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