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는 고통
7년 전 어느 행사에서 제 삶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의 트라우마와 고통의 시간을 이야기했는데, 그 후 어떤 분이 제게 성경 구절이 적힌 작은 쪽지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말씀은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지금도 그 쪽지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구절은 “고통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고통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들로 인해 꿈에서 깨어날 때가 많습니다. 분노, 수치심, 두려움으로 잠을 설칠 때도 있고, 사회생활 중 겪었던 어색하고 부끄러운 기억들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큰 괴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과연 나는 언제쯤 이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움이 더욱 커집니다. 만약 고통의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그나마 버틸 수 있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을 살아가는 일은 마치 지옥을 사는 듯한 절망감을 안겨줍니다.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이 저를 지치게 하고, 점점 마음을 무너뜨려 갔습니다.
최근 며칠 밤에는 악몽이 계속되었고, 어느 날은 50세가 넘은 제가 다시 군대에 가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훈련소에서 20대 초반의 조교들에게 시달리는 상황이었고, 아무도 왜 나이든 제가 거기 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억울함에 가방을 뒤지고 다니다가 병역을 마쳤다는 증명서를 찾아내고서야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명확했습니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 변호해주지 않는구나. 결국 내 자신을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이 깨달음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꿈을 통해 저는 다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저의 숙부는 아무 이유 없이 제 생일을 12월에서 2월로 바꾸어버렸고, 그로 인해 저는 거의 두 살 많은 형, 누나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대부분 8살에 입학하지만 저는 6살 무렵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가 두려워 울며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저를 달래기보다는 심하게 꾸짖고 협박하며 억지로 학교에 보내셨습니다. 그 날 저는 맨발로 집을 뛰쳐나가 울고불며 집밖의 한구석에 있는 굴뚝 뒤에 숨어서 한참동안이나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가족중 아무도 저를 위로하거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습니다. 6살짜리 어린아이에게 그 상황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그때의 두려움과 서러움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이후 저는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공부에 대한 지원이나 정서적 돌봄도 없이 방치되었습니다. 아무도 제 고통을 알아주지 않았고, 이러한 경험이 제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깊은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훗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내가 아무리 힘들고 울부짖어도 나를 위해 싸워줄 사람은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감정을 혼자 감당하려는 경향이 생겼고, 권위자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마음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훗날, 자신이 저를 위한 선택이었다며 생일 변경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숙부가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너무도 큰 배신감과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아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침묵한 셈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이유조차 알 수 없었던 깊은 고통을 겪으며 사회생활에서도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결국 직장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고, 제가 왜 그런 상황에 빠진것인지, 어떻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수 있을지 몰라서 무기력과 절망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은 확실한데,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도, 어떻게 거기서 빠져나올수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고통의 시간이 너무나 길게 지속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저희 집안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극적으로, 저에게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음을 깨달으면서 회복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가족 안에서 진실을 마주하고,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며 회복을 선택했다면, 저는 이런 깊은 고통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거짓과 부정, 수치심이 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지금도 여전히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과정을 겪으며, 저는 우리 가문에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저는 “왜 나만 이토록 힘든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고통을 준 사람들은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 같고, 정작 당사자인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싶어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가족들조차 내 고통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는 더욱 외롭고 서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억울함과 분노가 어느 순간 저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무너진 채로 내 인생이 끝날 수 없다는 마음에, 저는 배움을 시작했고, 나 자신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고통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길입니다.
이 시도의 결과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분명 무언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 고통이 헛되지 않기를, 그리고 이 여정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