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근성과 세대간 트라우마에 대하여
저는 오랫동안 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직장에서 반복되는 갈등과 인간관계 속에서의 불편함, 설명할 수 없는 수치심이나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은 늘 제 삶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그 감정들은 그저 지금의 성격이나 환경 탓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모든 감정과 반응들이 더 깊은 내면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 근원에는 제가 의식하지 못한 채 내면화한 ‘노예근성’이라 부를 수 있는 감정 패턴과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노예근성’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노예제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이 오랫동안 억압당하고 지배받으며 살아온 역사적 경험이 정서적, 심리적으로 내면화되어 세대를 넘어 전달된 인식의 구조를 말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에서 세대 간 트라우마(Intergenerational Trauma) 또는 **세대 전이 트라우마(Transgenerational Trauma)**라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이는 한 개인이 직접적인 트라우마를 겪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세대가 겪은 고통과 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이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가 이러한 트라우마의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인들이 식민지 민족으로서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에 “조선인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인종차별적 발언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옵니다. 미국에서는 흑인 노예들이 인간 이하의 존재로 간주되었으며, 벨기에의 콩고 식민지 통치나 유럽의 아프리카 노예무역 또한 극심한 폭력과 비인간적 처우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단지 외적인 고통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내면 깊숙한 감정 구조와 행동양식에 장기적인 영향을 남겼습니다.
과거의 고통은 세대가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의 형태로 후손에게 전이됩니다. 이때 부모 세대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말로 표현하지 않고 억압하더라도, 그 분위기와 반응 양식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어린아이는 말보다 표정, 태도, 긴장된 침묵 등을 통해 부모의 감정을 체감하며, 이는 **신경생물학적 각인(neurobiological imprinting)**을 통해 무의식에 깊이 새겨집니다.
그 결과, 자녀들은 현실의 자극과 연결되지 않은 설명할 수 없는 수치심, 두려움, 분노와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러한 감정이 왜 생겨났는지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자신의 현실에서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종종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대인관계에서 반복적인 충돌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형성된 심리적 구조는 사람들로 하여금 **‘노예근성’ 혹은 ‘수동적 삶의 패턴’**을 습득하게 합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이 제시한 학습된 무기력감(Learned Helplessness) 이론은 반복되는 부정적 경험과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개인이 무력함을 학습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노예근성 또한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도전과 변화보다는 수동성과 회피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예근성을 지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주어진 일 외에 더 많은 책임을 맡는 것을 꺼리며, 가능하다면 위험이나 도전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스스로의 욕구나 재능, 또는 흥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며, 설령 그것을 안다고 해도 실행에 옮기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내가 아무리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이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수동적 대처방식(passive coping style) 및 **학습된 무기력감(learned helplessness)**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지 못하면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거나 존재가치가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건강한 자기정체성을 형성한 사람들은 삶의 어려움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대응합니다. 그들은 도전적인 상황이나 책임이 큰 일을 맡았을 때, 그것을 자신에 대한 신뢰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자신의 성장 기회로 여깁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스트레스와 부담이 따르지만, 이들은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이에 걸맞은 보상과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세상은 변화 가능하며, 나의 노력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을 선택하며 계획을 실행하는 **자기결정성(Self-Determination Theory)**의 원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예근성을 지닌 사람들은 삶의 장기적인 계획이나 비전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삶은 단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에 가까우며, 미래를 위해 준비하거나 능동적으로 삶을 설계하는 것은 현실감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점차 개인의 잠재력을 억누르고, 반복되는 수치심과 자기비난을 강화하게 됩니다. 수치심 연구의 대표 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수치심이 인간의 자존감을 잠식하며, 삶의 결정들에서 위축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주요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수치심은 스스로를 작고 무력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며, 이는 다시 수동성과 회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 역시 제 삶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패턴이 제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고, 일정 부분에서는 인정도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가 누적되거나 상황이 복잡해지면 극심한 긴장과 불안, 무력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습니다.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직장 생활은 점점 더 위축되었고, 대인관계에서는 갈등과 감정적 혼란이 커졌습니다. 결국, 이러한 상태는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졌고, 저는 제 능력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은 게으름도, 능력 부족도 아닌, 내면 깊숙한 감정의 상처와 무의식적인 인식 체계의 영향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이주한 후에도 유사한 감정적 고통은 지속되었고, 그 고통은 제게 결국 정서적인 붕괴를 경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시간을 거치며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점점 더 제 내면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제가 경험하고 있던 많은 정서적 패턴과 고통은 단지 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었으며, 조상 세대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전해진 감정적 유산이 제 사고방식과 감정 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심리학 이론들과 관련 연구들을 찾아보며, 제 경험이 결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저에게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주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과거의 방식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상 세대는 분명 생존을 위해 그러한 방어적 감정 반응과 믿음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바뀌었고, 당시에는 유효했던 감정 반응과 행동양식이 오늘날의 사회 구조 속에서는 오히려 성장과 자유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이전과는 다른 자유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수치스럽고, 두렵고, 분노를 유발했던 감정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바라보았을 때, 그것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커다란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말기의 극심한 빈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조상들의 고통은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런 현실을 탓하거나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아픈 기억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선택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과거 두려움의 감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로 살아갈지 아니면 그 두려움의 감정을 극복하고 자유인으로 살아갈지를 우리는 선택해야할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