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안의 비밀이 만들어낸 왜곡된 인식과 자녀들의 고통스러운 삶
저의 의식 깊은 곳에는 “부모가 먹여주고 학교에 보내주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라는 보이지 않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제가 분명히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믿음은 제 내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다른 가정들 가운데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거나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와 비교하며 나는 감사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논리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고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비교의 기준이 누구냐에 따라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 부모는 좋은 부모였다”라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뿐 아니라, 자녀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직면한 근본적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가정 안에서 다른 가족들은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유독 나만 우울증과 정서적 고통을 겪는다면, 그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자기 해석이었습니다. 이러한 자기 이해는 해결 불가능한 상황을 전제하게 되었고, 그 결과 무기력과 자기 비난 속에서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마치 출구 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고통의 시간들이 이어졌으며, 이는 죽음에 가까운 내적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긴 방황 끝에 수백 권의 책을 탐독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 가정이 심각한 트라우마의 역사 속에 놓여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가 쪽으로 대물림되어 온 깊은 상처와 왜곡된 관계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은폐한 채 살아온 침묵의 문화가 가족 구성원 모두를 얽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억압된 기억은 가족 모두를 비정상적 사고와 감정적 고통 속에 붙잡아 두었고, 알게 모르게 그 짐은 다음 세대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대 간에 지속되는 고통의 악순환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저는 “사람은 단순히 먹고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곧, 인간 존재의 핵심은 가족 간의 친밀한 유대, 돌봄, 그리고 사랑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동시에 제 삶이 얼마나 허약한 논리에 근거해 있었는지를 드러냈고, 그동안 무시되거나 외면되었던 관계적 차원의 결핍을 직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누적된 감정적 짐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이 문제를 대화로 나누려 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이는 곧, 집안의 상처를 직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침묵의 규범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이 탐구를 홀로 감당해야 했지만, 동시에 유사한 여정을 함께 걸을 수 있는 동반자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는 제게 깊은 감사와 새로운 희망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결코 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며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결핍된 삶’을 경험합니다. 그 허무함의 원인을 돈, 직장의 성취, 혹은 잃어버린 사랑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내면 깊은 곳의 공허와 정서적 고통은 종종 어린 시절 채워지지 못한 친밀감과 사랑, 그리고 돌봄의 부재에서 기인할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homo relationis)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원인 규정은 잘못된 해결책으로 이어지기에, 인간의 정서적·영적 고통의 근원을 깊이 성찰하는 작업은 단순한 심리학적 치유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재발견하는 종교적 과제로 이어질수도 있습니다.